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산정호수에 있었던 김일성 별장 모습. 사람들 뒤쪽의 기와집이 일제시대에 지어진 산정호수 관리용 건물로 김일성이 사흘간 머물렀다고 한다.
포천 산정호수에 있었던 김일성 별장 모습. 사람들 뒤쪽의 기와집이 일제시대에 지어진 산정호수 관리용 건물로 김일성이 사흘간 머물렀다고 한다.

 

73년전 오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기습남침에 의해 6·25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인민군의 주 공격로였던 철원~포천~의정부 축선의 최전방에서는 국군 1개 연대 중 1개 대대, 불과 400여명의 병력이 포천시 북방 38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지금은 한국군 무려 두개 군단,6개 사단에 이 지역에 밀집해있다.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한미합동 화력시범훈련이 벌어진 포천시 영북면 승진훈련장은 6·25 당시 인민군의 바로 이 주공로(主攻路), 43번국도 바로 옆에 있다.

한미합동 화력시범은 6·25 남침 선상에서 북한군이 73년전과 같은 침략을 해올 경우 한미합동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격멸한다는 무력시위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육군 중위로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에서 문관 신분이었던 박정희와 함께 근무했다.

이들은 6·25 6개월전인 194912월초, 전방에서 수집한 각종 정보와 첩보를 토대로 북한군의 남침이 임박했다는 보고서를 올렸지만, 군 수뇌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김종필 전 총리의 생전 언론 인터뷰 및 회고록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해가 바뀌고 1950년 68일 포천 파견대 양문리 초소에서 일단의 장교를 대동한 인민군 고급지휘관이 전방 고지에 나타나 종일 정찰을 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69일에는 비슷한 보고가 동두천과 고랑포 건너편 고지에서도 올라왔다. 전곡의 지방 도로를 따라 인민군 차량행렬이 남하하고 있다는 보고도 들어왔다.”

북한군의 남침 보름쯤 전인 68일 포천 양문리 38선에 나타났다는 인민군 고급지휘관은 누구였을까?

그 정체에 대해 당시 영중면 38선 북방, 이었던 현재 포천시 영북면 주민들은 김일성을 지목한다.

1925년 일제 강점기에 축조된 포천시 영북면 산정호수에는 김일성 별장터가 있다. 원래 산정호수를 축조한 뒤 관리를 위해 지어진 기와집이었다. 지금은 기와집 건물은 없어졌고, 포천시에서 만든 표지판이 남아있다.

이곳이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게 된 것은 6·26 발발 직전 김일성이 찾아와 자고갔기 때문이다.

산정호수 바로 옆, 산정리 주민들 사이에서는 당시 김일성이 산정호수 기와집에서 사흘 정도를 머물며 전방을 시찰하는 한편 한반도 지도와 꼭 빼닮은 산정호수를 바라보며 남침전쟁을 구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명성산 일대 계곡을 막아서 만든 산정호수는 한반도 지도와 거의 일치하는 모습을 갖고 있는데, 김일성은 이곳에서 북한군의 주요 전방 지휘관들을 모아놓고 사전에 수립한 작전에 따라 남침경로 등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정호수 야경
산정호수 야경

 

당시 김일성은 이와함께 철원에서 내려오는 호수변 산길을 확장, 의정부로 향하는 북한군 전차의 우회 진격로로 사용하도록 하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한다.

포천시는 2019년 김일성 별장이 있던 산정호수 전망대 부근 1,700평에 50억여원을 들여 복원을 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 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그동안 산정호수 김일성 별장은 이야기로만 전해질 뿐 사진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곳 주민들이 산정호수의 과거 모습을 담은 사진을 수집, 분류하는 과정에서 양대종 산정리에 의해 발견됐다.

사진은 김일성 별장이 철거되기 직전인 1964년 산정호수에 거주하던 한 가족이 별장 앞에서 찍은 것으로 김일성 별장의 모습을 담은 유일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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