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여성대상 강력범죄, 가해자 신상공개 확대해야" .2023. 6. 12.(사진=연합뉴스TV, YonhapnewsTV)
윤석열 대통령 "여성대상 강력범죄, 가해자 신상공개 확대해야" .2023. 6. 12.(사진=연합뉴스TV, YonhapnewsTV)

출발점: 무죄추정 원칙과 피의자 신상공개의 긴장관계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범죄를 범한 것으로 검찰에 의해 기소된 형사피고인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수사 단계에 있는 형사피의자도 당연히 무죄로 추정된다. 결국 모든 국민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진범이 뒤늦게 잡힌 경우뿐만 아니라, 범인으로 몰려 기소되었으나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례들은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모든 형사피의자, 형사피고인을 범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를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그러한 피해 가운데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막기 위해 무죄추정의 원칙은 세계 각국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현행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예컨대 형법 제126조에 규정된 피의사실공표죄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언론 보도에서 실명 공개에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이나 범인으로 체포된 사람들의 초상권을 인정하여 옷이나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형사피의자나 형사피고인의 보호 이상으로 중요한 인권 보호의 필요성으로 인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해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연쇄살인 등의 중대범죄가 발생한 경우에 시민들의 보호를 위해 범죄혐의자를 공개수배하는 것이나, 공인(公人= 고위공직자,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의 공적 인물)의 범죄혐의에 대해서는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피의자 신상공개 문제도 이와 마찬가지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한 예외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무죄추정의 원칙이 중요한 헌법상의 원칙이지만, 추가범행의 방지나 국민의 알권리가 매우 중요시되는 경우에는 특정 범죄에 한하여 엄격한 요건 하에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에 대해 신상이 공개되지 않자, 한 유튜버가 개인적으로 신상을 공개함으로써 찬반 논란이 뜨거워진 바 있다. 이 문제는 현행법상 신상공개의 대상범죄가 매우 제한적이며, 더 나아가 신상공개를 확대하는 것은 헌법상의 무죄추정 원칙과 충돌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검토해야 한다.

[영상] '또래 살해' 정유정 송치…"살인 충동 언제부터?" 질문에. 2023.06.02(사진=연합뉴스TV)
[영상] '또래 살해' 정유정 송치…"살인 충동 언제부터?" 질문에. 2023.06.02(사진=연합뉴스TV)

현행법상 신상공개의 기준

현행법상 피의자의 신상공개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조항이 2개 있다. 하나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에서 규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서 규정한 것이다. 각 조항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대체로 유사하다. 먼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에서는 제1호부터 제4호까지 네 가지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1.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2.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3.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4.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 제2조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그리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 제1항은 “성폭력범죄의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에는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피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다만,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규정의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한 것이다.

이러한 기준 중에서 주로 문제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이라는 기준이다. 그밖의 기준은 해당 여부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나, 이 기준의 판단은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비교적 크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서도 본인이나 공범의 추가 범행의 방지, 모방범죄의 방지는 비교적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지만, 더욱 애매한 것이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폭넓게 인정하면 사실상 모든 범죄에 대해 신상공개를 해야 할 것이며,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신상공개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가 항상 문제가 된다. 피의자가 공인인 경우에는 신상공개를 하는 것이 원칙이며, 공인이 아닌 경우에도 예컨대 개구리소년 사건이나 화성 연쇄살인 등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은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피의자가 공인이 아닌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신상공개 여부의 판단이 모호할 수 있다. 과연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무죄추정의 원칙이 더 중요한가? 이에 대한 주관적 판단의 차이가 최근 정유정 사건에 대해서는 공개로, 얼마 전의 제주 유명음식점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비공개로 결정이 엇갈리게 만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 가지 지적되어야 할 점은, 자치경찰제 시행과 맞물려서 신상공개심의위원회가 각 시⋅도 경찰청마다 각기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여러 신상공개심의위원회의 판단기준이 완전한 일치를 보이는 것도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더욱이 최근 10년 동안에 신상공개에 대한 심의가 이루어진 것이 전국적으로 60여 건에 불과한 점을 생각하면, 각 시⋅도 경찰청의 신상공개심의위원회 심의는 평균적으로 1년에 1건도 되지 못한다. 신상공개심의위원회가 신상공개에 관한 노하우를 축적하기도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속보] '부산 돌려차기' 항소심서 징역 20년 선고. 2023. 6. 11. (사진=연합뉴스TV, YonhapnewsTV)
[속보] '부산 돌려차기' 항소심서 징역 20년 선고. 2023. 6. 11. (사진=연합뉴스TV, YonhapnewsTV)

왜 국민들은 피의자 신상공개 확대를 원하는가?

최근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국민들이 신상공개를 요구했지만, 신상공개심의위원회조차 열리지 않았다는 점에 분개했다. 그러나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신상공개의 대상이 되는 범죄 자체가 한정되어 있으며,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살인, 인신매매, 강도, 강간 등 특정강력범죄에도 해당되지 않고, 성폭력범죄에도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현행법상 신상공개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많은 국민들이 피의자 신상공개를 확대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이러한 여론의 흐름에 따라 실제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가 대폭 확대되는 것은 아닐까? 국민들이 피의자 신상공개 확대를 원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범죄혐의자로 체포된 사람, 즉 피의자는 당연히 범인이라고 생각하며, 엉뚱한 사람이 체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범죄자로 몰려서 신상공개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며, 무죄추정의 원칙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둘째, 응보적 정의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범죄자에 대해서는 신상공개 등을 통한 불이익을 입는 것이 당연하며, 오히려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피의자의 가족, 친지 등에게까지 심각한 불이익이 미친다는 점에 대해서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신상공개가 큰 효과가 있다는 점만 생각하고, 그것이 지나친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많은 숫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유죄의 확정판결이 내려진 이후에 진범이 잡히고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사례들도 있다. 더욱이 피의자 단계에서 유죄를 확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 때문에 법률상 피의자 신상공개 기준에서도 유죄의 증거가 충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피의자 신상공개를 확대할 경우에는 잘못된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더욱 커지며, 신상공개로 인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 국가기관이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신상공개를 할 경우에도 그러한데,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유튜버처럼 개인적으로 타인의 신상을 털고 공개하는 일이 많아지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그러므로 피의자 신상공개는 앞으로도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서만 허용되는 것이 옳다. 설령 진범임이 99.9% 확실한 경우라 하더라도, 다른 중대한 법익의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신상공개를 통해 추가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신상공개의 범죄예방효과가 크므로 이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형의 범죄예방효과가 크기 때문에 사형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피의자 사진 공개 (머그샷) (PG).(사진=연합뉴스,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피의자 사진 공개(머그샷) (PG).(사진=연합뉴스,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맺음: 피의자 신상공개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

이상 검토한 바와 같이 피의자 신상공개는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서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러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경우에도 신상공개를 소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엄격한 기준을 충족했다는 것은 추가 범행의 예방 등 더욱 중대한 법익의 보호를 위해 신상공개가 필요하다고 인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는 머그샷의 경우도 이러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피의자나 공범 등의 재범 또는 추가범행 위험성 때문에 신상을 공개했는데, 정작 낡은 증명사진으로 인하여 신상공개의 효과가 없다면 신상공개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기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상공개 기준의 통일성을 위해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전국 단위로 통합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자치경찰제로 인한 어려움이 있지만, 전국 시⋅도 경찰청의 협의에 의해 모든 피의자 신상공개를 담당하는 전국 단위의 위원회를 둘 경우에는 각 시⋅도 신상공개심의위원회에 따라 기준이 불일치하는 문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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