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에서 공개 
오사카 아틀리에의 '낡은 벽장' 속에서 발견
판매 후 아쉬움에 1972년 '가족도' 또 그려
큰딸 장경수 씨 "다시 만나니 눈물난다"

1964년 일본에 팔려갔다가 최근 발굴돼 공개되는 장욱진의 작품 '가족', 1955년에 그려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일본에서 발견 당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오직 그림과 술밖에 모르고 살아온 인생에서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요, 술은 그 휴식이었다."

박수근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 화가 장욱진(1917∼1990)은 스스로 그림과 술밖에 몰랐다고 했으나, 가족을 끔찍이 사랑했다.

나무, 아이, 새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소재들을 그리면서도 식구들이 한 집에 모여 있는 시간을 귀중히 여긴 그는 '가족도', 가족', '진진묘' 등 가족을 화폭에 담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화가 장욱진(1917∼1990)이 그린 최초의 가족그림(가족도)이 일본의 한 창고에 먼지에 쌓여 있다가 발굴돼 공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일본에서 '가족'을 발굴해 다음 달 14일 덕수궁관에서 개막하는 장욱진 회고전에서 전시한다고 16일 밝혔다. 

'가족'은 생전 30여점 이상 가족을 그렸던 장욱진이 항상 머리맡에 걸어둘 만큼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자 생애 처음으로 돈을 받고 판매한 작품이라고 국립현대미술관은 밝혔다. 

장욱진의 큰 딸 장경수씨가 아버지를 회고하며 2020년 펴낸 책. [삼인 제공]
장욱진 1970년작 '진진묘'(41×32㎝). 아내 이순경 여사를 그린 것이다.  '진진묘'는 이 여사의 법명이다. [장욱진미술문화재단]
1970년대 경기도 덕소 화실에서 찍은 이순경 여사와 장욱진 작가.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제공]

장욱진은 이 작품을 판매한 돈으로 막내딸에게 바이올린을 사준 것으로 전해진다.

장욱진은 1964년 반도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이 작품을 일본인 시오자와 사다오에게 판매한 뒤 아쉬움에 1972년 '가족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를 다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매 이후 60년간 행방이 묘연했으나 국립현대미술관이 9월 장욱진 회고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굴됐다. 

전시 기획을 맡은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시오자와의 아들 부부를 찾아 일본 오사카 근교의 아틀리에를 방문했다가 낡은 벽장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작품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가를 설득해 이 작품을 구입했으며 보존 처리를 마친 후 장욱진 회고전에서 공개하게 됐다. 

한가운데 있는 집 안에 4명의 가족이 앞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과 함께 나무, 두 마리의 새를 그린 이 작품은 가로 16.5cm, 세로 6.5cm 크기의 작은 그림이다. 

"대상이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장욱진의 조형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라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설명했다. 또 가족도 중 아버지와 아이들만이 함께 그려진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작품이 평생 가족 이미지를 그린 장욱진 가족도의 전범(典範)이 되는 그림이자 최초의 정식 가족도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그림에는 부인 이순경 여사가 빠져 있지만 장욱진은 1970년 이 여사의 모습을 담은 '진진묘'(眞眞妙·1970)란 작품을 그렸다.  ‘진진묘’는 이 여사의 법명이다. 

역사학자 이병도의 장녀이기도 한 이 여사는 밥 굶는 환쟁이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모친의 반대에도 1941년 장욱진과 결혼식을 올린 후 평생을 뒷바라지에 바쳤다. 

1953년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 책방 ‘동양서림’을 차려 20년 넘게 운영하며 남편과 5남매를 건사하면서 장욱진이 술집에 달아놓은 외상값도 갚아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뒷바라지덕에 장욱진이 "나는 심플하다"고 외치면서 순진무구한 아이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서 까치, 가족, 새, 나무, 마을, 아이 등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1997년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해 말년까지 남편의 예술 세계를 알리는 데 앞장섰던 이순경 여사는 지난해 8월 102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장 화백은 부인 이순경 여사와의 사이에 정순, 경수, 희순, 혜수, 윤미 등 1남 4녀를 두었다. 

장욱진이 1964년 판매한 '가족도'를 아쉬워 해 1972년에 다시 그린 '가족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장욱진의 큰딸인 장경수씨는 이번에 공개되는 작품 '가족'에 대해 "어렸을 적 아버지가 그리신 나무의 우둘투둘한 질감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만져봤던 기억이 난다"면서 "다시 만나니 눈물이 난다"고 소감을 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다음달 개막하는 장욱진 회고전에는 이번에 발굴된 작품 외에도 '동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화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나무, 집, 해와 달, 까치 등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그린 작품이 대거 전시된다. 

미술 평론가들은 장욱진의 독보적인 작품세계에 대해 "원시미술이나 한국의 민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회고전에는 장욱진의 초기 작품부터 유화, 먹그림, 매직펜 드로잉, 판화, 표지화, 삽화 등이 대거 망라돼 있다고 밝혔다. 

이경택 기자 kt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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