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리트레이스 시리즈' 출간행사에서의 정의선 회장

과거 삼성과 SK, 현대차 등 주요 기업들의 정보력은 막강했다. 정치권력이 기업의 생사를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지대한 한국적 기업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관(對官)업무’라는 자구책을 만들어 정보를 수집하고 정치인과 관료를 관리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 시절의 삼성 ‘구조본(구조조정본부)’이나 미래전략실의 정보 및 활동범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1995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발언으로 미운털이 박힌데다 이재용 회장으로의 3세승계로 인해 삼성의 대관업무 필요성은 절실한 상황이었다.

현대차와 LG, SK 등 주요 기업들도 삼성을 뒤따라 대관조직을 만들고 활동을 강화했다. 여의도 국회주변에는 이들 기업의 임원,직원들이 상주하면서 국회의원실을 드나들었다.

주요 대기업들의 이같은 대관업무는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여파로 대폭 축소됐다. 이 사건으로 이재용 총수가 수감되는, 직접적 타격을 입은 삼성은 비서실과 구조본의 뿌리를 잇는 미래전략실을 폐지했고, 대관업무 또한 중단했다.

현대차그룹은 2006년 4월 정몽구 회장이 비자금조성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이후 삼성을 뒤따라 고위 임원들을 투입해 대관업무를 활성화했다. 삼성은 현실정치와 분명한 선을 그었던 반면, 현대그룹은 정주영 창업주가 1992년 14대 대선에 출마하는가 하면 아들 정몽준 아산재단이사장이 현재 국민의힘의 전신인 보수정당의 당 대표까지 지낸 바 있다.

역대 정권, 특히 민주당 정권은 대한민국의 1,2위 기업 삼성과 현대차에 대해 극히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2020년 10월3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방문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정의선 회장을 “우리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각별한 친근감을 나타냈다. 정 회장은 “너무 영광입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문 대통령의 울산 현대차 공장행은 한달여전 정의선 회장이 회장으로 선임된 것에 대한 축하방문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회자됐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중 여러 차레 현대차와 정 회장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표시했다.

그해 초, ‘수소경제 로드맵’ 발표행사를 위해 울산을 방문했던 문 전 대통령은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을 만나 “요즘 현대차, 특히 수소차 부분은 내가 아주 홍보모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현대차는 혁신에서 1등 기업일 뿐만 아니라 코로나 위기 극복 노력과 노사협력, 미래비전에서도 1등 기업”이라고 칭찬했다. 현대차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이런 덕담, 칭송을 두고 문재인 정권 탄생의 직접적 계기가 된 촛불시위와 관련, 민주노총에 대한 채무의식의 발현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현대차노조가 민주노총의 골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금강산 관광 등 남북화해 공로에 대한 문재인 정권 관계자들의 인식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현대차와 정의선 회장에게 한 것과 정반대로 삼성 이재용 회장은 문재인 정권 내내 구속과 재판 등 사법리스크에 시달렸다.

대표적인 것이 2020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사건에 대한 친문재인 검사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기소강행이었다. 당초 대검 수사심의위원회는 위원들의 압도적인 의견으로 이 사건에 대해 ‘수사중단 및 불기소’를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수사팀은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기소를 강행했는데, 조국사태 이후 윤석열 총장과 추미애 법무부장관, 이성윤 검사장 간에 채널A 수사를 둘러싸고 고조되는 갈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문재인 정권은 삼성을 둘러싸고 무노조 경영과 편법 경영권 승계 시비 등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상당수의 태도처럼 지속적인 제재를 가했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현대차=민족기업’, ‘삼성=독점재벌’이라는 등식을 만들었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친문재인 기업’이 돼버린 현대차그룹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비서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현대차는 지난달 김일범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김 전 비서관은 외무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해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의 통역관을 맡았다. 배우 박선영씨의 남편으로도 알려진 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시절 외신공보보좌역을 맡았고, 정부 출범 이후 의전비서관을 맡았다가 지난 3월 사퇴한 바 있다.

현대차는 이와함께 산업통상자원부 과장급 공무원, 사정 당국 관계자도 잇달아 영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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