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 회장(오른쪽)과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바르샤바 한 호텔에서 열린 한·폴란드 비즈니스 포럼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3.7.14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부인과 두 딸이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LG그룹 지분을 다시 분할해달라”며 낸 소송의 첫 심리가 지난 18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1부(부장판사 박태일) 주재로 열렸다.

이날 심리는 본재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재판부가 원고와 피고 양측을 불러 각자의 입장을 확인하고 추후 재판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를 협의하는 변론준비절차에 따른 것이었다.

소송을 낸 원고인 구본무 전 회장의 부인 김영식씨와 구연경, 연수씨는 물론 피고인 구광모 회장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양측을 대리하는 변호인들이 참석했다.

예상대로 양측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구광모 회장측은 “상속과정은 당사자 전원의 합의에 따라 진행됐다”면서 “구체적인 분할내용에 원고 3명 모두가 전원 합의한 합의서까지 있다”고 밝혔다.

반면 원고이자 구광모 회장의 어머니인 김씨 및 여동생들 측은 "정확한 이해와 동의 없이 상속이 진행돼 취소돼야 한다"고 맞섰다. 원고측 변호인은 "원고 김영식과 구연경에게 피고(구광모 회장)가 주식회사 LG의 모든 주식을 상속받는 상속의 율이 있다는 말에 속아 협의서를 작성했다는 게 주장의 요지"라고 설명했다.

반면 구광모 회장측은 "지난 4년간 원고측이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다"며 "합의서가 작성된 후 한남동 자택에서 원고들에게 분할 합의서를 읽어줬고 이는 원고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2018년 12월쯤 재산의 이전, 등기, 명의 이전, 공시, 언론보도 등이 이뤄졌다"며 "4년이 훨씬 경과해 상속회복 청구를 주장할 수 있는 법적인 기간이 지나 재판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민법에 상속권 침해를 안 날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 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상속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사라진다고 규정하고 있음에 따른 것이다.

이에대해 김씨와 두 딸의 대리인은 "상속인 사망 후에 오랜 기간이 경과해 많은 일이 있었다"며 "원고 측에서 (상속이 부적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2022년 무렵이고 3년이 경과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과연 이 상속재산분할 협의가 피고 주장처럼 피상속인의 유지에 따른 유언장이 있어서 거기에 따라서 작성된 것인지 추가로 입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원고측은 또 LG그룹 총수 일가의 대화를 녹취한 방대한 녹취록이 있다며, 이중 사건과 관계없는 내용을 제외하고 재판부와 피고측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피고 측은 이에대해 대화 맥락의 파악 등을 위해 전체 녹취록과 원본 파일을 공유해줄 것을 요구했다.

LG가의 유산분쟁은 슬하에 두딸 밖에 없었던 LG그룹 3세 경영자, 구본무 전 회장이 장자계승이라는 전통을 잇기위해 동생의 아들, 즉 조카인 구광모 현LG그룹 회장을 양자로 들이고 후계자로 정하면서 비롯됐다.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유산은 LG그룹의 지주사인 (주)LG 주식 지분 11.28%를 포함해 약 2조원 규모다. 구광모 회장은 (주)LG 지분 11.28% 중 8.76%를 받았다.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씨는 민법상 상속 지분에 훨씬 못 미치는 각각 2.01%와 0.51%를 받았다.

하지만 부인 김씨와 ‘친자식’이었던 두 딸은 구본무 전 회장의 개인재산인 금융투자상품과 부동산, 미술품 등을 포함해 5000억원 규모의 유산을 따로 받았다.

구본무 회장의 부인과 두 딸이 이번 소송을 낸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법조계에서는 “사회적 약자, 또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볼 수 없는 부인과 두 딸의 무리한 요구”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김씨와 두 딸이 구본무 전 회장 보다 1년7개월 뒤에 작고한 LG그룹 2세 경영자이자 두딸의 할아버지인 고 구자경 회장 및 집안의 분위기상 구광모 회장으로의 상속 및 승계를 인정해놓고 뒤늦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 때문에 이번 첫 재판 내용이 알려진 뒤 법조계에서는 지난해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1년만에 다시 회자, 소환되고 있다.

극중 자폐증을 극복한 우영우 변호사의 활약을 다룬 ‘이상한변호사 우영우’의 에피소드 중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두 형이 짜고 법률에 무지한 막내동생을 상대로 민법상 동일한 상속지분이 다른 것처럼 속여 부모님의 재산을 적게 나눠주고 세금까지 부담시킨 내용이었다.

드라마 ‘우영우’에서는 형이 동생을 폭행하는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상속에 관한 합의서, 각서가 취소돼 균등상속이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서울 서초동 법조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의 부인과 두 딸이 구광모 회장측에 속아서 민법상의 정당한 지분을 포기했다는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와관련, 서울고법 민사부 부장과 재판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보통의 평범한 서민도 아닌 재벌가의 부인과 딸들이 일종의 기망(欺妄)행위를 당했다고 보기 어려운데다, 상속권 침해를 안지 3년 이내에 소송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도 원고측이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LG그룹 경영권과 상관없는 구본무 전 회장의 개인재산은 부인과 두 딸이 모두 물려받았다는 점 또한 합의가 아닌 속임수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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