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 2분기에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주력부문인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 및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HBM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SK하이닉스는 HBM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6천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95.7%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7일 공시했다. 매출은 60조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22.3% 감소했다. 지난 1분기 영업이익도 지난 해 동기 대비 95.5% 급감한 6천402억원에 그쳤다. 2009년 1분기(5천900억원) 이후 14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하반기 감산 효과 본격화보다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양사 간 가열되는 HBM 점유율 전쟁

하반기에는 D램 출하량 증가, 재고 감소에 따른 감산 효과 본격화 등으로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대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에 새로운 메모리 반도체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성능 메모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 High Bandwidth Memory)가 그것이다.

3분기부터 실적 개선이 기대되지만 낸드플래시나 D램의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의 D램과 낸드 웨이퍼 투입 규모가 작년과 비교해 각각 17%, 13%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은 지속되지만, 가격 하락폭만 둔화된다는 전망인 것이다. 3분기 D램 가격은 전 분기 대비 0∼5% 하락할 전망이다. 2분기 하락 폭 전망은 전 분기 대비 13∼18%였다. 낙폭이 둔화되고 있지만 하향세는 여전한 것이다.

그러나 챗 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이 커지며 HBM 등 차세대 D램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실적 전망과 관련해 “D램과 파운드리 부문의 개발 총책임자 교체의 핀셋 인사를 통해 경쟁력 제고가 기대된다”면서 “올 하반기부터 고부가 메모리인 HBM3, DDR5 양산 본격화로 수익성 개선이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HBM3를 신성장 동력으로 지목한 게 눈길을 끌고 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성능 제품이다. AI가 제대로 구현되려면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고성능·고용량 D램이 필수다. HBM이 바로 그런 제품이다.

SK하이닉스는 이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HBM3는 HBM 4세대 제품으로, 초당 데이터 처리 속도가 819GB(기가바이트)에 달한다. 초고속 AI 반도체 시장에서 최적의 제품으로 꼽힌다. 1세대(HBM), 2세대(HBM2), 3세대(HBM2E)를 잇는 제품군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6월부터 HBM3 양산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도 하반기부터 HBM3 양산에 나서면, 양사간 HBM 점유율 전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AI 서버 출하량의 강력한 성장이 HBM 수요를 주도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트렌드포스에 의하면, 올해 AI 서버 출하량이 전년보다 15.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시장 급팽창으로 HBM수요도 급증...트렌드포스 4월 보고서, “SK하이닉스가 50%로 HBM 1위” 분석

이 같은 HBM시장의 급성장은 엔비디아의 급등과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인 엔비디아는 지난 5월 25일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월가 전망치인 65억2000만 달러를 크게 상회하는 71억9000만 달러에 달했고, 2분기 매출 전망은 시장 예상치인 71억 달러의 50% 이상을 상회하는 110억 달러로 예상됐다. AI 시장의 급팽창으로 GPU수요가 폭증하고, 이는 HBM 수요를 연쇄적으로 폭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오른쪽)가 지난 5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산호세에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자율주행차 공동 프로젝트 관련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오른쪽)가 지난 5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산호세에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자율주행차 공동 프로젝트 관련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생성형 AI의 빠른 상용화로 인해 HBM 관련 시장은 연평균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HBM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 SK하이닉스가 1위로 알려져 있었다. 트렌드포스의 지난 4월 18일 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 50%, 삼성전자 40%, 미국 마이크론 10% 등의 순이었다. 게다가 SK하이닉스가 HBM 5세대 제품인 HBM3E를 필두로 올해 점유율 격차를 더 벌림으로써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점유율이 38%, 9%로 소폭 감소할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됐다.

삼성전자 경계현 DS부문 사장, “삼성 HBM 시장 점유율이 여전히 50% 이상” 주장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는 강력한 반론을 제기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 사장이 지난 5일 임직원 소통행사인 위톡(Wednesday Talk)에서 “삼성 HBM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여전히 50% 이상”이라고 단언하면서 “최근 HBM3 제품이 고객사들로부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HBM3, HBM3P가 내년에는 DS부문 이익 증가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HBM 점유율이 50% 이상”이라는 경계현 사장의 주장은 SK하이닉스가 HBM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50%이고 더 높아질 수 있다는 트렌드포스의 보고서 내용을 강력 반박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HBM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가 아니라 삼성전자가 이미 확고한 1위라는 주장인 것이다.

삼성전자는 주요 고객사들에게 HBM2 및 HBM2E 제품을 공급해왔다. 업계 최고 6.4Gbps의 성능과 초저전력의 HBM3 16GB와 12단 24GB 제품도 양산 준비를 이미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더 높은 성능과 용량의 차세대 HBM3P 제품도 하반기에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경 사장은 이 같은 비전을 강조하면서 삼성전자가 이미 HBM 최강자라고 역설한 셈이다.

경 사장은 “DDR5도 올해 연말이면 삼성전자의 D램 평균 시장 점유율을 뛰어넘을 것이다. 연말까지 삼성 D램이 한 단계 더 앞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내년부터는 실행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서버용, 데이터센터 등에 활용되는 또다른 차세대 D램인 DDR5도 신성장동력으로 꼽은 것이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서버를 중심으로 3분기 이후 DDR5 비중이 확대되면서 D램 ASP 개선 속도 또한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경계현 DS부문 사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전자 경계현 DS부문 사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급성장하는 HBM 시장...최강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아?

일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SK하이닉스를 HBM의 강자로 평가해왔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SK하이닉스가 현재 최대 GPU 업체의 거의 유일한 HBM3 공급 업체”라고 주장했고, 정민규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는 “작년에도 SK하이닉스가 경쟁사와 기술 격차를 보이며 HBM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며 “엔비디아 실적 발표 이후 AI 서버 등 하이엔드 제품 수요가 견조함이 확인되면서 SK하이닉스 쪽으로 관심이 집중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속화될 점유율 전쟁의 향배에 따라 HBM 시장 판도는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HBM 수요는 2억9000만 GB이다. 지난 해보다 60% 증가한 수치이다. 내년 성장률은 30%이다. 급성장하는 HBM 시장의 최강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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