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가 보훈정책의 정체성 혼란을 정리하고 자유민주 사관에 입각한 건국훈장 수훈자 재선정 작업에 나서야

#. 윤석열 대통령이 내린 '독립운동'의 정의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의 독립운동에 대해 "단순히 빼앗긴 국권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는 공산 전체주의와의 싸움”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을 전 세계에 선포하는 자리에서 행한 연설의 맥을 잇는 중대한 메시지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전 세계에 선포하며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연설을 했다.

“민주정체(政体)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민이나 정부는 항상 주의해서 개인의 언론과 집회와 종교와 사상 등 자유를 극력 보호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40여 년 동안 왜적의 손에 모든 학대를 받아서 다만 말과 행동뿐 아니라 생각까지도 자유로 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 민족이 절대로 싸워온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 활동과 자유 판단권을 위해서 쉬지 않고 싸워 온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인이 일제 치하에서 수행한 독립운동의 목적이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위해서”라고 확고하게 의미 부여한 것을 윤 대통령이 75년 만에 계승한 셈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경축사와 대한민국 정부의 보훈 정책은 엇박자를 내며 심각하게 헛돌고 있다. 정부 수립 이후 2017년 1월까지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수훈자는 대한민국장(1등급) 30명, 대통령장(2등급) 93명, 독립장(3등급) 806명, 애국장(4등급) 3,886명, 애족장(5등급) 5,016명 등 총 9,831명이다.

이들 수훈자 중 대표적인 몇 사람의 이력을 추적해 보면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 세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한 사람보다 그런 가치를 파괴하고 주자성리학이 판치는 전제 군주국으로의 회귀를 위해 투쟁한 자,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한 자, 혹은 국가머저 파괴하겠다고 나선 아나키스트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이 나라의 보훈 정책이 자유·민주 가치를 부인하거나 파괴를 시도한 자들에게 점령당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승만 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부가 건국훈장 수훈 대상을 자유·민주의 원칙이 아니라, 국수적 종족주의에 입각한 반일을 기준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애오라지 ‘반일·항일’의 기준만 충족시키면 공산주의자건 사회주의자건 아나키스트건 가리지 않고 건국훈장이라는 월계관을 부여한 결과다.

#. 유인석·최익현을 이승만·김구·트루먼 반열에 올려놓은 박정희 정부

건국훈장의 정당성에 심각한 하자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부류는 양반 유림, 즉 주자성리학자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인석과 최익현의 일대기를 분석해 보겠다.

송시열은 조선의 정신세계를 소중화, 사대모화라는 지울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시킨 주인공이다. 유인석과 최익현은 송시열의 쇄국·위정척사 DNA를 스승 이항로를 통해 이어받은 적통장자다. 덕분에 그들의 사상적 계보는 중화를 수호하고, 일본과 서양을 야만의 족속 오랑캐로 배척하는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이다. 유인석은 자신이 지은 성리학 교과서 『우주문답(宇宙問答)』에서 명나라 패망 후 공맹(孔孟)의 도맥은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아니라 조선으로 이어졌다면서 중국은 오랑캐로 타락했고, 조선은 소중화의 나라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유인석의 흉상.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유인석의 흉상.

유인석을 비롯한 주자성리학자들의 존화양이론은 목숨까지 바쳐가며 중국을 섬기는 것이 인간의 올바른 도리라고 굳게 믿는 모화사상과 동전의 앞뒷면이다. 그런 사람에게 건국훈장 중에서도 최고 영예인 1등급 대한민국장을 추서한 주인공은 1962년 박정희 군사혁명정부였다. 대체 유인석과 최익현이 무슨 활동을 했기에 박정희 정부가 이들람을 건국 및 독립운동에 관한 한 이승만, 김구를 비롯하여 밴 플리트, 맥아더, 트루먼과 동렬에 올려놓은 것일까?

#. 유인석의 활동 목표, ‘소중화 나라’ 복원

유인석·최익현은 누가 뭐래도 조선이 나아갈 방향을 근대화·개혁·개방과 정 반대인 쇄국·위정척사·봉건의 나락으로 추락시킨 주인공이다. 송시열과 이항로의 후예답게 그들은 자유·평등·입헌제·기독교·신학문·국제법·서양 법률·민주주의 등 근대적 가치관을 통째로 부정했다.

