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판사의 ‘정치 성향’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박 판사가 정 의원에게 중형을 선고한 이후 공개된 고교‧대학 시절에 쓴 글에 이어, 판사 시절에 쓴 글들이 지난 14일 추가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 판사의 정진석 판결 불공정성 논란, 한국 사법부의 ‘진보정치 편향성’이라는 근본 문제 드러내

박 판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와 옹호의 내용을 담은 글을 SNS 등에 적어왔다. 문제는 박 판사와 같은 특정 정치 성향을 드러내고 그러한 성향을 재판에 반영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한국 판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 의원 사건에 대한 박 판사 판결을 둘러싼 논쟁은 한국 사법부의 ‘진보정치 편향성’이라는 근본 문제를 드러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중앙지법은 지난 13일 입장문을 통해 “재판장의 정치적 성향을 거론하며 판결과 재판장에 대해 과도한 비난이 제기되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박 판사가 고교‧대학 시절에 쓴 글에 대해 “특정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일부 내용을 토대로 법관의 사회적 인식이나 가치관을 평가할 수 없다”며 박 판사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당시 법원 차원에서 개별 판결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박 판사가 판사 재직 때 쓴 ‘정치 성향’ 글이 추가로 공개되자, 중앙지법은 “기존 글과는 맥락이 다른 것 같다”면서, ‘추가 쟁점이 생긴 만큼’ 다시 검토해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섣불리 박 판사를 옹호하려고 했다가 망신을 당한 셈이다.

그만큼 ‘이번 정진석 판결’ 자체가 판사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판사의 정치 성향이 판결에 반영되는 것을 어느 선까지 용인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친노(親盧)’인데 ‘정진석 사건’ 회피하지 않은 박 판사, 징계해야

박 판사의 정치 성향은 지난 10일 검사가 벌금 500만원을 구형한 정 의원에 징역 6개월을 선고함으로써 불거졌다. 정 의원은 “감정적 판결”이라고 반발하며 항소하겠다고 밝혔고, 법조인들은 “다른 명예훼손 사건과 비교해 이례적으로 높은 형량”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법조계에서는 박 판사가 고교와 대학 때 썼던 글들과, 소셜미디어 활동 내용이 거론되면서, ‘친노(親盧)에 가까운 박 판사의 정치 성향이 ’정진석 사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박 판사가 고3 때인 지난 2003년 10월 작성한 글에는 “만일 그들(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고 싶으면 불법 자금으로 국회의원을 해 처먹은 대다수의 의원들이 먼저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는 내용이 나온다.

박 판사가 모 대학 신문사에서 활동하던 2004년 3월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군 장갑차 사망 여중생 촛불 추모행사’에 참석한 뒤 쓴 ‘후기’에는 “전·의경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라며 “천대 만대 국회의원 해먹기 위해서 대통령을 탄핵시킨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한나라당 녀석들 때문”이라고 했다.

박 판사의 정치 성향을 두고 국민의힘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지난 13일 "(정 의원에 대한 실형 판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판사로서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로서, 또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정치적 견해를 그대로 쏟아낸 판결"이라며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로서 중립적인 판결을 내리기 어려웠다면, 박 판사 스스로 재판을 회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지난 13일 박병곤 판사의 판결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채널A 캡처]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지난 13일 박병곤 판사의 판결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채널A 캡처]

최근 한국사회에서 반인륜적인 살인 사건이 빈번해짐에 따라 판사들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다. 그런데 이처럼 현직 판사가 특정 정치 성향이 강한 상황에서 관련 재판을 맡아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사태는 사법부 판결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부추기는 제 3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공격한 박원순 전 시장은 놔두고 반박한 정 의원만 실형 선고 받아

정 의원의 혐의는 2017년 9월 페이스북에 ‘노 전 대통령 부부가 부부 싸움 끝에 아내 권양숙 여사는 가출했고, 노 전 대통령은 혼자 남아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하면서 ‘정치 보복은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에게 가한 것’이라고 주장하자, 정 의원이 반박하는 과정에서 올린 글로 알려진다. 이 전 대통령이 노 전대통령에게 정치보복을 했다는 박 전 시장의 주장도 허위사실로 볼 수 있다.

보수 정객인 정 의원으로서는 반박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문제가 된 내용은 그 반박의 과정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더욱이 정 의원은 해당 페이스북 글을 지우고 사과 글을 올렸다.

하지만 박 판사는 “정 의원의 글 내용은 거짓이고, 그 글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도 없다”면서 “글 내용은 악의적이거나 매우 경솔한 공격에 해당하고, 맥락이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당시 노 전 대통령 부부는 공적(公的)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웠고, 정 의원의 글 내용은 공적 관심사나 정부 정책 결정과 관련된 사항도 아니었다”라고 했다.

