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으로 새 출발을 하는 전경련의 새로운 수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연합뉴스
한경협으로 새 출발을 하는 전경련의 새로운 수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연합뉴스

문재인 정권에 의해 와해된 전국경제인연합, 전경련이 새로운 출발을 한다.

전경련은 오는 22일 임시총회를 열고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변경하고, 회장으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추대해 새롭게 출발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5·16혁명 직후인 1961년 8월, 삼성 이병철 회장이 일본의 게이단렌(経団連-경단련)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다. 정부의 지원과 간섭을 받는 대한상의나 경총과는 달리 순수 민간 경제인 단체로 정주영 구자경 최종현 김우중 등 주요 그룹 오너들이 수장을 맡으며 재계의 대변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촛불사태에 이어 벌어진 ‘적폐수사’ 과정에서 전경련이 미르재단 모금에 재계를 동원한 사실이 드러나 삼성 등 주요 대기업이 줄줄이 탈퇴하고 문재인 정권이 전경련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사실상 형해화(形骸化) 됐다.

전경련의 와해에는 특별검사보 및 문재인 정권의 검찰 수장으로 적폐수사의 중심에 섰던 윤석열 대통령의 역할도 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전경련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윤 대통령의 대통령선거 선대위원장 출신인 김병준 직무대행 체제를 통해 조직 재건을 모색한 끝에 한경협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된 것이다.

한경협의 최우선 과제는 조직을 탈퇴한 삼성 SK 현대차 LG 등 주요 대기업들을 회원사로 다시 가입시키는 것이다. 이와관련, 대통령실은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의 유럽 및 베트남 방문에 함께 할 재계 총수를 모으는 역할을 한경협에 맡기는 등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한경협 대신 재계의 중심축을 대한상의로 옮기고 최태원 SK 회장이 재계의 대표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만큼, 삼성 이재용, 현대차 정의선, LG 구광모, 롯데 신동빈, 한화 김동관 등 주요 기업 오너들의 입장정리가 주목된다.

류진 한경협 신임 회장은 미국의 정·재계 인사들과 친분이 깊은 한국 재계의 대표적인 미국통이다.

1958년생인 류 회장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이사 등을 거쳤으며 지난 4월에는 전경련 한미재계회의 제7대 한국 측 위원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류 회장의 풍산은 구리 및 구리 합금소재와 그 가공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신동(伸銅)사업과 각종 탄약류를 생산하는 매출 3조원대, 재계순위 70위권의 기업이다.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등 오랫동안 최상위 재벌이 맡아온 한경협의 얼굴을 류 회장이 맡게 된 것은 현재 주요 대기업들이 한경협의 소속이 아닌 상황에서 류 회장이 과거 전경련의 오랜 활동을 통해 재계에 발이 넓고, 특히 미국 정재계와의 각별한 친분으로 윤석열 정부의 한미동맹 코드와 발을 맞출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은 올초 회장후보추천위원장 겸 미래발전위원장으로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을 선임해 회장 인선작업을 해왔는데, 이 회장과 함께 위촉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LS 이사회 의장), 박정원 두산 회장 등이 류 회장을 적극 추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함께 류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오래 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점도 고려됐다고 한다. 삼성과 현대차의 한경협 재가입을 염두에 둔 것이다.

류 회장은 재계에서 인정하는 ‘미국통’이다. 부친인 류찬우 선대회장 때부터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일가와 친분을 쌓아왔다.

1992년 바버라 부시 여사가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풍산의 현지 법인 PMX인더스트리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애래 양가는 1년에 1회 이상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부시 일가를 통해 미국 내 정재계 인사들과 관계를 쌓아온 류 회장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등 역대 정권에서 대미 외교에 일익을 담당해왔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에도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류 회장은 한미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9월 코리아소사이어티로부터 ‘밴 플리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이사와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미재계회의는 전경련과 미국상공회의소가 양국 경제협력 및 유대 강화를 위해 1988년 설립한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 논의 기구로, 오는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제35차 회의가 열린다.

류 회장의 혼맥(婚脈)을 통한 국내 정·재계 인맥도 화려하다. 류 회장의 부인 노혜경 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차녀다.

노 전 총리의 장남 노경수 서울대 교수는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딸 정숙영 씨와, 차남 노철수 씨는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딸 홍라영 씨와 결혼했다. 홍씨의 언니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모친 홍라희 씨다. 류 회장의 큰형 류청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차녀 박근령 씨와 결혼한 바 있다.

풍산은 창업주 류찬우 선대회장이 세운 풍산금속공업주식회사가 전신이다. 류 회장은 1982년 풍산금속공업에 입사해 1996년 풍산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뒤 선대회장이 별세한 2000년 회장직을 승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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