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안 실질적 법제화는 국회 논의 몫…'갈등 2라운드' 될수도
경찰 숙원' 영장청구권 부여, '검찰 건의' 자치경찰제 법제화는 각각 무산된듯
경찰이 檢측 대상 영장 신청시 지체없이 법원에 청구하도록 조정
檢은 '특수사건' 직접수사권·송치 후 수사권·警 보완수사요구권 등 갖고 기소독점 유지
국가경찰→자치경찰 권한·인력·조직이관 구체적 안은 아직

자료사진=청와대 민정수석실 보도자료

문재인 정부가 21일 경찰에 검찰의 수사지휘 없이 수사할 수 있는 권한과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1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 등과 '검경수사권 조정 합의문' 서명식을 갖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합의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자치경찰제를 본격 추진하기로 하면서 내년부터 서울과 세종, 제주에서 이 제도를 시범 실시한다.

검경수사권 조정 합의문에는 ▲검찰과 경찰의 상호 협력관계 설정 ▲경찰에 모든 사건에 대한 1차적 수사권·수사종결권 부여 ▲검사 또는 검찰청 직원에 대해 압수·수색·체포·구속영장 신청 시 검찰은 지체없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것 등 경찰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경찰이 검사의 영장 기각에 동의할 수 없을 경우 고등검찰청 산하 영장심의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향후 경찰청은 행정 기능만 직접 통제하며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을 신설해 수사를 전담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개편할 계획이기도 하다.

국수본은 종전 경찰의 수사 기능을 총괄 지휘하는 역할을 맡게 되며 종전 사법경찰이 수행하던 1차적 수사는 물론 안보(대공)수사까지 포괄한다. 본청 특수수사과나 지능범죄수사과 등 굵직한 사건을 수사하던 부서는 지방청으로 옮겨져 국수본의 지휘를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은 일부 특수사건(부패·경제·금융·증권·선거·군사기밀보호법·위증·증거인멸·무고 등 기타 사건)에 관해 ▲직접 수사권 ▲송치 후 수사권 ▲경찰수사에 대한 보완수사요구권을 갖기로 했다. 기소권 독점은 유지한다.

아울러 검찰은 경찰이 이유 없이 보완수사요구에 불응하거나, 경찰이 수사권을 남용한다고 판단했을 때 ▲직무배제 및 징계 요구권 ▲송치 후 수사권 통제권도 갖는다. 동일 사건을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중복 수사할 경우 수사권을 검사에게 우선 부여한다.

경찰이 요구를 거듭해 왔던 '영장청구권' 확보는 무산됐다.

문재인정부는 이번 수사권 조정의 핵심이 '검찰과 경찰의 대등적 협력관계와 상호견제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자부 장관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서명식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자부 장관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서명식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검경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갈등은 70여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12월 미(美) 군정은 경찰에 수사권을, 검찰은 기소권을 갖도록 권한 분담을 추진했다.

12년 뒤인 1954년 2월 검찰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쥐어 준 지금의 '형사소송법'이 태동했다. 당시 경찰에 수사권을 독자적으로 부여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검사 출신인 엄상섭 의원과 한격만 검찰총장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1962년 5차 개헌 당시 '검사에 의한 영장신청 조항'을 형사소송법과 헌법에 명시하면서부터 검경수사권 조정 갈등이 커졌다. 이후 경찰은 교통과 절도, 폭력 등 민생범죄를 비롯해 일부 수사권을 법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해 왔지만 번번이 검찰의 반대와 국민의 불신에 막혀 좌절됐다. 
 
수사권 조정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시기는 20여 년 전 김대중 정부 때부터다. 검찰에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른바 '검찰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민생치안 관련 일부 범죄에 한해 경찰에 수사권을 주겠다고 공약하는 한편 자치단체장이 지방경찰을 관할·감독하게 하는 '자치경찰제'를 실시할 뜻도 내비친 바 있다. 그러나 자치경찰제는 '국가기관'인 검찰이 자치경찰을 수사 지휘하는 상황이 벌어져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고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김대중 정부 때의 기류가 이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협조하에 2004년 '수사권 조정협의체'와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회'가 꾸려지면서 기대감이 일었지만 이 역시 검찰 측의 반대로 불발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검경 갈등이 본격화한 가운데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경찰의 독자적 수사 개시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경찰이 원하던 완전한 검경수사권 조정안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이 사퇴하고 홍만표 대검찰청 기획조정실장 등 대검 검사장급 간부 전원이 사의를 표하는 등 반발이 컸다. 같은해 건설현장 함바집 운영권 비리 의혹에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연루되면서 경찰은 수사권 조정에 더 이상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됐다.
 
