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회담 때 美 '北核 한국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라' 했다" 발언 이후
작년 6월말 韓美 정상회담 후 공동선언 거론하며 "비핵화 美에 맡긴것" 주장
韓美 공동선언 내 '대북정책에 대한 긴밀한 공조 지속' 불협화음엔 입장 불분명

이낙연 국무총리.(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낙연 국무총리는 "북한 비핵화는 당연히 체제보장과 연계돼 있기에 미국이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핵 폐기' 주장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이유를 가늠할 만한 정황으로 보인다.

이낙연 총리는 29일(현지시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유럽순방 동행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한국 역시 일정한 역할을 해왔고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작년 6월 한미 공동선언을 보면 (미국이)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과정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이라며 "비핵화 부분에서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이어 "(비핵화는 미국이 주도한다는) 기조는 한미 공동선언에 이미 다 합의돼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총리가 언급한 '한미 공동선언'은 지난해 6월30일(미국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갖고 채택한 한·미공동성명(Joint statement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Republic of Korea)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공동성명은 ① 한·미 동맹 강화 ② 대북 정책 관련 긴밀한 공조 지속 ③ 경제성장 촉진을 위한 자유·공정무역 확대 ④ 여타 경제 분야에서의 양자 협력 증진 ⑤글로벌 파트너로서 적극적 협력 ⑥ 동맹의 미래 등 총 6개 분야로 구성돼 있다. A4 용지 5장 분량인 한미공동성명은 45개 문장, 4666자로 돼 있다. 

이 중 '대북 정책에 대한 긴밀한 공조 지속'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주어인 문장이 2번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 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사안을 포함한 문제들에 대한 남북간 대화를 재개하려는 문 대통령의 열망을 지지하였다'고 명시돼 있다.  

'평화통일에 대한 한국 주도', '남북 대화 재개 열망' 등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문 대통령이 당시 회담에서 심혈을 기울여 관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분을 근거로 이 총리는 북한 비핵화 당사자가 미국이라는 주장을 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언문 공동 발표 당시 문 대통령이 직접 "한미 양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저는 북핵문제 해결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관련 정책을 긴밀히 조율해나가기로 했다"며 "북한은 북핵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한미 양국의 확고한 의지를 과소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발언한 바 있다.

북핵을 한미 양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고 규정한 문 대통령과 이 총리의 발언 간 온도차가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북 정책에 대한 긴밀한 공조 지속' 관련, 앞서 언급대로 4·27 남북정상회담 때 한미간 발생한 이음(異音)에 대한 입장 역시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6월30일(미국 현지시간)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미 공동선언 언론 발표를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트위터)
지난해 6월30일(미국 현지시간)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미 공동선언 언론 발표를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트위터)

이 총리는 자신이 앞서 지난 27일(현지시간) 영국 특파원·수행기자단 등 오찬간담회에서 "미국이 남북정상회담 때부터 비핵화 문제에 대해 한국이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발언한 것에 추가 설명을 내놓으면서도 한국의 북한 비핵화 역할론과 연신 선을 그었다.

더블린에서 이 총리는 "판문점회담 때 비핵화 문제는 미국에 그 역할을 맡긴 거고, 그에 앞서 작년 6월 한미 공동선언에 그렇게 돼 있다고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 핵 폐기보다 체제 보장에 더욱 무게를 둔 듯한 발언도 이어갔다.

이 총리는 "미국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해체)를 원하면, 북한으로서는 CVIG(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보장)를 원할 거 아닌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CVIG 합의가 되면 조약형태로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며 "미 국무장관 입에서 나올 정도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에 갈 확률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런 기류는 아직 없다. 미북간 의제가 어디까지 합의됐느냐에 달린 문제인데, 아직은 문 대통령이 갈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북회담 후 남북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는 "남북고위급 회담이 6월 1일 열리는데 고위급회담 결과에 따라 관계 장관끼리 할 수 있고, 포괄적으로 내각이 할 수도 있다"며 "올 가을 평양정상회담이 유효하게 살아있고, 그 전에 정상이 만날 필요가 있다면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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