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과 정부수립일, 이른바 건국일이 8.15로 겹친 것은 우연 중의 우연이었다. 대한민국 건국은 국제사회의 협력으로 이뤄진 것으로 유엔총회가 결의한 '한국 독립을 위한 계획'에 근거했다. 건국이 일국적, 역사적, 추상적 함의라면 정부수립은 국제적, 현실적, 실정적 규정이다.

펜앤드마이크 김용삼 대기자는 "1945년 12월 환국한 임시정부는 스스로를 이 강토 안에 건국할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민족이 요망하는 정부수립을 담당할 기관임을 천명했다"며 "1949년 8월15일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을 보면 '대한민국 독립 첫돌 맞이' 등의 표현을 썼다. 당시 각계각층 인사들은 건국-독립-정부수립을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1945년 8월15일은 해방일로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났음을 기리는 때이고, 1948년 8월15일은 신생 독립국을 만들어 비로소 주권을 인정받게 됐음을 기리는 때이다. 신생 독립국가인 대한민국 정부 초기의 여러 자료들을 보면 '건국' 용어가 숱하게 나온다. 독립1주년 기념으로 국민 공모를 통해 채택된 표어는 "한번 뭉쳐 민국 수립, 다시 뭉쳐 실지 회복"이었고 1950년 5월 국민 성금으로 마련한 최초의 비행기 이름은 '건국1호기'였다.

1949년 제헌국회의 단순무식한 결정으로 '독립기념일'이었던 국경일 명칭이 '광복절'이란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뒤바뀌었다. 김용삼 대기자는 "광복절 선례는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상륙해 일본군으로부터 항복받은 사건이다. 독립기념일을 광복절로 바꾼 건 한국인 스스로 일본군에게 항복 받았다는 허위의 역사의식 고취요 자위 행위"라며 "이것이 두고두고 후환이 됐다"고 했다.

김용삼 대기자는 광복과 건국의 차이를 분명히 밝힌 뒤 "대한민국 건국은 원상회복이 아닌 혁명"이라며 어느 시점에서부터 광복만 남고 건국이 사라진 것인지를 되짚었다. 1958년 건국10주년을 기념해 다채로운 정부 행사들이 있었는데 1960년 4.19 이후 '건국'은 완전히 실종됐다. 윤보선 대통령은 1960년 광복절 연설에서 "오늘은 15년 전의 해방이 의미하는 민족적 감격을 회상하는 날이고 12년 간의 이승만 박사 정부 하에서 피어린 역사를 회상하는 날"이라며 "이 정권이 저질러 놓은 상처는 너무도 심각하다"고 선언했다. 이승만 하야 이후의 후임 대통령들은 '건국'을 철저히 잊혀지게 만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8년 건국20주년을 정부 차원에서 기념했다. 그나마 온전한 건국 기념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과 동시에 '제2의 건국'을 선언했다. 김용삼 대기자는 "김대중 정부는 이를 제창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1948년 건국을 '제1의 건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하지만 김대중의 건국에 대한 인식은 오락가락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 제1의 건국은 인정하면서 이승만은 지우고 건국에 참여하지 않은 김구 선양에 올인했다. 재임 중 백범기념관을 성대하게 건립했다"고 지적했다.

김용삼 대기자가 역대 대통령의 건국에 대한 인식을 총정리했다. 정치적 이해에 따라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가 어떻게 변질됐는가를 하단의 펜앤드마이크TV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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