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2019년 베이징 대학의 한 유명한 법학 교수와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그날 그 교수가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인정하고 일본에 대해 감사하는데 유독 한국인만이 일본에 감사할 줄 모르고, 강도 높고 거듭되는 반일 감정으로 일본을 바보 취급한다. 이게 나는 불가사의하다. 중국인들도 반일 교육은 있지만 일본의 선진성, 국민 민도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말이다. 한국인은 너무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데 그런 만용은 나쁘지 않지만 어딘가 유치해 보인다." 그의 말을 들으며 필자는 회심의 웃음을 지었다.

대만의 역사비평가이며 작가인 황문웅 씨는 다같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경험했지만 대만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일본에 감사하고 있는데 한국인은 '반일'을 고집하는 부조리를 지적한다.

수년 전 도쿄에서 만났을 때 황씨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본 통치 시대 일본인의 공헌은 대만인에 대해서는 아주 지대한 것이었다. 그들이 헌신적으로 심혈을 기울였고 진력했기 때문에 오늘의 대만이 있는 것이다. 가장 근대적이고 우수한 일본인은 아시아의 모범이며 오늘까지도 아시아가 따라 배워야 할 모델이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다같이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일본에 대한 감사의 마음, 겸허한 마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본을 매우 우습게 보고 경멸하고 천방백계로 끌어내리는 것이 그들의 졸렬한 언행이라고 본다. 은혜를 갚을 줄 모르고 감사의 마음이 결여한 민족에게 절대로 필요한 건 자기 성찰과 자기 비판이어야 한다." 황씨의 기탄 없는 허심탄회한 지적에 필자는 몇 번이나 거듭 수긍했다.

아시아, 아니 세계인이 보는 눈은 다 비슷한 것이다. 2005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8월 15일-22일호)의 '현대 아시아판' 특집에 "아시아는 일본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취지로 발표한 논문이 있다. 작자는 싱가포르 외교관이며 대학 학장을 지냈던 인도계 화인인 키쇼어 마부바니가 집필한 '아시아의 재생'이다.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아시아에 자신감을 불어넣은 공헌자는 일본이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패하면서 인도인에게 인도 독립의 의식을 탄생시켰다"는 인도 초대총리 네루의 말을 소개한다. 

또한 20세기 초두 일본의 성공이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의 발전이 이루어졌고, 일본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한국도 일본이란 모델, 향도자가 없었더라면 이처럼 눈부신 성공은 없었을 것이라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런 일본에 겸허하며 심심한 감사를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중국도 일본에 감사해야 하며 북한도 사실 겉으로는 일본을 비판하지만 속으로는 일본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힌다.

세계를 둘러봐도 일본의 성공, 우수성과 그 지대한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인정하는 것이 하나의 '상식'이 된 지도 오래다. 그러나 유독 한국만이 일본은 아니꼬운 불편한 존재로 되고 있다. 필자가 1990년 초 일본에 유학하면서 지금까지 만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일본을 좋아하면서도 이런 일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감정, 정서적인 것들이 항상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93년에는 전여옥 씨의 '일본은 없다'란 책까지 등장하며 반일·혐일 정서에 영합해 일본의 우수성을 부정하고 폄하하는 '일본비난서'가 일세를 풍미했다. 당시 필자는 이 책이 옛날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경멸했던 역사적 현상과 너무 흡사해 앙천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같은 한국인의 일본 경멸, 부정·모욕 정서를 필자는 나름대로 한국인의 '모일사상(侮日思想)'이라 칭하고 싶다. 그것은 하나의 한국인의 유전자로 아로새겨져 있음을 필자는 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후 일정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한 한국인들의 절대 다수가 마치 그 시대를 체험한 듯이 일정시대를 너무 잘 아는 것처럼 일본을 비난, 왜곡, 폄훼하는 것이 새로운 한국의 '국민성'이 되어 버렸다.

필자가 여기서 하나 지적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그처럼 일본을 비난, 모독하면서 그 자체에 대한, 즉 '반일, 모일' 정체에 대한 일말의 반성, 분석이 없다는 현실이다.

과연 '반일'이 이대로 좋은가. 무절제의 무당이 신들린 듯한 광열적인 '모일'에 어떤 과오가 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기 자신에 되돌릴 성찰은 거의 없었다. 아니 있다 하더라도 '반일 종족주의'의 작자나 일부 '토착왜구'라고 매도당한 소수의 지성인 뿐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해외 동포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인의 '모일사상' 원인 분석을 감행해 보기로 했다. 여러가지 원인, 뿌리가 있다고 상정하지만, 필자는 아래 몇 가지 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의외로 한국인의 모일사상은 그 뿌리가 깊고도 길다. 현재 한국인이 일본에게 사죄를 강요하며 '일제 시대의 징용공 문제, 위안부 문제' 등으로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는 쇼를 벌이고 있다. 일본이 아무리 거듭 사죄하고 1965년 한일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법적인 근거를 내놓아도 한국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계속 우겨댄다. 

1. 흔히 '일제 36년 통치'가 한국인의 '모일사상'을 만들었다고 하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지만, 필자는 그것이 아니라 1910년 식민지 병합 이전부터 조선인의 모일사상은 '모화(慕華)사상'과 세트로 형성되고 계승되어 왔다고 본다.

