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시행되는 중국의 대외관계법(제정), 반(反)간첩법(개정)이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3기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중국의 ‘안보 우선’ 기조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중 전략경쟁 심화 속에 내부 통제는 강화하고, 외부의 중국 견제 세력에는 날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시진핑 집권 3기의 공식 출정식 격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개막하는 4일 회의장인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부근 톈안먼의 전경 모습. 2023.3.4. [사진=연합뉴스]
시진핑 집권 3기의 공식 출정식 격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개막하는 4일 회의장인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부근 톈안먼의 전경 모습. 2023.3.4. [사진=연합뉴스]

7월 1일 시행되는 중국의 대외관계법(제정), 반(反)간첩법(개정)은 시진핑의 ‘철권통치’

대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해지고,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을 기치로 한 미국의 첨단기술 견제가 강도를 더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사실상 '준(準)전시' 태세에 돌입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대외관계법은 서방의 대(對)중국 제재에 대한 반격 조치를 정당화하는 법으로,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보복 근거법’이라는 점에 주목된다. 중국 헌법을 국제법보다 더 우위에 둔다는 점을 명확히 규정한 것으로, 중국 외교의 ‘헌법’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도 중국과 사드 관련 이견을 갖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대외관계법 시행 이후 중국의 행보를 주시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밀접하게 연관된 한국 입장에서는 반간첩법에 대한 경각심 또한 높아지는 상황이다.

대외관계법, 미국을 겨냥한 ‘보복 근거법’

제14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 28일 제3차 회의에서 대외관계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외국의 제재에 맞서는 베이징의 최신 무기로, (공산)당의 통제를 더 강화하는 것”이라며 “국가안보에 초점을 맞춰 미국에 대응하기 위한 포괄적 외교관계 법률”이라고 설명했다.

총 6개장, 45조로 이뤄진 대외관계법에는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 상호 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 불간섭, 평등과 호혜, 평화공존 등 '5대 원칙'과 평화적 발전 견지, 대외 개방의 기본 국책 견지 등이 포함됐다.

중국 인민일보 29일 자에 소개된 중국대외관계법 전문. [사진 출처=연합뉴스]
중국 인민일보 29일 자에 소개된 중국대외관계법 전문. [사진 출처=연합뉴스]

특히 국제사회는 보복 조치 근거 조항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중국은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기본준칙을 위반하고 중국의 주권, 안보 및 발전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상응하는 반격 및 제한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는 제33조의 내용이 대표적이다.

그간 중국은 자국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제재 조치에 대해 '확대관할(long arm jurisdiction·일국의 법률 적용 범위를 나라 밖까지 확대하는 것)'로 규정하면서, '맞불 제재'를 가능하게 한 반(反)외국제재법(2021년 제정)에 입각해 대응해 왔다. 특정 국가의 제재나 제재성 조치가 있을 경우 그에 맞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어, 반외국제재법에 입각한 대응은 수동적인 측면이 강했다.

반면 대외관계법은 외국의 특정한 제재 조치가 없더라도 외국이 중국의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해치는 행위를 하면 그에 맞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한결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대응 방침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헌법이 국제법보다 우위임을 명시...‘전랑 외교’를 입법화

대외관계법 30조는 ‘중국 헌법이 국제법보다 우위’라는 것을 명시한 조항으로 분석된다. 30조는 “국가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조약·협정을 체결한다”며 “이는 헌법에 저촉돼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따라서 ‘중국 헌법이 모든 것에 앞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법이 중국 헌법보다 상위일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로써 미중 간 경쟁 구도에서 중국의 강경 기조인 ‘전랑(늑대전사) 외교’를 법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결국 대외관계법을 토대로 중국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중국의 주권, 안보, 발전이익을 건드리는 행동을 했다고 간주할 경우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 때 중국이 시행한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같은 보복 카드를 외교 마찰이 발생할 때마다 꺼내들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호주와의 갈등 국면에서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한 일 등 국제사회가 중국의 '경제적 강압 조치'로 규정하는 것들이 대외관계법에서는 '적법 조치'가 되기 때문이다.

반간첩법 개정안, 시진핑 비판 글만 외국에 보내도 간첩으로 간주

간첩 행위에 대한 범위를 대폭 강화한 반간첩법 개정안도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2014년 이후 9년 만에 대폭 개정한 법안은 기존 5장 40조항에서 6장 71조항으로 늘었다.

개정안은 ‘간첩 행위’의 정의를 모호하게 하고, 조사·처벌 권한은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중국 당국이 자의로 법을 집행할 여지가 커졌다는 뜻이다.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리는 행위’에 ‘간첩조직에 의지하거나 대리인 역할을 하는 행위’, ‘국가기관과 기밀 기관 중요한 정보 인프라 시설에 대해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는 행위’ 등이 추가됐다.

中, 7월 반간첩법 시행…지도 검색·사진 촬영도 주의해야(CG). [연합뉴스TV 제공]
中, 7월 반간첩법 시행…지도 검색·사진 촬영도 주의해야(CG). [연합뉴스TV 제공]

예를 들어 중국 반도체 산업 관련 분석 데이터나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한 비판성 글을 외국에 보내기만 해도 간첩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있다. 간첩 조직에 참여하거나 임무를 부여받지 않았더라도, 이와 연루돼 이익을 얻었다면 간첩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국가 안보’ 등 핵심 개념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아 중국 당국이 자의로 법을 집행할 여지가 커졌다. 따라서 개정안 시행으로 중국 당국이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자국 내 외국인에 대한 제한과 처벌을 더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 진출 한국기업, 여행객 등 잘못하면 간첩으로 몰릴 수도 있어

앞으로 중국이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한·중 갈등 상황에 재중 교민, 한인 학자·기자나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반간첩법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강화된 중국의 반간첩법은 현지 거주자뿐 아니라 중국 여행객에게도 적용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물증이 없이 간첩죄를 입증하지 못해도, 정황만으로 벌금 5만위안(약 900만원)을 부과한다는 조항이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주중 한국대사관은 26일 홈페이지에서 “한국과는 다른 제도, 개념 등의 차이로 예상치 못한 피해가 생길 수 있다”며 “중국에 체류하고 있거나 방문 예정인 국민들은 유의해 달라”고 공지했다. 대사관은 중국 국가안보 및 이익과 관련된 자료·지도·사진·통계 자료 등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노트북 등에 저장하는 행위 등을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또 군사시설·국가기관·방산업체 등 보안통제구역 인접 지역에서의 촬영, 시위 현장 방문, 중국 정부에서 금지하고 있는 종교 활동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이 주로 찾는 백두산 관광 시 북·중 접경 지역 등을 무심코 찍었다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간첩법 시행과 관련된 각국의 우려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모든 국가는 국내 입법을 통해 국가 안보를 수호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각국에서 통용되는 관행"이라는 입장이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전면적인 '의법치국(법에 의한 통치)'을 추진하고 법치의 원칙을 변함없이 준수할 것“이라면서 ”법에 의거해 법 집행을 규범화하고 법에 의거해 개인과 조직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반간첩법 개정안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통해 시작한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3기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차원에서 중국 정보의 모든 창구를 관리하겠다는 선언”이라면서 “이제 중국을 제대로 알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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