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8월 18일 한미일 3국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 정신·원칙·공약에 합의하였다. NATO가 어느 한 회원국에 대한 침략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보고 공동 대응하는 체제와 유사한 단합을 다짐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일 3국 정상은 G-20, APEC, ASEAN, NATO와 같은 다자간 회의에 참석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별도로 회동해왔다. 한국 GDP의 2배 정도 크기의 ASEAN의 정상회담에 참석한 기회를 빌려서 옹색하게 만난다면, 3국 회동의 비중이 무겁다고 할 수 없다.
 
  한미일 3국의 GDP 생산은 전 세계의 32퍼센트를 차지한다. 그 결속의 힘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이번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은 한미일 3국만의 독자적 회동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의제의 범위도 한반도 주변 지역을 넘어 아태지역 전반과 그 너머까지로 넓혔다. 앞으로 한미일 3국 공동체는 전 세계 의 방향을 선도할 것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크게 부상하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외교 지평을 새롭게 열었다. 강대국 관계의 종속변수에서 중심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치 고구려가 요하(遼河) 유역에서 수(隋)·당(唐)과 자웅을 겨룰 때의 위상을 재현하는 것과 같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후 압록강 두만강 이남으로 영역을 좁히고 모화사대(慕華事大)에 안주하던 역사를 뒤집는 쾌거였다.

  그 출발점은 한일관계에서 밀고 당기기의 지루한 늪을 벗어나 화해와 협력의 손길을 뻗친 데 있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를 뛰어넘어 한일 간 협력의 시대를 열자고 기시다 총리에게 앞장서 제의하였다. 국내 여론 상 부담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행보를 시작하였다. 실제로 국내 여론 상 지지율은 떨어졌다. 그것이 국면 전환의 촉발점이 되었고, 이를 받아서 바이든 대통령은 3국 결속을 위한 회심의 큰 걸음을 내디뎠다.

  이웃 국가 간 관계는 언제나 미진한 구석이 남는다. 또한 동북아의 지역 안보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축으로 하는 이등변 삼각형과 같은 어정쩡한 형식으로 유지되었다. 한일 간에는 과거사의 그늘 때문에 상호방위 협력까지 다짐하는 밀착 관계로 진화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전 세계가 함께 연동하는 국제정세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한일 양국의 협력이 긴요하다는 공감대가 서서히 이루어졌다. 군대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가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는 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우긴다면 너무 완고한 게 아닌가? 윤미향 같은 인물들이 앵벌이처럼 진을 치고 정치권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반일 운동에 군불을 지피는 장난을 벌인다는 속셈은 온 국민이 알아채 버렸다. 속으로는 북한 독재정권의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에 따라 반일, 반미를 외치는 놀이판이었다. 그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한다면 한국 사회의 의식 수준은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한국은 1948년 건국으로 해양세력의 일원이 되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여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나라를 세웠다. 6.25남침으로 온 국토가 폐허가 되고서도 좌절하지 않고 교육하고 재건하며 생산하였다. 5대양 6대주를 누비고 다녔다. 원양어선으로 남태평양과 인도양, 대서양에 나가 참치를 잡고, 열사의 땅 중동의 건설에 뛰어들고, 알래스카 동토에 파이프라인을 깔고, 베트남 전선에 참여하여 부국강병의 토대를 쌓았다. 

  기업가들 특히 대기업은 맨땅 위에서 제철, 조선, 자동차. 반도체, 바이오 같은 주요 산업을 일으켜서 선진국을 따라잡고, 이제 선두로 나서고 있다. 그들의 과감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였다. 그 결과를 지금 5천만 국민이 나누어 향유하고 있다. 1인당 소득이 3만 5천 달러가 되니 개도국의 젊은이들은 10배 가까운 벌이를 위해 한국행 비자를 얻으려고 줄을 서고 있다. 한국어 학습 열기가 뜨거워졌다. K-칼처도 함께 폭발하니, 전 세계 젊은이들이 오고 싶을 수밖에 없다. 밤중에도 치안이 안전하여 여성들도 선호하는 여행지가 되었다. 

  2차 대전 후 탄생한 아시아·아프리카의 다른 신생국이 넘보지 못하는 성과다. 30년 장기침체에 빠진 일본과도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물론 한국보다도 100년 앞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축적한 기술과 경험은 아직도 우리가 배워야 하지만, 최신의 IT와 AI 기술은 삼성, 현대, SK, LG를 비롯한 선두주자들이 일본기업을 앞서고 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에 한국보다 10배 이상 잘 살던 일본과 대등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1960년대 초반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발전하리라고 상상이라도 했던 청년은 없었다. 당시 좌파 교수들의 쇄국적 가르침에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과의 경제협력에 극히 부정적이었다. 매판자본으로 한국경제는 일본에 아주 종속되어버린다고 경고하였다. 월간잡지들이 민족의식을 고취한 것은 업적이지만, 지나치게 외국자본을 두려워하여 문호를 걸어 잠그자고 했다. 국제사회의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채 평생 일본을 능가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그들 지식인 자신이 일본 통치 시기에 받았던 교육의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한국의 위상변화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건 미국이다. 2차대전 후 해방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미국의 지원은 절대적이었다. 38도선 이북에서 1946년 2월 소련군의 지원으로 김일성 집단이 임시인민위원회 통치조직을 발족시키자, 이승만은 정상적인 합의를 통해 통일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1946년 6월 3일 정읍발언으로 자유민주주의 건국을 선언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채 2년도 되기 전 1950년 6월 25일 스탈린의 지도하에 마오쩌둥의 지원을 받아 김일성이 남침을 개시하여 3년간 전 국토는 쑥대밭이 되었고, 수백만의 사상자와 수천만의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군이 참전하여 낙동강 전선을 방어하고 9월 15일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침략군을 격퇴하였다. 

  6.25의 전화 속에서도 미국은 한국군의 주요 간부를 미국으로 초청하여 군사교육과 자유민주주의 사회 경험으로 넓은 세상을 보게 하였다. 그 장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핵심 엘리트였다. 미국의 선진제도와 기술을 습득한 그들이 한국 근대화의 시동을 걸었다. 군에 도입된 근대행정이 5.16 후 일반 행정과 국가 운영에도 적용되었다. 군에서 먼저 사용한 타자기를 일반 행정에 도입하였고, 나중에는 전산화로 발전시켰다. 과거에 유력 인사의 조카나 친척을 촉탁으로 잠시 쓰다가 특별채용하던 소위 엽관제(Spoil System)를 폐기하고 공개경쟁시험으로 충원하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우수한 인재들이 국가 운영의 중심이 되었다. 

  그들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한정된 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경이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차량도 드물던 시기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여 산업발전의 동맥을 깔았고, 산업의 쌀을 생산하는 포항제철을 억척같이 완성하여 중화학 공업의 기초를 닦았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어느 길로 가야 할 것인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차선의 길인 것은 틀림없다. 잘못된 정책을 스스로 시정할 수 있는 제도다. 극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에서는 정책적 잘못을 바로잡기 어렵다. 권력자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비판기능이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잘못을 범하는 덫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우리는 성공의 역사의 토대인 자유민주주의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자만하지 않되 자신감을 가지고 국제협력을 강화하여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2차 대전 이후 압도적인 국력으로 세계질서를 이끌어온 패권국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자유언론의 비판기능이 살아있는 미국 사회가 힘없이 무너질 가능성은 없다. 한국의 건국과 발전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준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온 국민이 땀 흘리는 사회를 만들어 든든한 미래를 도모하고 국민의 행복 지수도 한껏 높여야 한다. 

김석우 객원칼럼니스트(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전 통일원 차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