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9일 현대차 노조 판결에 대한 정재계의 비판에 대해 ‘사법권 독립 훼손’ 우려를 표명하고 나선 지 하루만인 20일 경제6단체장이 대법원의 ‘꼼수 판결’로 인해 산업현장이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대법원의 특정 판결이 사회적 비판의 초점이 되고, 이를 대법원이 해명하고 반박하자 다시 재계가 즉각 재반박 및 비판에 나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 6단체는 20일 대법원의 불법쟁의행위 손해배상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경총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경제 6단체는 20일 대법원의 불법쟁의행위 손해배상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경총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이 한국 정재계를 ‘준엄하게’ 꾸짖었으나 바로 다음날 경제6단체로부터 직격탄을 맞는 초라한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김명수 체제 대법원은 한국 재계 신뢰를 상실해, 논쟁 커질수록 노정희 대법관 책임론도 확대될 듯

경제6단체장이 이처럼 대법원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지난 15일 나온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의 현대차 노조 판결이 한국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6월 17일자 펜앤드마이크 ‘김명수 대법원의 노란봉투법 알박기 판결, 한국경제에 끼칠 악영향이 더 무섭다’ 참조

김명수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대법원이 ‘노란봉투법’ 알박기 판결을 한 것이라는 불신을 분명하게 표명한 셈이다. 더욱이 대법원은 해명을 통해 대법원 3부의 현대차 노조 판결에서 주심을 맡은 노정희 대법관에 대한 과도한 비판에 대해서도 자제를 요구했다. 이는 역으로 향후 논쟁이 격화될 경우 노 대법관에 대한 책임론도 커질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문제의 판결은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가 지난 15일 전국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현대자동차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파기환송한 건이다. 원심은 지난 2010년 11월부터 25일 동안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울산공장 1·2라인 점거 농성을 벌여 조업중단으로 인한 손해를 입힌 파업 참여 노동자 4명에 대해 회사측 청구액인 20억원을 연대해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이나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는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판결 내용은 지난 5월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일치한다. 노란봉투법은 “법원이 조합원 등의 쟁의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그 손해에 대하여 각 배상 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범위를 정하도록 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은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국회가 노란봉투법을 조속히 처리하라고 압박하고 나선 반면에 정부여당과 경제계는 대법원 판결을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여당인 국민의힘은 “김명수 체제의 대법원이 불법 파업을 조장해 국민 피해만 가중할 이른바 '노란봉투법'에 힘을 보탰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이례적으로 입장문 발표해 ‘사법부 독립 훼손’ 우려하며 노정희 대법관 비판 자제 요구

대법원은 지난 19일 공식 해명에 나섰다. 우선 19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낸 입장문에서 2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대법원 3부의 판결에 대한 비판이 사법부 독립 훼손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 "판결 선고 이후 해당 판결과 주심 대법관에 대해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면서 "사법권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며 자제를 요청했다.

둘째, 주심이었던 노정희 대법관에 대한 비판 자제를 요구했다. "판결에 대해 다양한 평가와 비판이 있을 수 있고 법원 또한 이를 귀담아들어야 함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판결 취지가 오해될 수 있게 성급하게 주장하거나 특정 법관에 대해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셋째, 판결에 대한 비판은 모두 ‘잘못된 주장’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대법원 판결은 물론 1, 2심 판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받아들이기 어렵다)"라며 "잘못된 주장은 오직 헌법과 법률의 해석에 근거해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판결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결과 달리 회사측 손을 들어준 1심과 2심 판결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도 모두 ‘잘못된 주장’이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권 독립이나 재판 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논리로 설명되고 있지만, 사법부의 판결은 ‘무오류의 판단’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크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정치경제적 논쟁에 직접 뛰어 들어...‘노정희 지키기’ 의도 작용

대법원은 쟁점별로 정재계의 비판을 반박하는 A4용지 4장짜리 보도자료도 냈다.

대법원은 공동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책임을 행위자가 다 같이 부담하는 민법 760조 원칙을 대법원이 정면으로 어겼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공동 배상책임 원칙은 유지하고 책임의 비율만 노조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이번 판결로 인해 기업이 개별 노조원들별로 개인들이 끼친 손해를 별도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업의 입증책임은 기존과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 3부의 판결은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고 한 것과 모순되는 설명이다.

대법원의 이번 입장문 발표는 이례적이다. 정치경제적으로 논쟁이 벌어진 판결에 대해 통상적으로 특별히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게 법원의 관례이다. 논쟁에 뛰어드는 행위 자체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입장문 발표에 이어 보도자료까지 낸 것은 주심을 맡은 노정희 대법관에 대한 비판이 과도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정희 지키기’ 의도가 작용해 대법원이 사회경제적 논쟁에 직접 뛰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판결은 노 대법관이 주심을, 오석준 대법관이 재판장을 맡아 대법원 소부 재판부에서 심리했다.

경제6단체가 바로 다음날 대법원을 정면비판하는 충격적 사태 벌어져...대법원이 법치주의 근간 붕괴시켰다고 맹비난

이처럼 대법원이 개별 판결에 대한 비판적 반응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장 명의의 입장문과 보도자료를 낸 것도 이례적이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다음날인 20일 재계가 대법원을 다시 정면 비판하는 공동입장문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입장문을 발표, 대법원 3부의 현대차 노조 판결에 대해 "민법의 기본 원칙을 부정하고 산업현장의 법치주의 근간을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민법을 부정함으로서 법치주의를 붕괴시켰다는 표현은 사법부의 존립근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고강도 발언이다. 재계가 ‘격분’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또 "책임 제한의 사유에 있어서 이제까지 대부분 판례가 피해자의 과실 등을 참작해왔으나, 이번 판결은 조합원의 가담 정도와 임금수준까지 고려하도록 했다. 다른 일반 불법행위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면서 "이번 판결은 책임 비율을 개별적으로 평가한 아주 예외적인 대법원 판례를 불법쟁위행위에 이용한 꼼수 판결"이라고 날을 세웠다.

책임비율을 개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면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를 사실상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복면을 쓰거나 폐쇄회로(CC)TV를 가리고 기물을 손괴하는 현실 속에서 조합원 개개인의 손해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산업현장은 무법천지가 될 것이 자명하다"고 구체적 사례를 들어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따라서 경제6단체의 공동 입장문 발표는 김명수 체제의 대법원이 한국 재계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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