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권이 없애려고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한국경제인협회, ‘한경협’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출발을 했다.

문재인 정권의 압력으로 전경련을 탈퇴했던 삼성과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이 7년만에 재가입했지만 한경협의 초대 회장은 재계 서열 70위권의 풍산그룹 류진 회장이 맡았다.

삼성전자 이재용, 현대차 정의선 등 재계의 뉴리더는 물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등 한경협이 원했던 10위권 내 기업인들 중 그 누구도 회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경련의 새 출발을 놓고 가장 많이 제기된 문제가 정경유착(政經癒着)에 대한 우려다. 전경련 퇴출에 앞장섰던 친민주당계 내지 좌파 언론은 한경협의 발족에 맞춰 일제히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를 끄집어 냈다.

삼성그룹 의사결정의 정점에 있는 준법감시위원회 또한 한경협 가입에 대해 “정경유착의 문제가 드러날 경우 즉각 탈퇴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정경유착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와 기업 사이에 이루어지는 부도덕한 밀착 관계. 기업가가 정치인에게 정치자금, 즉 뇌물을 제공하고, 정치인은 기업가에게 여러 가지 특혜를 베푸는 행위를 의미한다.

전경련과 정경유착이 동일시 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사유가 됐던 국정농단 사건에 전경련이 개입된 때문이다.

최순실씨가 주도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전경련이 모금 창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16년 12월 7일 이재용·구본무 등 9명의 대기업 총수들이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불려가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하에서도 기업에 대한 정권의 부당한 압력, 새로운 형태의 정경유착은 그치지 않았다

실제 2019년 10월4일, 당시 자유한국당의 정태욱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정권 판 K스포츠·미르재단의 강제모금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금융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한 '(재)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에 대해 은행연합회가 250억원을 출연하고, 각 은행이 강제할당에 의한 출연을 하도록 권력이 그림자 역할을 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한국 대법원의 위안부 배상판결에 따른 일본의 수출금지 무역분쟁이 발생하자 대기업을 사주해 반일선동에 앞장섰던 것,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위안부 배상기금을 모금하려 했던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한국 자본주의,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역사는 짧기만 하다.

1961년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5천년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은 있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유 시장경제, 자본주의에 대한 ‘마인드’ 자체가 없었다.

박정희 장군과 군인정권은 자유당 정권에서 급성장한 삼성·삼호·럭키화학·현대건설 등의 총수를 부정축재자로 처벌하려고 했다. 일본에 도피했던 이병철 삼성 회장이 귀국해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과 면담을 갖고 기업이 경제발전의 핵심임을 설득하고 국가 산업 재건에 이바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전경련이다.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사는 기업인들이 박정희 정부가 제시한 경제발전 아이디어를 뒤쫓아가느라 바쁜 형국이 됐다. 설탕이나 밀가루처럼 당장 필요한 소비재를 생산해서 쉽게 돈벌이를 하는데 익숙했던 기업인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육성 의지는 무모해 보였지만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한경협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윤리경영 문제다. 류진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어두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는 끊어내겠다”면서 “윤리위원회를 신설하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분을 위원장과 위원으로 모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리헌장도 채택했다.

하지만 한경협이 정경유착의 어두운 과거, 윤리경영이라는 속박에 얽매여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논리의 전파자라는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할 것에 대한 우려가 적지않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시절 전경련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반기업정서와 맞서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기존 좌파 시민단체와 민노총에 야당인 민주당까지 가세함으로써 벌어진 광우병 사태가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전경련은 좌파 반기업세력에 맞서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논리를 전파하는 단체와 언론에 대한 지원사업을 시작했는데, 문재인 정권은 전경련의 이같은 활동까지 정경유착 행위로 몰아붙였다.

한경협의 윤리헌장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확산과 강화에 진력을 다한다’라는 구절이 들어가 있다. 한경협이 정경유착과 같은 잘못된 과거는 쳑결하되, 반기업세력과는 타협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관련, 우려되는 것이 한경협의 미래에 대해 류진 회장이 밝힌 구상이다. 그는 한경협을 자신이 이사직을 맡고 있는 미국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와 같은 중립적인 싱크탱크로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기업들이 처한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중 한국 만큼 좌파 시민단체나 노조, 그에 동조하는 정치세력에 의해 반기업정서가 팽배한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권 5년동안 주요 대기업들이 이같은 좌파 반기업단체나 언론에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 ‘숙주’ 역할을 해온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위한 ‘세일즈맨’을 자처하고 있는데, 지금 세계 각국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자국 기업의 수출과 이익을 챙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바이든 전 현직 미국 대통령은 자국 기업보호와 투자유치에 모든 것을 걸고 있고,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수뇌 또한 지난 수십년간 전 세계에 무기와 항공기, 원전 등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최우선 업무로 여겨지고 있다.

한경협으로 새출발하는 전경련을 놓고,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를 위주로 온갖 우려를 쏟아내고 있는데, 정경유착에 대해서도 개념의 새로운 정립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업상 특혜를 받기위한 뇌물제공과 같은 고전적 의미의 정경유착은 어차피 사법적 처벌대상이 되는 범죄행위다. 검찰과 공정위, 금감원 같은 기관이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 세계경제의 흐름을 보면 첨단 대기업의 수출에 모든 것을 걸고있는 대한민국은 그 어느때 보다 끈끈하고 밀접한 정경유착이 오히려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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