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1사단 장병들이 1950년 11월 M26/46 퍼싱전차와 함께 장진호 일대에서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해 철수하는 모습. [사진=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한국전쟁 장진호 전투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미 의회 연설에서 '기적'이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은 이 전투가 '항미원조 전쟁의 승리'였다고 강변하고 있는데, 특정 사건에서 여러 국가들이 동시에 연관되는 경우가 많을 뿐더러 모두가 예민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에서 자국의 역사관을 타국에 강요하는 태도는 문제가 많단 지적이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역사 발전의 흐름과 반대편에 서서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고,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침략을 확장하면 반드시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며 미국과 한국을 비판했다.

이말인즉슨 한국전쟁에 있어 침략국이 미국과 한국이라는 이야기로밖에 해석될 여지가 없다. 이는 한국전쟁의 원인이 '남침'이기 때문에 전쟁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사학계의 일반적인 시각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마오닝 대변인은 3·8선을 넘어 북진을 시작한 것이 침략행위라고 규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3·8선을 기준으로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는 것은 묵인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밀고 올라온다면 북한에 대한 침략으로 규정하겠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었음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때 대만이 자신들의 영토였다는 이유로 양안 무력통일을 시도하는 중국이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북진통일을 이루려 했던 한미 양국을 비판할 입장이 되냔 지적이 나온다. 승기를 잡은 김에 문제의 근원인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을 일소하고 통일 국가를 다시 이룩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전쟁의 당연한 귀결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념과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역사적 해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중국은 장진호 전투가 오로지 '항미원조 전쟁의 승리'로만 해석될 수 있다고 우기고 있다. 

이는 마치 이토 히로부미가 한반도 병합의 원흉이라고 보는 한국이 그의 초상화를 천엔짜리 지폐에 넣었던 일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한국에게는 이토가 원수이겠지만,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영웅이자 근대화주의자였고 외교적으로도 다방면으로 활약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음을 간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토 히로부미의 초상화가 들어간 일본의 천엔짜리 지폐. [사진=헬로마켓]

 

장진호 전투 역시 북한에게는 구사일생의 기회, 한국에게는 통일의 기회를 놓치게 된 통한의 전투, 미국에게는 굴욕적인 패배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또 중국은 장진호 전투가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사상자 수가 중공군이 월등했고 '미국 제1해병사단의 섬멸'이라는 중공군의 작전목표가 실패했기 때문에 연합군의 전술적 승리·중공군의 전략적 승리라고 복합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 모든 해석이 장진호 전투를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인데도 중국은 자국중심주의적인 해석만을 강요함으로써 역사 연구를 프로파간다이자 공산당의 시녀로 만들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과거 2000년대 초반 동북공정으로 한국의 고대사를 자국의 하위 역사로 포함시키려 했던 중국이 이번에는 현대사에 대한 일방적인 해석을 강요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존엄성마저 침해하려 한다는 비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더해 양안 통일을 추구하는 중국의 야망도 읽힌다. 이미 미국에 맞서 한번 승리를 거둔 바 있기 때문에, 대만 점령 시도를 막는 미국을 격퇴할 수 있으리란 것이다.

이는 중국이 지난해 8월 10일 발간한 대만 백서에서 등장한다. 여기에서 중국은 "중국과 그 인민은 '항미원조 전쟁'에서 굉장한 승리를 거뒀다"며 "우리는 용맹과 끈기로 강력하고 좋은 무장을 갖춘 적을 패퇴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새롭게 건립된 인민공화국의 안보를 지켰고, 세계의 주요 국가로서 중국의 지위를 재확립했으며, 우리의 영웅적 정신,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힘의 남용에 맞서는 우리의 의지를 과시했다"고도 밝혔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장진호 전투를 '항미원조 전쟁의 승리'라고 해석할 것을 종용하는 태도에서 북핵 문제나 남북 통일 문제에 있어 한국에 절대 협조적이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해석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한국주도로 통일할 수도 있었던 기회였을 수 있다는 해석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에 여전히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렇듯 일방적인 공산당 역사관을 들이미는데도 한국의 야권이나 친야 매체에서는 중국에 대한 비판이나 규탄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진정 한국, 한민족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은 누구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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