유인석은 “무분별한 평등·자유관은 세계의 최악설(最悪説)”(유인석 지음·서준교 외 역, 『의암 유인석의 사상: 우주문답』, 종로서적, 1984, 135쪽)이라고 통탄했고, 공화제와 입헌제가 기본 바탕에 깔린 자유민주주의를 극력 반대했으며, 심지어 서양 학문을 가르치는 신학교·여학교·무관학교 따위는 절대 허용해선 안 된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유인석이 여학교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성이 학교에서 평등·자유 같은 허무맹랑한 사상을 배우면 서양처럼 남편을 학대하고, 시부모를 천대하며, 자녀도 망치게 되므로 여학교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이항로 문하에서 유인석과 동문수학한 최익현은 개화운동과 의회(민회) 설립운동을 주도한 독립협회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의회란 불평분자들의 모임, 나라의 기강을 문란케 하는 존재로 폄훼하고 국가의 중흥 여부는 의회 설립이 아니라 국왕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최익현은 의회 설립을 주장하는 자들을 처벌하여 백성을 보호하고 국가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외쳤다(노명진, 「면암 최익현의 위정척사사상에 대한 일연구-사상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성신사학』 제6집, 1988, 97~126쪽).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들이 의회 설립을 통한 입헌군주제, 혹은 공화제로 이행하는 시기에 의회 폐지 및 전제군주국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나선 시대착오자가 최익현이었다. 

#. "소중화 나라를 섬기는 것이 애국"이라고 외친 유인석

유인석은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게 되자 만주·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한다. 그가 해외 망명을 한 근본적인 이유는 거국수화(去國守華)였다. “나라를 떠나 중화를 지키기 위해서”란 뜻이다. 그가 만주와 연해주에서 행한 주된 과업은 독립운동이란 미명하에 주자성리학을 널리 퍼뜨려 조선에서와 같은 소중화 세계를 부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유인석은 ‘관일약(貫一約)’이라는 향약 시행을 주창했다.

관일약의 핵심은 4애, 즉 애국(愛國)·애도(愛道)·애신(愛身)·애심(愛人)이다. 유인석은 4애 중에서도 ‘애국’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이 놀라지 마셔야 할 점은, 유인석의 애국은 우리가 상식으로 이해하는 애국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유인석의 머릿속에 든 애국이란 기자(箕子)의 나라, 즉 복희(伏羲)와 신농(神農), 요순(堯舜) 이래 화맥(華脈)이 기거하는 소중화 예의의 나라를 섬기는 것이었다(유인석, 『의암집』 권42, 「관일약」 序).

유인석이 해외 망명지에서 시행한 관일약의 내용.
유인석이 해외 망명지에서 시행한 관일약의 내용.

기자는 중국 은나라의 충신으로, 은나라 멸망을 전후해 조선으로 망명해 조선 백성을 교화했으며, 주(周)나라는 기자를 조선의 제후에 봉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복희·신농은  중국 세 황제로 거론되는 전설 속 인물이다. 그것이 전설이건 뭐건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 한민족이 아니라 중국인이란 사실이다.

요약하면 유인석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애국의 대상은 ‘중국 문명(화맥)을 계승한 소중화의 나라’다.유인석은 이그러한 소중화의 나라를 만주·연해주에 세우고, 그것을 드넓게 확대하는 행위를 ‘국권회복’으로 정의하고 있다.

#. 유인석과 최익현의 주자성리학 십자군 운동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합하자 유인석은 이에 대처하기 위한 세 가지 방향(處義三事)을 제시했다. 첫째는 나라에 화맥을 보존하는 것(保華於國). 이것은 병합에 의해 불가능하게 되었다. 둘째는 자기 몸 속에 화맥을 지키는 것(守華於身), 셋째는 화맥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것(以身殉於華)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유인석은 두 번째 방법, 자기 몸 속에 화맥을 지키는 벙법(수화어신)을 택했다. 알기쉬운 말로 풀어쓰면 자기 몸에 중화사상을 간직하여 전정한 중화를 이루는 것(중국인이 된다는 뜻)이 유인석 독립운동의 핵심이란 뜻이다.

중화사상?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국립중앙도서관의 용어해설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 도서관의 ‘사서지원 서비스’에는 중화사상을 “중국 문화가 최고이며, 모든 것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만방에 퍼져야 한다는 중국의 민족사상. 예로부터 한족(漢族)이 품고 있는 자기 민족 중심의 사상”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누가 뭐라든 유인석과 최익현의 독립운동은 한반도에서 태어난 한민족은 중국인이 되기 위해 근대화에 저항하고, 서양 및 왜놈들과 싸워 소중화 체제를 유지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철저히 중국인화 하는 것이 핵심 본질이다.

유인석과 최익현은 재수 없게 한반도에서 태어나 중국인이 되지 못한 것을 통탄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열과 성을 다해 중국을 추종하여 명예 중국인 행세라도 하기 위해 영혼까지 탈탈 털어 바쳤다. 심지어 독립운동마저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를 중국화 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

자신들이 중국인이 되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는 판에, 서양 오랑캐와 왜놈들이 나타나 근대화를 강요하질 않나, 중화 지향의 국가 시스템을  폐지하고 의회를 개설하고 개개인에게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바꾸라고 협박한다. 왜놈과 서양 오랑캐들 요구대로 근대화를 하면 양반-상놈의 계급 질서가 무너진다. 조선은 대대손손 지식과 권력과 부를 독점한 극소수 양반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상놈·노비·천민을 등쳐먹고, 흡혈귀처럼 착취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서양과 왜놈들이 요구하는 개혁·개방·근대화를 실천하면 자신들 철밥통이 깨진다.  그 결과 양반과 상놈이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어야 하고, 투표장에 가면 노비나 양반이나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상놈이 의원이 되어 양반에게 이래라 저래라 시비할 수도 있고, 일이 잘못 꼬이면 선거를 통해 상놈이 나라의 주인 자리에 오를 수도 있게 된다.

