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능력을 과대포장하는 내러티브를 퍼뜨려서 상대방의 인지를 바꾸려는 ‘내러티브전(Narrative Warfare)’도 인지전의 한 형태”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발사한 우주발사체 '천리마 1형'의 잔해가 서해에 낙하한 지 15일 만인 2023년 6월 15일 인양됐다. 사진은 합참이 공개한 발사체 잔해.(연합뉴스)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발사한 우주발사체 '천리마 1형'의 잔해가 서해에 낙하한 지 15일 만인 2023년 6월 15일 인양됐다. 사진은 합참이 공개한 발사체 잔해.(연합뉴스)

우리 군은 5일 지난 5월 31일부터 시작한 북한 우주발사체 등 잔해물 탐색 및 인양작전을 종료했다. 한국과 미국은 서해에 추락한 우주발사체 천리마의 2단 동체와 발사체에 탑재된 정찰위성 만리경의 주요 부위 등을 공동조사한 결과 ‘만리경 1호’는 매우 조악한 수준으로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5월 31일 평안북도 동창리에서 만리경 1호를 탑재한 우주발사체 천리마 1형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이 발사체는 1단 분리 후 2단 점화에 실패해 전북 군산 어청도 서방 200여km 해상에 추락했다. 한미는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정찰위성과 발사체 2단부 등 잔해를 분석해왔다. 그런데 북한은 왜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는’ 정찰위성을 쏘아대는 ‘쇼’를 벌이는 걸까?

북한의 이 같은 행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지전(congnitive warfare)’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인지전은 과거 심리전으로 불리던 형태가 발전한 전쟁수행개념으로, 인간 그 자체를 전쟁 수행의 대상으로 보고 인간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 승리하려는 전쟁 형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을 조작하려는 심리전과 달리, 적국 지휘부와 국민의 인식과 의사결정 과정을 조작해 승리를 쟁취하려고 한다. 즉 적국 지도부와 국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인식시켜 잘못된 인지를 바탕으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하면, 적국은 적절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에는 패배한다는 관점이다.

민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의 전쟁에 대한 인식 즉 여론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 등 현상타파 시도 국가들은 평시에도 다양한 인지전을 수행하면서 자국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은 가짜뉴스나 역정보를 통해 상대측 정부와 국민을 이간하고 언론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등 인지영역을 교전대상으로 삼고 있다. 인지전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최근 중국의 대만에 대한 정치군사적 압박,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의 SNS 활동으로 러시아가 절대악으로 규정된 사례 등을 들 수 있다.

북한은 2022년부터 실질적인 핵미사일 능력 개발과 검증보다는 ‘내러티브’에 집중하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포장하는 내러티브를 퍼뜨려서 상대방의 인지를 바꾸려는 ‘내러티브전(Narrative Warfare)’도 인지전의 한 형태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성공을 따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2022년 3월 북한은 ICBM 시험발사 중단 선언을 4년 4개월 만에 파기했다. 김정은은 4월 25일 열병식에서 핵무기를 ‘국가 근본이익 침탈 시도에도 사용하겠다’며 방어용이 아닌 선제 타격에도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7월 전승절 행사에선 윤석열 정부가 선제타격 등 위험한 시도에 나설 경우 ‘전멸’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9월 최고인민회의에선 자의적 위협 판단에 따라 언제든 남한을 겨냥한 핵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핵무력 법제화’를 단행했다. 그러나 전술핵 능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전술핵탄두 기폭실험은 실시하지 못했다. 핵탄두(화상-31)는 올해가 되어서야 공개했으나, 이는 5kt의 파괴력에 불과했다. 공항이나 항만을 완전히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화산-31 1발로는 부족하고, 3~5발을 명중시켜야 완전한 무력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표적이 후방 공군기지나 항만이라면 오히려 15~20kt급의 전술핵 타격이 필요하기 때문에 북한은 향후 더욱 강한 20kt 파괴력의 소형 전술핵탄두를 별도로 개발해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연구위원은 “북한의 노림수는 결국은 핵 그림자(nuclear shadow)의 내러티브를 확립해 우리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이라며 “북한은 핵무기에 대한 심리적 공포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인지전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양 위원은 “북한이 언제든 전술핵으로 한반도 전체를, ICBM으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인식을 퍼트림으로써 주요한 의사결정권자들이 북한에 감히 대응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며 “이러한 인지전이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의 어떠한 지도자도 핵전쟁의 두려움으로 북한이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조차 없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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