박근혜 정부 당시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는 문재인 정부 들어 가속화됐다. 문 대통령은 19대 대선공약으로 검경수사권 조정을 내걸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대신한 격인 국정기획자문위도 수사권 조정을 포함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자문위는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연말까지 수사권 조정안을 마련해 2018년부터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21일 정부가 발표하기에 이른 이번 수사권 조정안은 대통령비서실과 법무부, 행정안전부로 구성된 3자 협의체가 11회 걸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합의문에는 "수사권 조정은 자치경찰제와 함께 추진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 그동안 문무일 검찰총장이 '자치경찰제를 수사권 조정과 동시에 실시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취지로 청와대에 건의한 것이 일부 받아들여진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법에 자치경찰제 시행을 명문화하는 수준까지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측은 경찰이 수사 외에도 치안·교통·정보 등 다양한 기능과 업무를 하기 때문에 검찰의 사법적 통제가 어렵다면 주민에 의한 통제장치라도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개했다고 한다.

중앙 경찰 조직의 비대화를 견제하는 취지를 지닌 자치경찰제는 현재 제주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제주에는 2006년 우리나라 최초로 자치경찰제가 도입돼 주민의 생활안전, 지역 교통활동, 공공시설 및 지역행사장 경비, 관광객 안내, 환경·위생·산림 등 17종의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해왔다.

다만 자치경찰의 수사권이 제한돼 있고 자치경찰의 사무가 국가경찰 업무의 일부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있어, 정부는 현행 제주자치경찰의 사무 수준보다 확대된 자치경찰제를 내년 안으로 서울과 세종, 제주 등지에서 시범 운영하는 것으로 합의문에 명시했다.

자치경찰의 사무·권한·인력 및 조직 등은 자치분권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경찰은 ▲자치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기 위한 자치경찰위 설치 계획 ▲비(非)수사 분야(지역 생활안전·여성청소년·경비·교통 등) 및 수사 분야의 사무 권한 및 인력과 조직의 이관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자치분권위에 제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문에서 다뤄진 자치경찰제 도입 방안은 '국가경찰의 기능 중 어디까지를 자치경찰에 넘겨줄지'에 대한 명확한 범위 등이 담겨 있지 않아 추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경찰 측에서는 '경찰에 대한 검찰의 간섭과 통제권은 남았지만 경찰은 여전히 검찰을 견제할 장치를 쥐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경찰의 숙원이었던 '영장청구권'이 이번에도 무산되면서 '유명무실론'까지 조심스레 제기됐다. 

합의문은 자치경찰제 도입 이전에도 국가경찰 사무 중 일부를 자치단체에 이관하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구체적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자치경찰로 이관할 국가경찰의 수사 기능을 놓고 관련 부처가 종류와 범위 등을 협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한편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이 그대로 법제화하려면 국회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전망으로, 국회 내에서 이견이 적지 않다면 수사권 갈등 '제2라운드'가 될 수도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박경미 원내대변인 논평을 통해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민이 주인인 정부'를 만들기 위해 '국민의,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을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이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각 당 후보들 모두 검경수사권 조정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면서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해서는 형사소송법 개정 등 입법이 필요하다"고 야권을 압박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김성원 원내대변인 논평에서 "견제와 균형, 상호 협력을 통해 검찰과 경찰이 권력이 아닌 국민에게 봉사하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드루킹 게이트'와 검찰 인사에서 보듯이 아직도 검찰과 경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권력은 그에 따른 보은인사와 줄 세우기를 하는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또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이 더 많은 이권을 챙기기 위한 싸움터가 아니다"면서 "한국당은 국회 논의를 통해 검찰과 경찰이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수사권 조정안을 여과없이 받아들일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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