유인석·최익현 부류의 주자성리학 원리주의자들은 이런 꼴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들은 총력을 기울여 근대화에 반대했고,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일본이 차지하려 하자 "중화 수호"를 외치며 극렬 저항했다.

유인석·최익현 등 골수 주자성리학 원리주의자들과는 달리 신규식·박은식·신채호·이상룡·장지연 등 개신 유학자 그룹은 조중 반제(反帝) 연대론의 깃발 아래 뭉쳤다. 즉 중국을 도와 혁명을 성공시킨 다음, 중국의 도움을 받아 조국의 독립과 혁명을 이룬다는 구상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중국 혁명은 남의 혁명이 아니라 자신들의 혁명이었다(주효뢰, 『식민지 조선 지식인, 혼돈의 중국으로 가다』, 소명출판, 2020, 89~90쪽).

이러한 조중 반제 연대론을 근거로 해외 망명 조선인들 중 대다수는 중국(소련)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소련)공산당이 조직한 빨치산에 투신하여 중화 조국(혹은 소련)을 옹호하고, 일본에게 빼앗긴 만주(시베리아) 지역을 회복하며, 항일을 통해 중국(혹은 소련)을 구하는(抗日救中國) 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유인석과 최익현이 기울어가는 조선왕조를 재건하고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면 어느 누가 감히 시비를 걸겠는가.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들 행위의 핵심 본질은 위정척사와 쇄국을 통한 소중화 보존을 추구하는 ‘주자성리학 십자군 운동’이었다.

#. 건국훈장 수훈자 재선정하라

독립운동에 투신한 양반 유림들은  1920년대까지는 민족주의 성향의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대부터 사회주의·공산주의·아나키즘의 세례를 받기 시작했다. 이들이 공산주의 세례를 받게 된 계기는 조중 반제연대론자들과 흡사하다. 소련은 자국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조선인들에게 "공산혁명을 도와주면 후에 조선의 해방투쟁을 돕겠다”고 제안했고, 조선인들은 그 약속을 믿고 공산주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너무 순진하고 무지했다.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계급해방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불행하게도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그것을 “소련이 우리 민족을 일제로부터 독립시켜 주겠다”는 뜻으로 제멋대로 확대해석한 것이다.

조선 독립운동가들이 허무맹랑한 소련 공산주의자들 선동에 나가떨어진 이유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핵심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학문적 성찰이 깊지 못한 백면서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코민테른에서 내리는 지령을 로봇처럼 수행하거나, 일본 좌익 이론가들의 혁명 공식을 도입하는데 급급한 번역생(飜譯生) 수준에 불과했다. 이승만처럼 공산주의 이론의 악마성을 꿰뚫어 볼 의지도 능력도 없었고, 저들의 거짓된 선전선동을 극복할 만한 지적 능력도 간추지 못했다.

때문에 폭력 혁명에 의거한 공산주의 건설,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공산주의와 덥썩 손을 잡고 독립을 이루겠다고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공산주의자들도 독립운동을 한 것이 사실이니 그들을 독립 유공자로 예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주장이 횡행했다. 들어보면 그럴 듯한데,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한참 먼 허언(虛言)이다.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실현되면 인민을 등쳐먹는 착취의 도구인 국가는 자연히 소멸한다고 믿는다. 진정한 공산주의자라면 좀 있으면 해체될 국가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때문에 일제 치하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은 입으로는 독립투쟁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소작쟁의나 독서운동, 노동운동 등 계급해방운동에 매진했다. 

공산당의 핵심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문건이 1925년 서울에서 창당한 조선공산당의 활동 목표와 행동강령이다.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온갖 감시와 박해를 뚫고 조선공산당을 창당한 목적을 다음과 같이 명문화해놓았다.

“조선공산당은 폭력 혁명에 의거하여 공산주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조선 문제로서는 공산당 지도 아래에 노동자 농민의 결합에 의하여 공동전선을 전개하고, 일본제국의 통치를 변혁하여 그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려는데 있다.”

조선공산당 행동강령은 공산당 활동의 핵심 본질은 독립투쟁이 아니라 계급해방, 사유재산제도 부인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내용증명인 셈이다. 

이승만·윤석열 대통령의 정의에 의하면 이 나라의 독립운동은 “자유·인권·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어야 한다. 그런데 유인석·최익현을 비롯하여 이동휘·홍범도 등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사람들 중에는 이런 사상과 정신을 철저히 부정하고 파괴하는 활동에 온 생애를 바친 사람들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국가 보훈정책의 정체성 혼란을 정리하고 자유민주 사관에 입각한 건국훈장 수훈자들을 재선정하는 작업에 나서주길 바란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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