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중국이 한국으로의 단체여행을 허용함에 따라 2017년 3월부터 본격화된 ‘사드 보복’ 이후 6년 5개월 만에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 빗장이 풀리게 됐다. 한‧중 관계가 좋다고 보기 어려운 시점에 중국이 이런 발표를 한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0일 중국이 한국으로의 단체여행을 허용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SBS 캡처]
지난 10일 중국이 한국으로의 단체여행을 허용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SBS 캡처]

중국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 태도로 변했다고?

6년만에 유커(중국인 단체 여행객)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화장품 업계와 면세점 업계는 들썩이고 있다. 중국이 한국에 대한 태도를 우호적으로 바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이번 조치는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지난 10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중국의 조치는 한국에만 단체 관광을 허용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78개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지난 1월에 20개국, 3월에 40개국에 이어 이번에는 78개국에 빗장을 푼 것이다.

이번 78개국에는 우리나를 비롯해 미국, 일본, 호주 등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던 나라까지 포함돼 단체여행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한국에 대한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중국 내부의 사정에 따른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공포 엄습...탕핑족 구출작전도 절실해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각종 침체 신호가 나오면서 사실상 디플레이션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까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여 있는 상태이다.

중국은 경기 침체 속에 물가까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여 있는 상태이다. [사진=SBS 캡처]
중국은 경기 침체 속에 물가까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여 있는 상태이다. [사진=SBS 캡처]

생산과 소비가 부진해지면서 ‘세계의 공장’ 혹은 ‘세계의 시장’으로서의 위치를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탕핑족(몸과 마음이 지쳐 아예 노력을 하지 않는 청년)이 늘어가는 추세이다.

당국이 당분간 청년 실업률 데이터 공개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국가통계국(NBS)의 푸링후이 대변인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8월부터 전국 청년 및 기타 연령대의 실업률 조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중국 국가 통계 청년 실업률이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자 매월 전국 도시실업률과 함께 16∼24세, 25∼59세 연령대별 실업률을 공개해 온 통계국이 갑자기 연령대별 실업률을 제외한 것이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4~6월 각각 20.4%, 20.8%, 21.3%에 달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거듭 경신해 왔다. 청년 실업률이 갈수록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어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중국 청년의 절반이 실업상태라는 주장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장단단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부교수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 등에서 살면서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포함한 잠재적 청년실업률은 46.5%로 추산된다"고 진단했다.

중국 당국은 8월부터 청년 실업률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진=YTN 캡처]
중국 당국은 8월부터 청년 실업률 조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사진=YTN 캡처]

이외에 각종 경제 지표들도 암울하다. 중국의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년 5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바뀌었고, 지난달 생산자 물가지수도 10개월 연속 마이너스이다. 중국에서 소비자 물가지수, 생산자 물가지수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2020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 15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재정적자 급증, 인구 노령화, 부동산 시장 붕괴 등 중국 경제 상황이 중국의 전성기가 끝났음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이니 비구이위안도 채무 불이행 위기를 맞으면서 중국 부동산 시장도 붕괴 위험에 직면했다. ▶펜앤드마이크 8월 17일자 ‘비구이위안 발 중국 부동산 붕괴, 한국 경제 ‘시한폭탄’ 되나’ 제하 보도 참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 경제 상황을 두고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이라고 지적했을 정도이다.

내수 진작을 위해 ‘단체관광’ 카드 꺼내들어

이에 따라 중국이 내수 진작을 위해 ‘단체관광’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4일 시진핑 주석 주재로 열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는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비롯한 내수 진작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24일 시진핑 주석 주재로 열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는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비롯한 내수 진작책을 발표했다. [사진=SBS 캡처]
지난달 24일 시진핑 주석 주재로 열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는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비롯한 내수 진작책을 발표했다. [사진=SBS 캡처]

중앙정치국은 경제회복이 더뎌지는 첫 번째 원인으로 내수 부진을 꼽으면서 자동차와 전자제품, 가구 등 단가가 높은 내구재와 스포츠, 문화, 여행 등 서비스 관련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앙정치국이 내수 부진을 해결하기 위해 발표한 내용 중에는 여행 등 서비스 소비 진작과 국제항공편 증대가 포함됐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크루즈를 다시 움직이거나 국제 항공편을 늘리기 위해서는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실직을 했던 사람들을 다시 고용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용 확대가 이뤄지고 그 외 다른 관련 산업들의 활성화도 기대되면서 내수 진작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기적 선택’에 호들갑 떨 필요 없어...차분한 대응 요구돼

중국 입장에서 철저하게 이기적인 계산에 의해 ‘단체관광을 허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유커가 다시 한국에 오는 건 분명 호재에 해당한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 100만명이 늘어날 경우 국내 GDP 성장률은 0.08%포인트 오르는 걸로 추정된다. 특히 코로나 확산 국면에서 적자 폭이 컸던 여행 수지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면세, 화장품 업종 등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기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중국 단체관광 재개로 중국향 신규 취항이 확대되고 영업환경이 개선되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여행사 실적이나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연구원은 하나투어와 모두투어의 목표주가를 각각 7만원(+6%), 2만4000원(+9%)으로 올렸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중국 단체 관광객의 등장은 국내 면세점 업계의 영업활동에 매우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인바운드의 증가세로 외형확대 및 영업이익 증가에 긍정적 영향을 제공할 것”이라고 보았다.

다만 중국 경제가 부동산 시장 침체와 함께 소비 투자 수출에서 동반 부진함에 따라,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처럼 디플레이션에 진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은 고려돼야 한다. 따라서 이번 중국의 단체관광 허용에 대해서도 과도한 기대감을 갖기보다는 좀더 큰 틀에서 중국 경제 상황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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