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문학&영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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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6.02 11:22:14
  • 최종수정 2018.06.0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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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 2009‘
제63회 현충일과 6·25전쟁 68주년을 맞이하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국가유공자의 희생 덕분에 국가와 국민이 존재
나와 내 가족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의 은혜를 모르는 건 사람 아니야
소중한 것을 내팽개치고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운 우상을 찬양하고 있는가
감사할 줄 모르는 국민에게 감사할 일은 찾아오지 않는다
김규나 소설가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며 전략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스트로블 중령은 이라크 전에서 목숨을 잃는 병사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다.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국방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전사자 명단을 열어보며 혹시 아는 사람의 이름은 없는지 확인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병사의 이름 위에 시선이 멈춘다. 다음 날 그는 들어본 적도, 만나본 적도 없지만 자신의 고향과 같은 지역 출신이란 이유로 이라크에서 전사한 열아홉 살 청년, 챈스 펠프스 일병의 시신을 운구하는 임무를 자원한다. 장교가 사병을 운구하는 일은 이례적이지만 시신 안치소에서 유해를 인계 받은 중령은 비행기를 두 번 바꿔 타고 차로 이동하며 긴 여정 끝에 유족을 만난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을 테지만, 챈스의 유해와 그의 유품을 전하며 스트로블 중령은 이렇게 말한다.

"챈스의 모든 여정은 존엄스럽고 엄숙하며 명예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챈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은 여러분만의 것이 아님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미국 전역을 거쳐 여기까지 오는 동안, 챈스의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애도하고 그를 위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영화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 중에서.

2009년에 발표된 이 영화는 마이클 스트로블 해병대 중령의 실제 경험을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 팬이라면 낯이 익을 케빈 베이컨이 중령 역을 맡았다. 젊은 꽃 미남도 아니고, 숨 막힐 것 같은 스릴이나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경건한 태도와 엄숙한 표정과 묵직한 거수경례만으로도 그가 출연한 다른 어떤 작품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다.

챈스의 시신이 담긴 관이 비행기에 실리고 내리고 차에 옮겨 태워질 때마다 스트로블 중령은 진심을 담아 아주 천천히 거수경례를 한다. 유해를 운구하는 며칠 간 그는 임무 중임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비행기에 타서도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잠깐이라도 졸지 않는다. 고인에 대한 예를 다하기 위해 의복과 자세 또한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중령의 고집스럽고 우직한 애도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시간, 절정을 이룬다. 관은 안전할 테니 호텔로 가서 좀 쉬라는 주위의 권유를 마다하고 중령은 격납고에서 챈스가 홀로 버려져 있지 않도록, 그의 유품들을 쓰다듬으며 관 옆에서 밤을 보낸다.

영화 초반, 챈스 일병에 대한 애도는 스트로블 중령의 개인적인 것으로만 보인다. 그가 관에 대고 경례를 하면 아이들은 유리창에 코를 대고 신기한 듯 쳐다본다. 공항 검색대 직원은 가슴에 달린 군복의 훈장 때문에 정확한 검사를 할 수 없으니 상의를 벗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는 중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챈스의 유품이 담긴 주머니를 검색대 엑스레이에 짐짝처럼 통과시키기 싫다며 손에서 놓지 않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그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는 걸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승객들의 시선도 곱지는 않다.

그러나 나라의 부름을 받고 싸우다 전사한 장병에 대한 감사와 애도의 물결은 챈스 유해가 잠시 머무는 곳마다 국민들의 가슴을 일깨워간다. 공항에서 발권해주는 아가씨는 중령의 임무에 경의를 표하며 좌석 표를 1등석으로 바꿔주고, 여승무원은 작은 십자가상을 말없이 건넨다. 중령이 관을 향해 경례를 할 때면 화물 운반자들도, 비행기 승객들도 함께 숙연해진다. 마지막 목적지에 착륙했을 때는 전사한 해병대원을 운구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며 임무를 맡은 중령이 내릴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기장이 승객들에게 직접 당부하기도 한다. 비행기에서 내린 관을 다시 장의차에 옮겨 싣고 챈스의 부모님에게로 달려가는 길, 추월하려던 자동차의 운전자들과 동승한 연인과 아이들은 성조기가 덮인 전사자의 운구 차량인 것을 알아보고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고 손을 흔들어 애도를 전한다. 전조등을 밝히고 비상등을 깜빡이고 앞뒤로 에스코트 하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하지만 감독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는 건, 가족과 평화로운 일상을 살기 위해 행정장교를 선택했던 죄책감에 기인한 중령의 애도나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짧은 조문만은 아니다. 유해가 너무 상한 탓에 관을 열어 확인하는 것이 유족에게 허락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시신 안치소 담당 군인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 전사자들을 대한다. 시신에 남은 상처와 피를 쓰다듬는 눈길과 피 묻은 유품을 닦는 손길, 시신에 입힐 군복의 반듯한 주름 한 줄과 군화와 견장의 정결한 광택, 관을 감싸기 위해 성조기를 손질하는 작은 몸짓에도 전사자에 대한 존중과 감사와 안타까움을 세심하게 담아내고 있다. 미국이란 국가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당신을 결코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남편과 당신의 아버지를 영웅으로 기리고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약속하는 것이다.

