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붙잡히거나 사살된 남침공비들의 장비들. [사진=유튜브 대한뉴스]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일가족 5명이 무장공비의 손에 희생됐던 것에 대해 북한과 김정은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19일 나왔다.

1968년 11월 20일 고(故) 고원식 씨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첫째 및 둘째 딸이 평창에서 무장공비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됐다. 당시 고씨는 예비군소대장으로 근무 중이라 화를 면했지만,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다 세상을 떠났다.

이에 그의 아들 고모 씨는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이날 춘천지법 강릉지원 오지영 판사가 원고 승소 판결을 냈다.

원고 측은 "이 사건 불법행위는 휴전 상황에서 유지되던 평화와 안녕을 파괴했다"며 "부모의 사망으로 인한 위자료 각 1억5천만원과 배우자와 자녀들의 사망으로 인한 위자료 각 2억원 등 총 9억원을 배상할 책임이 북한에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사건과 직접 관여되진 않았지만, 김일성에게서 상속받은 것이 있으므로 3630여만원을 유가족에게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고인의 위자료 청구 채권을 상속한 원고에게 2억2500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하고, 그중 일부 금액인 4천만원의 배상을 청구했었다. 김정은에겐 909만원 전액을 청구했다.

고씨 측은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에 대해 "일가족이 참혹하고 잔인하게 살해되기까지 느꼈을 정신적·육체적인 고통과 함께 그 시체가 유기되는 과정까지 전체적으로 살펴본다면 고인이 느꼈을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재 일가족들이 그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일실수익(사망에 따른 예상 수입 상실분)을 산정하기는 어렵더라도 배우자가 젊었고 자녀들도 매우 어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고씨 측은 북한에 소장을 보내기 위해 통일부와 이북5도위원회에 접촉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판은 공시송달로 이뤄졌다.

송달 대상자의 주소 또는 근무 장소를 알 수 없는 등의 이유로 관련 서류를 보낼 수 없는 경우 법원에 이를 보관하고, 법원 게시판 등에 그 사유를 공고해 언제든 보낼 준비를 하는 것이 공시송달이다.

재판부는 청구액 전액을 인용했다. 이에 북한과 김정은은 고씨 측에 각각 4000만원과 909만원을 배상해야 한다.

재판부는 이에 더해 1968년 11월 20일부터 지난해 2월 18일까지 연 5%, 지난해 2월 19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것을 판결하기도 했다.

재판에 승소한 고씨 측은 국내 방송·출판사들이 북한 저작물 사용 대가로 북한에 내야 할 저작권료 20억원(법원 공탁)에 대한 강제집행을 시도할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들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상대로 낸 추심금 소송에서 패소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고씨 측은 법리를 더욱 다듬어 추심금 소송을 제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 일가족 희생 사건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는 모양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10일 이에 대한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는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로 인한 민간인 희생 사건 가운데 진실을 규명하려는 첫 시도다.

이와 관련해 법무법인 중심의 류재율 변호사는 "이번 판결과 진실화해위 조사 개시 결정을 계기로 당시 반인륜적인 범죄로 끔찍한 피해를 보고도 국가적 차원에서 아무런 보상이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나 그 유가족들에게 실질적인 최소한의 보상이나 지원이 이뤄지길 희망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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