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조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쟁의(파업) 수순을 밟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18일 제 17차 협상에서 교섭 결렬을 선언했고, 동시에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행위 조정 신청을 했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은 정년 연장 문제를 두고 노사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사진은 현대차 노조. [연합뉴스자료사진]
현대자동차 노조의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은 정년 연장 문제를 두고 노사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사진은 현대차 노조. [연합뉴스자료사진]

현대차 노조 25일 파업 찬반 투표...내연기관차 인력 줄여야 하는데 오히려 ‘정년 연장’ 요구

이어 2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쟁의 행위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25일에는 전체 조합원 대상 파업 찬반투표를 벌이게 된다. 이번 찬반투표는 투표소에서 직접 기표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바일 투표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단 실무교섭 등의 창구는 열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사 입장 차이가 크다고 판단해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고, 조합원 투표에서 찬성이 전체 조합원 3분의 2를 넘으면 노조는 합법적 파업권을 획득하게 된다.

현대차 노조가 이번에 파업을 벌일 경우 5년만에 파업을 하게 된다. 현대차가 최근 수년 동안 실적 개선을 이뤄낸 데는 노조의 무파업과 같은 노사화합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 따라서 파업은 회사뿐만 아니라 노조에게도 큰 손실을 안기는 선택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에 노조는 기본 요구안으로 △기본급 18만4,900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전년도 순이익 30%(주식 포함)를 성과급 지급 △상여금 900% △각종 수당 인상과 현실화 등을 담았다. 또 별도 요구안은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령 시기와 연동해 최장 만 64세로 4년 더 연장, 전기차 신공장 관련 인력 운영 방안 마련, 기존 파워트레인 고용 변화 대응 등이다.

이같은 노조 요구 중에서 최대 난제는 ‘정년 연장’이다. 노조는 아직 일할 능력이 있는 고령 조합원이 많아 정년 연장이 필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사측은 사회적으로 부정적 여론 등을 고려해 정년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전기차 시대 생산직 규모는 내연기관차의 38% 수준...‘자연감소’가 해법인데 노조는 4년이나 정년 연장 요구

그러나 현대차 사측의 실제 속사정은 다르다. 가솔린과 디젤과 같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인력감축이 불가피하다. 한국자동차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전기차 1만대를 만들 때 투입되는 생산 인력은 내연기관차의 38% 수준에 불과하다. 내연기관차에는 수많은 부품이 들어가지만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를 제외하면 엔진도 불필요하다. 때문에 생산라인이 단순화되고 생산직 직원도 대대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에서도 강성 노조로 손꼽히는 현대차 노조의 위세에 눌려 경제논리에 따라 인력 구조조정도 할 수 없다. 생산라인 이동만 하려고 해도 노조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실정인데, 인력감축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평균 억대 연봉을 받는 ‘킹산직’으로 불리우는 현대차 생산직은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정년 보장 집단이라는 게 정설이다.

결국 현대차 사측은 10여년전부터 정년퇴직이라는 수동적 해법을 선택했다. 인위적으로 감축하지 않는 대신 정년퇴직하는 내연기관차 생산직 직원에 상응하는 신입 직원을 채용하지 않음으로써 ‘자연감소’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실제로 현대차·기아의 정규직을 합친 숫자는 지난 2020년 10만 1906명에서 올해 상반기 9만 6539명으로 감소했다. 2년 6개월만에 5367명이 줄어든 것이다.

현대차 정규직 직원의 경우 지난해 연말 6만4840명에서 올 상반기 6만3020명으로 6개월만에 1820명이 줄었다. 베이비부머들의 정년 퇴직 효과이다. 같은 기간 기아는 3만4260명에서 3만3519명으로 741명 줄었다.

이처럼 자연감소를 통해 내연기관차 인력을 감축하는 대신 미래차 핵심 분야인 소프트웨어 부문 등의 신규 채용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현대차 노조가 무려 4년이나 정년연장을 요구함으로써 사측의 전기차 전환 구상은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내연기관차 노동자 중심인 전미자동차노조(UAW), IRA의 최대 걸림돌로 지목돼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 국한된 게 아니다. 미국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핵심과제 중의 하나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한 신규투자 확대를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로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지목되고 있다.

UAW는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사인 GM, 포드, 스텔란티스의 노동자 15만명 가량을 대표하는 단체다. 내연기관차 생산직 노동자들의 이익단체인 것이다. 문제는 IRA에 대해서 격렬하게 반대한다는 점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적고 제작 과정이 단순하다. 필요한 정규직 직원도 생산직 라인보다는 개발 및 서비스 인력 중심으로 변화하게 된다.

숀 페인 전미자동차노조(UAW) 회장.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숀 페인 전미자동차노조(UAW) 회장.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따라서 UAW로서는 IRA를 저지하려고 한다. 숀 페인 UAW 위원장은 “전통적인 내연기관차 공장보다 임금을 적게 주려 하는 전기차 회사에 수십억에 달하는 납세자의 ‘달러’를 지원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UAW의 무리한 임금 및 복지 요구도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투자를 막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블룸버그의 분석이다. UAW는 임금 46% 인상, 주 32시간 근무제 도입, 퇴직 수당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GM, 포드 등의 완성차 업체가 이 같은 UAW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800억 달러(약 107조4400억원)에 달하는 추가 비용이 소요된다.

UAW의 전기차 투자 방해전략= 무리한 임금 인상 요구와 파업, 현대차 노조와 닮은꼴

나아가 UAW는 조만간 GM 등 3대 완성차 업체의 직원 15만명의 찬반 투표를 거쳐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그럴 경우 10일 이내에 56억 달러 (약 7조 52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폭스 비즈니스가 19일(현지시간) 미시간주에 있는 싱크 탱크인 앤더슨경제그룹(AEG)의 분석을 인용해 보도했다.

UAW는 미국 완성차 3사의 노조원을 대표해 4년마다 노사협상을 한다. 기존 협약은 오는 9월 14일 종료된다.

완성차 업체들이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 생산 체제로 완전히 전환하면 생산라인 노동자 수가 현재보다 3분의 1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UAW로서는 노조원 급감이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숀 페인 UAW회장은 미국 자동차 3사와 한국 배터리 기업이 설립한 합작법인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처우 개선도 요구하고 있다. 배터리 기업 근로자를 UAW 노조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현대차 노조가 기본급 18만49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는 것도 UAW의 전략처럼 전기차 투자를 억제하는 효과도 겨냥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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