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고객 몰래 1000여건 계좌개설'
시중은행 인가 앞두고 은행측 "알면서도 쉬쉬'
연이은 은행권 '금융사고'로 
'도덕적 해이'로 은행 신뢰 뿌리째 흔들려 
거액 횡령부터 미공개정보 이용까지
금융당구 지배구조법 속도 낼 듯

대구은행 본점 전경. [대구은행 제공]

 

최근 경남은행에서 거액의 횡령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DGB대구은행에서도 1000건이 넘는 불법 계좌가 개설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0일 금융권과 대구은행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대구은행 직원들이 고객 문서를 위조해 증권 계좌를 개설했다는 혐의를 인지하고 지난 9일 긴급 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대구은행 일부 지점 직원 수십명이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높일 목적으로 지난해 1000여건이 넘는 고객 문서를 위조해 증권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직원들은 내점한 고객을 상대로 증권사 연계 계좌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뒤 해당 계좌 신청서를 복사해 고객의 동의 없이 같은 증권사의 계좌를 하나 더 만들었다.

예를 들어 고객에게 A증권사 위탁 계좌 개설 신청서를 받고, 같은 신청서를 복사해 '계좌 종류'만 다르게 표기함으로써 A증권사 해외선물계좌까지 개설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고객은 'A증권사 보고 계좌가 개설됐다'는 문자를 2번 받고 특별한 의심 없이 지나갔지만, 최근 한 고객이 동의하지 않은 계좌가 개설됐다는 사실을 알게 돼 민원을 제기하면서 직원들의 비리가 드러나게 됐다.

심지어 고객 명의로 다른 증권사 계좌를 임의로 만든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계좌 개설 안내 문자(SMS)를 차단한 방식까지도 동원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러 휴대전화 번호 앞자리를 '010' 대신 '016' 등 엉뚱한 숫자를 입력해 고객이 안내 문자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수법도 동원했다. 

더욱이 큰 문제는 대구은행은 문제를 인지하고도 금감원에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고, 지난달 대구은행 영업점들에 공문을 보내 불건전 영업행위를 예방하라고 안내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대구은행 금융 사고에 대한 검사가 시작된 만큼 금융위원회가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인가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법에 따르면 시중은행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10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갖춰야 하고,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비금융주력자(산업 자본)의 지분 보유 한도는 4%로 제한된다.

대구은행은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어 사업계획의 타당성, 지배구조 이슈 등에 큰 문제가 없으면 연내 시중은행 전환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지방은행'은 정해진 권역에서만 지점을 개설할 수 있고, '시중은행'은 전국 어디든 지점을 개설해 운영할 수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 직원이 본인 실적 때문에 고객 계좌를 동의 없이 추가로 개설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시중은행 인가에도 고려해야 할 중대한 문제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문서 위조 등에 해당할 수 있다고 금융권은 보고 있다. 금융실명제법상 금융기관은 고객 실명임을 확인한 후에만 금융 거래를 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하고 신청서를 위조해 계좌를 개설한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구은행이 본 건 사실을 인지하고도 금감원에 신속히 보고하지 않은 경위를 살펴보고 문제가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구은행뿐 아니라 작년 우리은행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 사고에 대한 수습이 끝나기도 전에 최근 경남은행에서도 5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안겼다.

경남은행의 이 직원은 2007년부터 약 15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업무를 담당하며 562억원을 횡령·유용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KB국민은행 직원들은 상장사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100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겼다가 최근 금융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이처럼 금융사고가 연이어 터지며 은행권의 도덕적 해이 및 내부통제 부실 논란도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직원들의 대형 금융 사고가 연일 뉴스에 나면서 금융권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며 "자체 내부통제에만으로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관련 금융당국은 내부통제와 관련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들의 책임 범위를 사전 확정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조직적이거나 장기간·반복적인 금융 사고가 발생할 경우 내부통제 시스템 관리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들어 CEO에게도 책임을 묻게 돼 있다.

김경동 기자 weloveyou@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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