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지난 30일 청년 좌담회에서 한 ‘노인 비하’ 발언을 두고 정치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김 위원장은 “둘째 애가 중학생 시절 '왜 나이 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해?'라고 물었다”면서 “자기 나이부터 남은 평균 기대수명까지 (계산해)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계속되는 설화에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사진=채널A 캡처]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계속되는 설화에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사진=채널A 캡처]

김은경 발언엔 ‘고려장 발상’, ‘세대 갈등 조장’, ‘공산당식 일당 독재주의’ 담겨

그의 ‘노인 비하’ 발언에 담긴 핵심 메시지는 불순하고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차 있다.

첫째, ‘고려장 발상’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노인은 청년보다 정치적 권리를 적게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현재 노인에게 주어진 정치적 권리를 줄이거나 빼앗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부모가 나이가 들어서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면 산에 데리고 가서 버리는 ‘고려장’ 발상과 유사하다.

둘째, ‘세대 갈등 조장’이다. 조만간 죽을 노인들이 청년들과 대등한 1표를 각종 선거에서 행사하는 것은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청년들에게 심각한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청년들이 노인을 이런 잣대로 판단한다면, 노인은 증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전체주의나 공산당식 일당 독재주의적 발상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청년층이 더 많은 투표권을 행사해서 정치의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공산주의자들이 자본가들을 숙청하고 소수의 노동자 전위대들이 정치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과 유사하다. 열등한 유대인을 숙청하고 우수한 게르만 민족만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히틀러의 전체주의와 비슷하다.

청년이 노인과 동일한 1인 1표를 행사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열등한 유대인과 우수한 게르만 민족이 대등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전체주의와 닮은꼴이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청년과의 간담회에서 '여명 비례투표'를 거론했다. 예를 들어 60세가 1표를 행사하면 40대는 2표를, 20대는 3표를 행사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사진=채널A 캡처]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청년과의 간담회에서 '여명 비례투표'를 거론했다. 예를 들어 60대가 1표를 행사하면 40대는 2표를, 20대는 3표를 행사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사진=채널A 캡처]

어린 아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주지 않고 발상의 전환으로 소개?

어린 아들이 이처럼 잘못된 생각을 드러낼 경우, 정상적인 부모라면 바로잡아주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대단한 발상의 전환인 것처럼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을 노인과 청년으로 갈라치기하려는 발상을 스스로 미화하고 포장하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제 정신이 아니라는 사설이 나올 정도이다.

더 큰 문제는 김 위원장이나 민주당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어거지를 부리고 있다는 점에 있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버금가는 새 재앙에 직면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김 위원장 사퇴론이 거세다.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를 하게 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비민주적이고 반헌법적 발상이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발언의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 해체와 김 위원장 사퇴 요구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김은경 위원장 이하 (혁신위) 전원이 국민 앞에 사죄하고, 모든 직으로부터의 사퇴는 물론, 혁신위를 스스로 해체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1일 페이스북에서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노인 폄하 발언이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며, “김은경 위원장 본인이야말로 혁신의 대상이자 징계 퇴출의 대상인데, 이런 인물이 누구를 혁신하고 징계하겠다는 건가? 참으로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비명계 조응천, “지독한 노인 폄하 발언”...이상민, “몰상식하고 반상식적”

민주당 내에서도 김 위원장의 반복되는 설화를 우려하며 “혁신위가 민주당의 최우선 혁신 대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재명 대표로부터 ‘당 쇄신 전권’을 위임받은 혁신위의 쇄신 동력이 상실되면서, 출범 48일 만에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명계 의원들은 김 위원장을 한목소리로 강하게 질타했다. 조응천 의원은 BBS 라디오에 출연해 김 위원장이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 1로 표결해야 하나”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지독한 노인 폄하 발언”이라며 “(김 위원장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제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김 위원장의 설화가 한두 번이 아니라며, 방송 출연을 자제하거나 말을 안 하는 게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노인 비하' 발언에 대해 "귀를 의심했다"고 평가했다. [사진=채널A 캡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노인 비하' 발언에 대해 "귀를 의심했다"고 평가했다. [사진=채널A 캡처]

이상민 의원도 SBS 라디오에서 “무지한 건지 아니면 인식이 아주 깊게 잘못된 건지 참 너무 황당하다”며 “나이로 이렇게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 헌법 정신”이라고 말했다. ‘투표권을 여명 기간에 따라서 달리하겠다’라는 발상 자체가 ‘몰상식하고 반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돈봉투 망언’, ‘이낙연 저격’, ‘당내 초선 의원 비난’ 등에 이어 급기야 ‘노인 비하’까지

그간 김 위원장이 설화를 빚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6월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직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 대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알고보니 심각한 사건”이라고 발언을 정정했다.

