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가 지난 8월말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프로세서(통신용 반도체)가 내장된 새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Mate 60 Pro)’를 깜짝 출시하면서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향후 미국의 대중국 경제제재가 강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화웨이, 7나노 칩 사용한 첨단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 출시...수입 안되는 ASML장비는 어디서 구했지?

7나노 공정은 네덜란드 기업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를 갖춰야 가능하다. ASML의 장비는 미국에 의해 중국 수출이 금지된 품목이다. ASML은 최첨단 반도체 장비를 독점 생산하고 있는 기업이다. ASML이 EUV 노광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않았는데, 화웨이가 7나노급 통신용 반도체를 내장한 최첨단 스마트폰을 생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인들은 미국의 대중국제재를 조롱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중국 소셜미디어(SNS)에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을 화웨이 스마트폰의 '홍보 대사'로 조롱하는 밈들이 올라오고 있다. 합성한 가짜 광고 영상 속에서 러몬도 장관은 “중국에 대해 나보다 더 강경한 상무장관은 없다”고 말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웨이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Mate 60 Pro)를 들고 포즈를 취한다. 러몬도 장관은 대중제재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온 인물이다.

SK하이닉스, 자사 반도체가 메이트 60 프로에 장착돼...깜짝 놀라 경위 파악 중

SK하이닉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미국 블룸버그가 지난 7일(현지시각) 메이트 60 프로에 SK하이닉스 반도체인 LPDDR5가 탑재됐다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는 즉각 “미국의 수출 규제를 철저하게 준수한다는 게 당사의 확고한 방침이다. 화웨이와 거래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미국 산업안보국에도 신고하고 자체적으로도 경위 파악에 나섰다.

미국 정부는 2019년 화웨이에 대한 제재 부과를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화웨이 통신 장비에 해킹 도구를 설치해 기밀을 빼간다는 게 제재의 이유였다. 2020년 5월부터는 미국 기술이 포함된 반도체를 화웨이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업을 자국 내에서 해외로 확대했다. 화웨이와 그 계열사를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상무부 거래제한 명단(entity list)에 올려 수출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은 한국 기업들도 화웨이에 반도체 수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SK하이닉스가 화웨이와 직접 거래했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중 반도체 패권전쟁의 와중에서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조를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에서 D램이나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지만, 신규 생산시설 투자는 미국쪽에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나 권역별 브로커(중개상)가 개입하는 반도체 유통 과정의 특성을 감안할 때,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일부가 화웨이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화웨이가 다른 업체를 끼고 ‘우회 주문’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범용화돼 있다. 화웨이가 확보한 SK하이닉스 반도체에 맞춰서 기판을 제작한다면 SK하이닉스의 협력 없이도 SK하이닉스 반도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에 적발된 LPDDR5는 SK하이닉스의 한국·중국 공장에서 제조·패키징(포장)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9년부터 LPDDR5를 양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제조 물량이 화웨이 쪽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는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이라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미국측 수출장비 규제 유예가 종료될 위험에 직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오는 10월말까지로 정해진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장비 규제 유예가 연장되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 반입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내고 1년 유예한 바 있다. 이번 화웨이 사태로 대중국 규제를 강화할 경우, 1순위가 대중 반도체 수출장비 규제 유예를 종료시키는 것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생산공장은 그동안 유예조치 덕분에 ASML의 첨단 장비를 중국 생산공장에 도입해 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었다. 만약에 미 행정부가 오는 10월말로 유예조치를 종료한다면 중국 생산공장들은 앞으로 중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 화웨이의 첨단 스마트폰 출시 직후 아이폰 사용 금지령 내려

이번 사태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세계 최대 상장기업인 애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8일(현지시간) ‘기술의 왕’인 애플이 미중 경제전쟁의 와중에서 장기판의 '졸'(game piece)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베이징 매장에 진열된 아이폰.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 베이징 매장에 진열된 아이폰.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WSJ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6일 중앙정부 기관 직원들에 대해 아이폰을 포함한 해외 브랜드 기기 사용을 금지시켰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 같은 조치가 국영 기업과 함께 기타 정부 지원을 받는 기관에도 확대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애플은 오는 12일 최신 스마트폰 아이폰15 시리즈를 출시할 예정이다. 중국 당국의 해외브랜드 기기 사용 금지 조치는 아이폰의 신제품 출시를 정조준한 대책인 것이다.

한 마디로 중국의 상위 소득계층이 애플의 아이폰 대신에 화웨이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메이트 60 프로를 구매하도록 중국 당국이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중 경제전쟁, 아이폰을 중국에서 축출시켜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1년에는 약 5천630만명의 도시 근로자가 '국유 기관들'(state-owned units)에 고용됐다. 국유 기관 직원들은 전국 도시 평균보다 약 8% 높은 임금을 받는다.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2억 3천만대의 아이폰을 출하하는 애플 입장에서는 중요한 잠재 고객층이다. 실제로 아이폰 판매량의 19%는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아이폰을 구매하던 중국인들은 앞으로 화웨이의 메이트 60 프로를 구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경제전쟁으로 아이폰이 중국에서 축출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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