다만 박 판사는 정 의원의 국회의원 활동 보장, 무죄추정 원칙 등을 이유로 법정 구속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 “여야 정치 공방이고 사과도 했는데 징역형 선고한 것은 지나쳐”

법조계에서는 명예훼손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중형이 선고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여야 사이의 정치적 공방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였고, 정 의원이 법정 안팎에서 사과도 했는데 징역형까지 선고한 것은 지나치다”라고 말했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판결과 비교해도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 전 이사장은 “한동훈 법무장관이 과거 대검에 근무하면서 노무현재단 계좌를 불법 추적했다”는 허위 사실을 공개적으로 주장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지만 작년 6월 1심에서 벌금 500만원만 선고받는 데 그쳤다.

판사 재직시에도 친 민주당, 친 이재명 성향 토로해... 법관윤리강령 위반 소지 커

박 판사가 과거 고교와 대학 시절뿐만 아니라 법관 임용 이후에도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정치 성향을 반영한 글을 쓴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스스로 정진석 재판을 회피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넘어, 판사로서의 자격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패배한 직후 박병곤 판사는 SNS에서 울분을 터뜨렸다. [사진=채널A 캡처]
지난해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패배한 직후 박병곤 판사는 SNS에서 울분을 터뜨렸다. [사진=채널A 캡처]

박 판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던 지난해 3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패배한 2021년 4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가 불거진 2019년 10월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 성향을 드러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던 지난해 3월 10일, 박 판사는 닷새 뒤 페이스북에 '이틀 정도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고 글을 올렸다. '포기하지 않고 자꾸 두드리면 언젠가 세상은 바뀐다'는 말도 적었다.

재작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의 패배가 결정된 다음 날에도 비슷한 글이 올라왔다. 중국 드라마 ‘삼국지’ 장면을 캡처한 사진을 여러 장 올리며 '승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고 했다.

조국 자녀 입시 비리 보도한 언론 비판 글도 올려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가 불거진 2019년 10월 10일에는 언론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누가 먼저 돌로 치랴’ ‘권력 측 발표 그대로 사실화’ ‘약자에게만 강한 건 깡패’ 등의 내용으로 조 전 장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기자들을 비판했다. 고(故) 리영희 교수가 1971년 당시 언론을 비판한 글을 차용했다.

박병곤 판사는 2019년 조국 사태에 대해서도 자신의 정치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사진=채널A 캡처]
박병곤 판사는 2019년 조국 사태에 대해서도 자신의 정치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사진=채널A 캡처]

현재 SNS 상에서 박 판사의 이같은 글을 확인할 수는 없다. 박 판사가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에 배치된 직후 이 글들을 삭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과거 박 판사가 썼다가 지운 글이 맞다”고 밝혔다. 중앙지법은 “박 판사가 정진석 의원 판결을 염두에 두고 삭제한 것은 아니고, 중앙지법 판사로 부임해 형사단독을 맡은 지난 3월쯤에 소셜미디어의 글들을 삭제했고 문제된 글들은 그중 일부”라고 했다.

법원 측은 “박 판사 본인도 게시물을 올린 것은 인정하나, 형사단독부를 맡게 되면서 글을 지워 정확한 워딩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판사 재직 시절에 정치 성향이 반영된 게시물을 올린 것에 대해선 “법관 소셜미디어 사용에 문제가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달리는 기차에서 중립적일 수 없다’는 박 판사, 향후 재판 공정성도 믿을 수 없어

법원의 이러한 해명에도 박 판사의 정치 성향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박 판사는 SNS 본인 소개글에 '달리는 기차에서 중립적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법관윤리강령’을 어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법관윤리강령 제7조에 따르면, 현직 법관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임원이나 구성원으로 참여해선 안되고, 선거운동 등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활동을 하면 안된다.

일각에서는 법관은 SNS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012년 권고 의견으로 법관의 소셜미디어 사용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다. 대법원은 “법관은 소셜미디어 상에서 구체적 사건에 관해 논평하는 것이 제한되고, 사회‧정치적 쟁점에 의견 표명을 하는 경우 균형적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며 “법관으로서 공정성이 의심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관이 향후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채널A에서 “법원이 해당 판사가 어떤 연유로 글을 올리게 된 것인지 징계 사유에 해당되는지 여부까지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법관이 정치 의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판결에 노골적으로 반영돼선 안 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박 판사가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판결을 계속해서는 안 되는 만큼, 앞으로도 그런 판결을 할 우려가 있다면 법관으로서의 업무를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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