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별 특성 고려 안해 부작용 극심
"업무량은 같은데 근로시간 강제로 줄이면 노동강도만 높아져"

 

7월부터 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은 일주일에 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다. 법정근로는 40시간으로 기존과 같지만 연장·휴일 근무 28시간을 12시간으로 줄여야 한다. 이를 어기면 사업주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50~299명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49명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이 제도가 적용된다. 이는 올해 2월 국회가 ‘근로시간 단축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 시행을 한 달여 앞두고 현장은 혼란 상태다.

제약업계는 경쟁업체의 눈치만 보는 분위기다. 업무 특성상 제품설명회나 학회, 심포지엄 등에 자주 참석해야 하고, 그때마다 야근이나 휴일 근무가 불가피한 탓이다. 주52시간에 맞추려면 추가 채용이 필요하지만 특성상 내밀한 인맥에 기반한 업무가 많아 단기간에 성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식품업계도 한숨을 쉰다. 계절성 제품이 많아 성수기·비수기 공장 가동률에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한 빙과업체는 아이스크림 성수기에 맞춰 4월부터 2교대로 공장을 24시간 가동 중이다. 7월부터는 3교대로 바꿔야 하나 특히 야간 지원자가 드물어 고심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이나 출시를 앞두고 밤샘 근무가 많은 IT·벤처 기업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주52시간을 지키면서 기한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그밖에 자동차나 조선업계 등도 언제 일이 몰릴지 몰라 고민이 깊어졌다.

주68시간을 일했던 근로자일수록 임금 감소가 불가피한 점도 문제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5~29인 근로자는 월 32만8천 원, 30~299인 근로자는 월 39만1천 원의 임금 감소가 예상된다. 이들은 줄어든 소득을 만회하기 위해 ‘투잡’(two job)을 뛰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5월 중순 각종 지원안을 내놨다. 정해진 날짜보다 6개월 이상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신규 채용까지 할 경우, 300인 이상 기업은 인건비를 1인당 매월 최대 60만 원까지, 그 미만 기업은 100만 원까지 최대 3년 지원해주는 게 골자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22년까지 25만~30만 명의 근로자가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한시적인 데다, 이에 필요한 재원 4천700억 원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충당키로 하면서 기금의 안정성과 고용보험료 인상 등의 논란이 새로 불거졌다.

반면 주52시간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키로 한 탄력근로제 등의 구체적인 지침은 아직도 나오지 않아 불만이 크다. 탄력근로제는 성수기에 근로시간을 늘리고 비수기에 근로시간을 줄여 단위기간의 평균 근로시간을 주52시간에 맞추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본적인 방안보다 편법이나 꼼수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퇴근 후 자택근무를 은연중에 강요하며 초과근무 기록을 안 남기고 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식이다.

회사를 쪼개 근로자 수를 줄임으로써 제도 시행을 늦추거나 해외이전을 꾀하는 곳도 있다. 신규 채용 대신 공장 자동화율을 높이려는 업체도 등장했다.

이와 관련해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회원 1만2천208명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결과에서도 불안한 시각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44.3%는 “주52제 적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한 직장인은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근로시간만 줄이면 수당도 못 받고 몰래 잔업하거나 노동 강도만 높아진다”고 말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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