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필자는 근년래 '세계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 통치를 어떻게 평가했는가'란 연구서를 집필하기 위해 관련 문헌, 자료들을 섭렵해 보고 있다.

의외로 세계 식자들은 우리 생각을 훨씬 초월해 일본의 조선 식민지 통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점이 경이롭다. 그중 하나의 예로 영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스토리(Richard Storrey)의 평가를 소개한다. "(일본의 조선 통치는) 조선에 매우 많은 물질적 혜택을 가져다 주었으며, 그것은 분명히 예전 조선왕조의 통치보다도 효율적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월등히 덜 자의적이었고 덜 가혹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학자들 중에서도 이를테면 서울대 안벽직, 이영훈, 박지향 교수 등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는 한국의 근대성에 큰 기여를 했으며 따라서 식민지 시기에 조선 사회가 성공적으로 산업 근대화를 성취했다고 경제학, 계량학, 비교사학 등의 방법으로 밝히고 있다.

필자는 일본의 조선 식민 통치가 다 긍정적이라고는 평가하지 않는다. 조선인의 민족 전통 문화를 무시하고 동화시키려 했다면 그것은 타자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한가지 만으로도 큰 죄목이 된다.

조선통치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방법은 일본에게도, 조선에게도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인식하고 역사를 거울로 삼는 교훈에 있어서도 다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럼 아래 조선 통치에 대한 4단계 평가방법을 소개하겠다. 일제 35년의 식민통치에는 그 성격에 변천이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즉 35년 통치사를 4단계로 분류해 그 성격의 변화 추세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분류학, 분석학, 재정학, 비교경제학 등 프리즘을 통한 분석 작업은 유용할 것이다.

제1기는 1910년 병합에서 1919년 3.1운동까지다. 이 기간을 '무단정치' 혹은 '창업시기'라고 한다. 조선인의 반일무력투쟁 등이 빈발했으므로 치안유지를 위해 상당히 가혹한 억압, 통제를 실시했다.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와 제2대 총독 하세가와가 이 시기 군인적인 무단정치를 실행하여 많은 빈축을 샀다.

제2기는 1919년 이후부터 1931년 9.18 만주사변까지다. 이 기간을 문화정치 혹은 '수성(守成) 시대'라고 한다. 제1기의 혹독한 무단정치와 대조적으로, 문화적이나 생활적으로 조선인에 의한 신문발행, 문화사업, '조선사' 편찬사업이 허용되는 등 조선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정책이 실행됐다. 1919년 3.1 항일독립운동에서 교훈을 얻고 무단으로 이민족을 탄압, 통치하기는 어리석다는 점을 터득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조선총독은 선후로 사이토, 야마나시, 사이토가 맡았다. 사이토는 불교 신자로서 느긋한 문인풍의 지도자였으며, 조선의 한글보급, 민족전통 중시에 힘을 기울인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사이토의 붓글 족자를 보면 근엄하고 정직한 그의  성격이 엿보인다.

제3기는 1931년부터 1937년 7.7 중일전쟁 돌입까지다. 이 시기를 '건설시대'라 칭하는데 이 시대에는 조선의 산간 벽지까지 초등교육을 보급함과 아울러 농촌진흥운동을 전개하여 조선민중의 생활수준이 뚜렷하게 향상됐다. 그리고 조선 내 중공업 중심의 근대화가 추진됐다. 이 시기의 조선총독은 우가키, 미나미였는데 둘 다 문인형 군인지도자로서 조선인 관리 등용에 힘을 썼고 회유정책으로 친일성향 조선인을 육성했다.

제4기는 1937년부터 1945년 일제의 패전까지다. 이 시기를 '비상시대' 혹은 '임전시대'로 불렀다. 일본 군국주의의 팽창으로 일본 국내에서도 서서히 전시체제를 강화했으며 조선에서는 '내선일체'의 슬로건을 걸고 동화주의 정책이 추진됐다.

그리고 일본인과 더불어 조선인에 대해서도 근로봉사, 징병이 가해졌으며 상당히 혹독한 통치가 이뤄졌다. 이 시기에 조선의 수많은 민족운동가, 일류급 지식인, 문화인들도 일본의 혹독한 전시체제에 유연하게 동조하게 된다. 이 시기의 동조자가 현재 말하는 소위 '친일파'다. 이광수, 최남선 등이 대표적 인물인데, 비범한 두뇌와 사상, 주장을 갖춘 이들이 친일을 한 것은 이광수의 자백대로 '민족 보존을 위한' 수단이었기도 했다.

총칼 앞에서 바위에 계란 던지기 식의 무모한 짓은 민족 보존과 어긋나는 우행(愚行)이기도 했다. 만일 그때 저마다 다 반항했다면 우리 민족이 살아 남았겠는가.

또한 이 5년 사이에 황민화교육, 창씨개명, 일본어 강제 등 정책이 실시됐는데, '전시체제'에 전쟁 내지 패전의 색깔이 농후해지면서 강행된 것이다. 따라서 35년의 통치를 근근히 이 5년 동안의 기간만으로 대체하는 것도 역사사실엔 어긋난다.

일본 식민지 시기의 평가는 일본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면서 실질은 조선인이 어떻게 그 시기에 적응하며 살았나라는 민족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평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감성적으로 무조건 부정하기보다는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바탕으로 그 시기를 곰곰이 분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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