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컨트리가수 제이슨 알딘(Jason Aldean). [사진=연합뉴스]

 

국기 화형식은 대개 외교 마찰을 빚는 상대국의 규탄 집회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자국 국기 불태우기는 좌파 혹은 극좌 단체가 주관하는 정치 집회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컨트리가수 공연장에서 성조기 화형식이 진행된 사실이 외신을 통해 보도돼 그 맥락에 대한 궁금증이 쏠린다.

시카고 트리뷴과 뉴욕포스트 등이 11일(현지시각)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극좌 단체 '시카고 혁명 클럽(Revolution Club Chicago, RCC) 회원 20여명이 지난 9일 밤 유명 컨트리가수 제이슨 알딘의 전국 투어 콘서트장에서 성조기 화형식을 벌였다. 해당 콘서트장은 시카고 남서쪽의 교외도시 틴리파크의 대형 야외공연장인 '크레딧 유니온 원 앰피시어터'로, 공연장 입구에서 화형식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혁명공산당(Revolutionary Communist Party)와 연계됐다고 알려진 이들은 지난 5월 출시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알딘의 노래 '이 짓을 소도시(작은 마을)에서 해 보시지(Try that in a small Town)'에 반발해 화형식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알딘은 이 노래에서 '무법천지'로 전락해가는 진보 성향의 대도시와 미국의 법과 질서, 전통적 가치를 보존해나가는 소도시를 대비시키고, 소도시에서 법을 어기거나 선을 넘으면 처절히 응징될 것이란 메시지를 담았다. 이는 좌파가 추구하는 '전통적 가치관 해체' '사회 전복'과는 정반대다. 극좌 단체가 왜 알딘의 콘서트장에서 성조기 화형식을 벌였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사건의 진행 상황은 다음과 같다. '시카고 혁명 클럽'의 공동대표 리오 파고가 성조기에 불을 붙이자 경찰 10여명이 시위대를 둘러쌌다. 그후 한 경찰관이 소화기로 불을 껐다. 성조기가 불타는 동안 혁명 클럽 회원들은 "우린 이 일을 소도시에서 해냈다. 노예제·대량학살·전쟁 (등), 미국은 결코 위대했던 적이 없다"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성조기 화형식이 주변에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경찰관들은 미국 수호 세력, 혁명 클럽 회원들은 미국 타도 세력으로 대비된다. 

특히 혁명 클럽 회원들은 과거 우리 태극기를 불태웠던 한국 좌파 세력들과도 닮았다. 지난 2003년 이화여대 총학생회 학생들이 113주년 노동절맞이 전국학생투쟁위원회에서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지원 및 파병에 반대해 진행했던 태극기 화형식, 2015년 세월호 참사 1년 전국집중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한 남성의 태극기 화형식이 연상된다. 

2003년 태극기 화형식을 벌이는 이대 총학생회. [사진=뉴스파워]

 

이들은 태극기를 태움으로써 자신들이 단순 비판 세력이 아닌 국가 전복의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 미국 혁명 클럽 회원들의 성조기 화형식에서도 노예제·대량학살·전쟁 등 미국의 치부만을 언급하는 것으로 볼 때 마찬가지의 의도가 드러나는 것으로 풀이된다. 

파고 공동대표는 성조기 화형식에 대해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표현의 자유'는 미국이 최우선시하는 가치인데, 미국을 부정하는 세력이 미국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고 모순이란 지적이다.

알딘의 노래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극찬과 비난이 공존한다. 단적으로 성조기 화형식 소식을 전한 시카고 트리뷴의 경우 "소도시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사법 절차 없이 사적 처벌을 가하는 '린치'를 연상시킨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알딘의 노래가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담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지나친 자치주의, 사적 처벌로 경도될 가능성도 품고 있다고 보는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이 곡 뮤직비디오에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을 비하하는 장면이 포함됐다는 비판이 나와 컨트리뮤직텔레비전(CMT)이 해당 뮤직비디오 방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BLM운동의 여러 양상 중 폭동과 약탈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미국 보수 진영은 비판한 반면 진보 진영은 옹호하는 등 여론이 양분됐는데, 알딘 자신은 "인종을 언급하거나 지적하는 가사는 단 한 줄도 없다"며 "뮤직비디오는 모두 실제 뉴스 영상으로 제작됐다"고 비판 여론에 대해 반박했다.

알딘의 전국 투어 콘서트는 다음달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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