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사진=연합뉴스TV, 편집=펜앤드마이크)
방송통신위원회.(사진=연합뉴스TV, 편집=펜앤드마이크)

지난달 말 윤석열 대통령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면직을 재가하였다. 5월 초에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과 관련되어 기소된 상태에서 충분히 예고된 일이었다. 이에 따라 차기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면직조치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 후임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등으로 여·야간 갈등도 치열해질 것이다.

당연히 신임 위원장 취임 전까지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실상 업무 정지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어쩌면 작년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부터 이미 개점휴업 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임기제 방식의 위원회 형태의 정부 기구에 대한 비판적 시각들도 적지 않다.

방송규제를 독임제 정부 부처가 아닌 합의제 위원회 형태로 전환한 것은 2000년 통합방송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1998년 건국 이래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정부는 문화공보부, 공보처 같은 정부 부처가 독점해왔던 방송정책 및 규제기능을 방송위원회라는 ‘준(?) 독립기구’로 전환하였다.

국가권력으로부터 방송을 독립시킨다는 취지에 따라 민간기구 형태로 설립되었지만, 정부가 주체인 정책기능을 고려해 방송위원장을 국가공무원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여·야가 추천한 9명의 방송위원으로 구성하도록 하였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규제기구의 정파 간 위원 안배로 구현한다는 취지였다. 그렇지만 정부·여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같은 방송위원회 구조는 2000년대 초반에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방송·통신 융합 논의과정에서도 쟁점이 되었다. 통신정책과 규제는 독임제 정부 부처인 정보통신부가 관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급변하는 통신 기술 발달에 따라 시의성과 효율성이 강조되는 통신 정책은 의사결정이 늦고 책임성이 약한 위원회 형태의 기구에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에 밀려 2008년 방송·통신 영역을 통합 관장하는 규제기구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여·야가 3:2로 위원을 추천해 구성하는 미국의 FCC 형태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여·야 안배구조의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정책을 둘러싼 정쟁 때문에 통신 정책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지난 15년간 방송통신위원회가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방송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방송영역보다 몇 배나 큰 통신영역에 대한 정책들은 뒷전에 밀려있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해 방송·통신 산업 관련 정책을 분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규모도 축소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명칭도 바뀌었지만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과 통신을 모두 관장하는 막강한 기구지만, 정책과 규제 측면에서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위원회 형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 ‘방송의 정치적 독립’ 때문이다. 하지만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과 임기제로 인한 정치적 갈등과 파행적 운영은 역설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정치적으로 완전히 종속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미국의 FCC처럼 정권교체 이후 정책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위원장이 자진 사퇴하는 성숙된 정치문화가 정착되어있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여·야가 사활을 걸고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한국 정치구도에서 그걸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방송·통신 규제기구의 패러다임 변화를 모색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쉽게 정치와 무관할 수 없는 방송규제기구와 기술적·경제적 성격이 강한 통신 규제기구를 분리하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방송과 통신서비스가 거의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융합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 전혀 맞지 않다. 차라리 효율성과 책임성이 강조되는 정책기능은 독임제 부처에게 맡기고, 절차적 공정성과 투명성이 요구되는 규제기능은 위원회 형태로 분리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안은 2000년대 초반 방송·통신 융합 논의과정에서도 나름 설득력 있게 제기된 바 있다. 또 미국을 제외한 많은 국가들이 정책과 규제가 분리된 체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여소야대 정국과 심각한 대립 구도 등을 감안하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규제 패러다임 변화를 신중하게 고민할 때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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