모든 전쟁에는 논란의 소지가 남지만 참전했던 용사들의 희생에 대해 왈가왈부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자원이든 징병이든 중요한 건 그들이 그 나라 국민이기에 입대했으며, 그들이 있어서 국가의 정책이 수행될 수 있었고, 그들이 있어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다른 누군가는 그들이 가지지 못했던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이 참전용사의 희생을 국가와 국민 모두가 애도하며 존중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차마 돌아보기가 겁이 난다.

6월 6일 제63회 현충일과 6·25전쟁 68주년 기념일이 다가온다. 자료를 찾아보니 6·25전쟁 당시 군경 합쳐 126만 9,349명이 참전했다. 그중 국군 사망자가 13만 7,899명, 부상자가 45만742명, 포로와 실종자는 3만 2,838명이다. 당신은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부끄럽지 않게 답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7명의 부상자를 낸 제1연평해전(1999.6.15)과 전사 6명, 부상 19명의 희생을 낸 제2연평해전(2002.6.29), 46명의 젊은 장병들의 생명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사건(2010.3.26)과 전사 2명, 부상 16명을 낸 연평도 포격(2010.11.23)을 비롯, 두 젊은이의 다리와 꿈을 앗아간 목함 지뢰 폭발사고(2015.8.4) 등 국군장병들의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자장면이 먹고 싶지 않느냐는 말 뿐, 그들의 희생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은커녕 치료비조차 지원해주지 않는 정부의 대응과 처우를 되짚어보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누가 남자로 태어나래?’
‘남자가 그것도 못 참으면 고추 떼셔야지요.’
‘여친이 불쌍하다. 남친이 괴물 돼서 돌아왔네.’

정부의 외면만이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된 군인 비하 정서는 포격 훈련 중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친 K-9자주포 폭발 사고(2017. 8.18)에 대한 반응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차라리 죽기를 희망한다고 할 정도로 화상으로 고통 받는 부상병들에 대한 국가의 치료비 지원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일부 네트즌의 반응은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자네가 챈스를 집으로 데려왔네. 자네가 챈스의 증인인 거야. 증인마저 없다면 전사자들은 모두 잊혀질 테니까.”

한때 걸프전에 참전했으나 더 이상 전쟁터를 자원하지 않은 것을 자책하는 스트로블 중령에게 챈스의 이웃에 살고 있던 6·25전쟁 참전 노병이 해주는 말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고 부상당한 이들을 기억하는 이가 없다면 그들의 희생은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과 젊음을 바친 이들의 희생은 이미 너무 많이 퇴색해버렸다.

대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남로당이 경찰서를 습격함으로써 야기된 제주 4·3사건을 기리고, 5·18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수학여행 길에 전복된 세월호 침몰 사고를 4년 넘게 추모하고 있다. 또한 실제 역사나 현실 외교 문제는 아랑곳없이 위안부 문제조차 끈질기게 거론하면서도 정작 6·25 참전용사나 베트남 참전용사는 물론 북한이란 존재로 인해 지속적으로 목숨을 잃고 부상당하는 젊은 병사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언론은 날이면 날마다 김일성 3대 세습 독재자들을 찬양하기에 바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앉은 사람은 자국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주적을 최고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떠받들며 국군 의장대 사열을 시키는가 하면, 시시때때로 만나 포옹하고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더구나 인권 사각지대에서 비참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북한 주민의 고통은 외면한 채 수괴의 대변인 노릇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대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과연 존재하고 있긴 한 것인가. 우리 참전용사들은 과거의 참혹한 전쟁에서 어느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리고 싸웠으며, 현재 우리 국군장병들은 누구를 위해 청춘을 바쳐 고된 훈련을 받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은 앞으로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을 위해 싸워야 하는 존재인가.

나와 내 가족과 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용사들을 잊은 국민이 살아갈 땅은 지구 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다시 좌초 위기에 처해 있다. 감사할 줄 모르는 국민에게 감사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좀 엉뚱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얼마 전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 천사가 내려왔다는 소동이 벌어졌다. 젊은 어부가 바다에서 여성상 하나를 건져 올려 집으로 데려갔는데 청년의 어머니가 신비한 일이라며 깨끗한 옷을 입히고 정성스럽게 예를 다했다. 마을 사람들까지 몰려와 천사라고 부르며 그 여성상을 추앙했다. 하지만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경찰이 발견한 것은 참으로 민망하게도 섹스 돌sex doll, 남성용 섹스 대용 인형이었다.

순수에서 비롯된 무지라 해도 세상과 현실을 모르는 건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이다. 더구나 고의적으로 진실을 외면하는 건 죄악이다. 왜 우리는 부끄러운 우상을 숭배하며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일까. 정작 아끼고 소중히 해야 할 것을 내팽개치고 얼마나 엉뚱한 것을 끌어안고, 차마 웃지도 못 할 것들을 향해 두 팔 벌려 찬양하고 있는 것일까.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U!

*‘TMTU. TRUST ME! TRUST 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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