필자는 그것을 조선의 전통적인, 일본에 대한 '민족적인 우월감'이라 생각한다. 한중일 동아시아 전통 질서에서 중국이 맏형이고 한국이 둘째 아우이며 일본은 야만적인 셋째 막내라는 관념이 무의식적으로 견고하게 잠재해 있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 중에는 지금도 '예로부터 우리가 일본에 조선의 고차원의 문명을 가르쳐주었다'는 우월감이 강하다. 예를 들어 지금도 한국인들은 '일본인이 식사 때 젓가락만 쓰고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숟가락 뜨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정식 외교문서를 제외하고는 항상 일본인을 '왜놈' '왜족' '왜적' '만이(蠻夷)'라 멸시하면서 이런 모욕적인 단어를 골라 써왔던 것이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지식인들마저도 일본을 '왜놈' '일본놈' '일본 쪽발이'로 멸칭을 상통하고 있으며, 일본 천황도 한수 깎아내려 '일왕'이라 부른다. 이러한 전근대적 타인 멸시, 자기 우월 의식은 한중일에서도 한국인이 제일 강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 한국인에게 결여한 것이 상대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라 본다. 일본에게서 근대화를 배웠고 덕분에 근대화를 이룩하게 된 그 '영향력' '은혜'를 한국인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부정, 왜곡하는 괴벽이 있다. 세뇌당한 일반인들은 그렇다 치고 진실을 알 만한 우익이나 죄익세력 역시 일본 앞에 서면 '성난 도깨비'로 변하며 일본 부정, 반일종족주의로 일관한다.

물론 한국어에도 '감사' '고맙다' '덕분' '덕택으로' 등 감사를 표하는 단어는 많이 존재하지만 유독 일본에 대해서는 이런 아름다운 말을 다 망각해 버린다. '일본이 우리에게 감사하면 했지 우리는 절대 일본에 감사할 수 없다'는 옹졸한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객관적 사료, 진실한 사실, 정확한 문헌이 있어도 한국 좌익 지식인은 불편해하며 의도적으로 눈 감고 보지도 듣지도 않고 있다. 이런 지식인들의 졸렬한 행동 양식은 북한이나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대하는 작법과 일맥상통한다. 진정한 역사적 학문은 애초에 탄생될 수 없고, 그 대신 거짓말과 왜곡이 무성하는 잡초밭이 된 한국의 학계, 지식계다. 

이제 한국 사회는 물론 학계, 지식인 특히 좌파세력의 지식인은 오늘도 일본 '모일사상'에 듬뿍 젖은 전근대적 인간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3. 이번에는 한국인의 민족심리, 국민성적인 차원에서 그 뿌리를 찾아보기로 하자. 한중일 3국의 국민성 비교를 통해 추출해낸 하나의 결론이 있다. 상대에 대한 질투, 시기, 원한도를 비교했을 때 한국인의 그 농도가 일본, 중국인보다 짙다. 역사, 문화지리 풍토적으로 좁은 반도에 살면서 '천번의 외래 침략을 경험했다'는 조선인의 심성은 기본상 땅에 집착하는 협소성이 두드러진다.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말과 같이 상대의 희사, 성공을 기뻐하면서도 농경문화, 땅에 뿌리를 둔 질투심은 한국인의 배타성이나 '우리가 아닌 남'에 대한 인정도가 낮음을 입증해준다. 

일본의 우수성, 일본의 성공에 대해 한국인은 내심 인정하고 선망하면서도 이른바 '과거 고통의 역사'가 아픔을 주었다는 이유로 시기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필자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이런 옹졸한 농경문화식의 '질투심'은 역시 한국인의 근대성을 끌어내리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4. 한국인의 소국 콤플렉스에서 기인되는 애국심, 내셔널리즘은 아시아에서도 유난히 팽창되고 강렬해 일본을 좋게 보게 하는 틈새를 주지 않는다.

이런 애국심은 사람에게 정상적인 판단을 저애하며 편향적으로 소심하게 만든다. 따라서 그 소심성, 편향성은 사회적으로 확장돼 한국적인 결함으로 고착돼 버린다.

그것이 일본에 대했을 때는 일본과의 관계에서의 자기 미화와 일본 왜곡과 부정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사실 일본을 그대로 보는 것은 한국과 엮인 근현대사이므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는 것과 일치하는데도 말이다.

고착된 한국적 '애국심'을 깨부수고 진실을 찾는 틈새를 하나하나 마련해 가는 것이 한국인의 왜곡된 정체성을 회복하는 지름길이 아닐가.

사실 일본을 비하하고 바보 취급하는 한국인의 일그러진 심성, 아니 좌파세력의 졸렬하고 그로테스크한 일본 비난, 자기 미화는 일본을 해침과 동시에 그것이 자신을 해치는 화살로 되돌아옴이 더 무섭다.

이 소박한 진리를 이제 한국인, 좌파세력이 인식하고 일본에 대한 '모일사상'을 분쇄시켜야 한다. 그게 또한 한국 자신을 구제하는 첩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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