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화물 트럭이 떠나 텅 비어 있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 해관(세관)의 북한 수출용 물류 집하장인 '훠위안우류(貨園物流)' 모습(연합뉴스)
지난 5월 8일 화물 트럭이 떠나 텅 비어 있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 해관(세관)의 북한 수출용 물류 집하장인 '훠위안우류(貨園物流)' 모습(연합뉴스)

중국이 간첩행위 범위를 넓힌 새로운 반간첩법 시행에 들어가자 미국의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자의적으로 법률을 적용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한국과 정치·경제적 갈등이 불거질 경우 이 법을 통해 한국 기업인 등을 볼모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3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중국의 반간첩법이 “너무 광범위하고 중국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을 걱정하게 만들기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조치”라며 “한국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중국은 이달 1일부터 ‘반간첩법 개정안’에 대한 시행에 들어갔다. 2014년 이후 9년 만에 개정된 이 법은 간첩행위의 정의와 법 적용 범위가 넓어졌고, 국가안보 기관의 권한과 간첩행위 행정 처분은 강화됐다. 특히 ‘국가 기밀과 정보를 빼내는 행위’로 한정됐던 간첩행위를 ‘기타 국가안보 및 이익과 관련된 자료’까지로 확장했다. 국가 안보·이익에 관한 문건·데이터 등을 정탐, 취득, 매수, 불법 제공하는 것도 간첩행위로 처벌받게 됐다. 이를 위반한 외국인은 추방이 가능하고 한번 추방되면 10년 안에 재입국할 수 없다. 특히 ‘국가안보 및 이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중국 당국에 의한 자의적 적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VOA는 지적했다.

와일더 전 보좌관은 “과거 중국에 가서 연구했던 많은 미국과 다른 서방 학자들이 중국의 문서와 물질, 자료를 봤는데 이제는 새로운 반간첩법 위반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새로운 법이 중국과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 실질적인 냉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미국, 한국, 일본 등 중국과 사업을 하는 국가들은 해당 법이 자국민들에게 악용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구체적인 이행 방침에 대한 보다 명확한 설명을 중국 측에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앤드류 여 한국석좌도 VOA에 ‘국가안보’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고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은 무엇이든 국가 안보와 관련된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며 “중국이 좋아하지 않거나 의심되는 것으로 보이는 미국인과 일본인, 한국인 등 누구에 대해서도 이 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미국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과 같이 한국이 중국에 반대되는 정치 군사적 정책을 취하거나 미국의 군사 행동을 지지하는 입장 등을 취하면 유력한 한국 국적의 기업인을 구금할 명분을 찾으며 보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지난달 말 ‘중국 반간첩법 개정안 시행 대비 안전 공지’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국 대사관은 “간첩행위의 정의와 법 적용 범위가 확대됐다”며 한국 관광객들에게 중국 지도 검색, 시위대 촬영 등에 대해 주의를 당부했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 대사대리는 VOA에 “중국이 한국을 포함해 ‘우려 대상’으로 간주되는 외국인과 단체에 대해 더욱 공격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신호를 국제사회에 보내는 것”이라며 “한중관계 냉각의 또다른 징후로 보인다”고 했다. 중국 측의 이번 조치가 삼성전자 전직 간부가 중국의 이익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혐의가 최근 밝혀진 이후 윤석열 정부가 국익에 반하는 이른바 ‘간첩’에 대한 대응을 전면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나온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12일 국가핵심기술이 담긴 설계도면을 이용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본뜬 공장을 중국에 세우려고 했던 삼성전자 전 간부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25일 해외기술 유출 범죄와 관련 양형 기준의 상향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는 VOA에 “중국 내 많은 한국인들이 ‘반간첩법’에 취약할 것”이라며 “중국은 한국과의 정치 경제전에서 이들을 볼모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맥스웰 부대표는 “한국기업들이 리스크 해소를 위해 더욱 중국을 이탈하고 중국 측과의 관계에 대해서 재평가 할 것”이라며 “중국의 반간첩법이 탈북민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내 탈북민들은 이미 중국에서 이동의 자유 없이 체포와 강제송환 대상으로 취약한 상화인데, 새 법이 중국 내 탈북민들의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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