지난 16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는 민주당 혁신과 관련해 "총선을 앞두고 자기들끼리 계파 싸움을 부추긴다면 국민은 실망하고 민주당에 완전히 등을 돌릴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이낙연 전 대표를 공개 지목하자 이 전 대표측의 반발을 불렀다. 이낙연 계 좌장인 설훈 의원은 "이 전 대표가 '자기 계파를 살리려고 한다'는 이 발언에 대해서는 반드시 공개적인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당내 초선의원들을 코로나19로 학력 저하를 겪은 학생에 비유하며 “코로나 때 딱 그 초선들이다. 소통이 잘 안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가 초선의원들의 항의에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노인 비하’ 발언의 파장은 앞의 발언보다 훨씬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앞의 발언은 당 내부를 향한 것이었던 반면, 이번 발언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사과’ 대신 ‘만행’ 선택한 민주당 혁신위, “청년 정치 참여 촉구한 것” 주장

민주당 내에서도 김 위원장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비판 의견이 적지 않지만, 민주당 혁신위는 1일 ‘노인 폄하 논란’을 일으킨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사과할 일이 아니다. 청년의 정치 참여를 촉구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안팎에서 김은경 혁신위원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혁신위는 '사과할 일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김남희 부대변인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사진=채널A 캡처]
당안팎에서 김은경 혁신위원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혁신위는 '사과할 일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김남희 부대변인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사진=채널A 캡처]

민주당 혁신위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김 위원장은 전날 좌담회에서 아들이 중학생 시절에 낸 아이디어를 소개하며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했을 뿐, ‘1인 1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부인한 바 없다”며 “녹취록을 봐도 민주주의 국가에선 이런 아이디어가 수용될 수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은 바 있다”고 밝혔다.

혁신위는 “앞으로 우리 정치는 세대 간, 지역 간, 계급 간 불균형을 조정하고, 과소대표되고 있는 주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며 “이런 논의를 위해 예시로 꺼낸 중학생의 아이디어마저 왜곡해 발언의 전체 취지를 어르신 폄하로 몰아가는 것은 모든 사안을 정쟁적으로 바라보는 구태적인 프레임이자 전형적인 갈라치기 수법”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민주당사에서 혁신위 비공개회의를 주재하며 향후 다룰 쇄신 의제와 활동 방향 등을 공유했지만, 논란이 된 자신의 발언과 관련해선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사과를 해도 부족한 마당에 본인은 침묵한 채, 혁신위를 동원해 엉뚱한 해명으로 국민들의 화를 부추기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학력이 짧거나 재산이 적은 사람에게도 투표권 덜 줘야 하나?

1일 채널A에 출연한 김종혁 국민의힘 고양병 당협위원장은 “기본적으로 헛소리인데, 준비된 원고이기 때문에 말실수가 아니다”면서 “나름대로 논리적인 설명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김 위원장의 발언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종혁 당협위원장은 “노인들이 미래가 짧기 때문에 투표권을 덜 줘야 한다면, 학력이 짧거나 외모가 짧거나 재산이 적은 사람들에게도 투표권을 덜 줘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종혁 위원장은 “차별적 언어를 진보 정당의 혁신위원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는 사실에 기가 막히다”면서 “당장 혁신위원장을 그만둬야 한다”고 비판했다.

함께 출연한 정미경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도 김은경 혁신위원장 비판에 가세했다. “어르신들이 투표장에 많이 나오면 민주당에 불리하고, 젊은 청년들이 많이 나가면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고정관념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말을 하고 있다”면서, 혁신위원장직을 빨리 내려놓아아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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