유시춘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이사장이 아들의 마약 밀수 유죄에 대한 거짓 해명 등을 통해 이사장직에 올라 여태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적절한 처신이냐며 거취 표명을 요구한 강규형 신임 EBS 이사와 거친 설전을 벌였다. 유 이사장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누나이다. 유 이사장은 아들인 유명 독립영화 감독 신이수 씨가 대마초 밀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최종 3년형을 확정 받았는데도 "사법부는 신이 아니다"라면서 사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강 이사는 지난달 3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EBS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342회 정기이사회를 유 이사장이 서둘러 마치려하자 "발언 시간을 주신다고 하고는 그렇게 중단하면 안 된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유 이사장은 "기록에 남기고 싶어서 하시는 말씀인가?"라며 "제가 지금 5년째인데 이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이사회 종료를 강행하려다 결국 "회의를 속개하겠다"고 했고, 강 이사는 곧장 "2018년 9월 유 이사장이 임명되고 나서 해명으로 '아들이 무죄 받은 뒤 이사장이 됐다'라고 발언하셨다. 그런데 거짓이다. (당시 유 이사장 아들은) 2018년 7월에 이미 2심에서 유죄 징역 3년을 받고 구속 상태였다"고 물었다.

강 이사는 또 "2019년 3월 21일 아들의 3심이 확정된 상태에서 유 이사장께서 '아들 마약 밀수 안 했다. 내가 범인 잡겠다'라고 공언하셨다. 그런데 지금 4년 반이 흐르고 나서 유 이사장께서 '범인 데려왔다'라고 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 이것도 역시 국민 기망 행위"라며 "지난 5년간 참 편하게 사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이런 위선과 허위의 거탑은 더 이상 EBS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강 이사는 "이사장께서 거짓 해명 마시고 이제는 해명을 해야 된다"며 "본인의 입장과 거취 표명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1심이 무죄였고, 그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지금 노력하는 중이다"라며 "강 이사님께서 수사관이냐?"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저는 하늘이 주신 양심에 비추어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했다.

강 이사가 "본인이 거짓말한 것은 인정을 해야 한다"라고 압박하자 유 이사장은 "거짓말 하지 않았다. 40년~50년 전 유죄를 받고 사형 판결된 사람이 40년~50년 뒤 무죄 판결 나는 것 봤을 거다. 사법부는 전지전능하신 신이 아니다. 더 이상 할 말 없다"고 맞받았다.

유 이사장은 "지금 왜 40, 50년 전 얘기가 여기서 나와야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강 이사에게 "극우 한쪽으로 치우친 신문 한쪽을 가지고 보편화의 오류를 저지르지 마십시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날 이사회가 열리기 전부터 EBS 안팎에선 강 이사가 유 이사장에게 사퇴를 요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유 이사장은 이날 이사회를 시작하며 "신임 강 이사가 할 말이 많을 걸로 안다"며 "오늘 상정 안건이 3건이나 돼서 간단히 인사말만 하고, 상정 안건 처리 뒤 강 이사가 원하는 만큼 긴 시간을 주겠다"고 말했다. 강 이사의 언급이 기록에 남지 않도록 이사회를 모두 마무리하고 발언 시간을 주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사들까지 이에 항의하면서 강 이사의 발언은 이날 회의록에 담기게 됐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취임식을 한 뒤 곧바로 상임위원(방통위원) 회의를 열고 강규형 명지대 교수를 EBS 이사에 임명 의결했다. 2015년 9월 KBS 이사에 임명된 강 이사는 임기(3년) 도중인 2017년 12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해임됐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자행된 대표적인 방송 장악 사례로 꼽혀왔다. 강 이사는 KBS 이사에서 해임된 직후 문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내 최종 승소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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