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일부 노조에 의한 ‘고용세습’ 철폐를 연 이틀째 강조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전세사기와 고용세습을 미래세대를 향한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전세사기와 고용세습을 미래세대를 향한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1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전세사기와 고용세습을 미래세대를 향한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고용세습은 우리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부당한 기득권 세습으로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17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도 “부모 찬스로부터 소외된 청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일명 '현대판 음서제'인 고용세습을 뿌리뽑으라”고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윤 대통령, 문재인 정부가 방치해온 ‘노동귀족의 고용세습’ 뿌리 뽑는 중...기아 노조가 걸림돌

윤 대통령의 발언은 돌발적인 게 아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꾸준하게 추진해온 고용세습 근절대책을 철저하게 마무리하라는 지시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가 방치해온 ‘노동 귀족’에 의한 양질의 일자리 세습 관행을 뿌리까지 제거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그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기아차 노조가 관철시킨 단체협약 26조(우선 및 특별채용) 1항은 “회사는 인력 수급 계획에 의거 신규 채용시 사내 비정규직,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25년 이상)의 자녀에 대하여 채용규정상 적합한 경우 우선 채용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고용세습을 명시하고 있다.

같은 조 2항은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과 6급 이상 장해로 퇴직할 시 해당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하여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 채용하도록 한다”고 돼 있다. 산재 유가족 채용조항이다. 이 조항은 합법이다. 지난 202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민법 제103조가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지 않는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항은 불법이다. 우선 채용 시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취업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토록 한 고용정책기본법 7조에 위배된다. 고용세습 조항은 일반 구직자는 노조원 자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를 무효로 규정한 민법 103조에도 위배된다.

입으로 평등을 외쳐온 민주노총 노조 있는 사업장이 고용세습 단협의 68% 차지

그동안 입으로는 평등을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쳐온 민주노총 노조가 있는 사업장 상당수는 노조원 자녀의 고용세습을 명시한 단체협약을 유지해왔다. 고용부가 지난해 8월 100인 이상 사업장의 단체협약 1057개를 조사한 결과, 63개에서 법령을 위반한 우선·특별 채용 조항이 적발됐다. 63개 기업 중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 68.3%인 43개에 달했다.

이에 앞서 고용부가 지난 2016년에도 2769개 단협을 조사해서 노조 추천자 채용 등 고용세습이 담긴 단협 694(25.1%)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근절되지는 않았다.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정부가 고용세습을 명시한 단협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려도 ‘노조탄압’이라고 우기면서 거부할 수 있다. 거부해도 현행법상 고용세습을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500만원 벌금을 매기는 게 가장 강도 높은 처벌이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 때문인지 공교롭게도 강성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지부만 정부의 고용세습 조항 시정명령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적발한 63개 고용세습 조항 위반 단협 중 시정 가능한 60개에 대해 시정노력을 지속해왔다. 문제가 된 사업장 중 54곳은 시정명령 절차 이전에 단협을 수정했다. 동원금속, 한국철강 등은 자율개선을 했다. 코카콜라, LG유플러스, 효성중공업 등은 시정명령을 이행했다. 동국산업, 현대성우 등 5개 회사에 대해서는 시정명령 절차가 진행중이라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기아 노조, 고용세습 유지하고 500만원 이하 벌금 내면 ‘수지맞는 장사’...평균 연봉은 1억 1200만원에 달해

하지만 기아는 시정명령을 거부했다는 게 고용부의 판단이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양지청은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위원장, 기아와 기아 대표이사 등을 시정명령 불이행에 따른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최근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금속노조 기아지부 등 입건 대상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고용세습을 이유로 기업이나 노조 관계자가 처음으로 사법처리되는 것이다.

1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부 안양지청은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위원장, 기아와 기아 대표이사 등을 시정명령 불이행에 따른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최근 입건했다.[사진=연합뉴스]
1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부 안양지청은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위원장, 기아와 기아 대표이사 등을 시정명령 불이행에 따른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최근 입건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 혐의가 인정된다고 해도 최대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기아의 평균연봉을 계산해보면 500만원은 껌값에 불과하다. 2022년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기아 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 1200만원에 달한다. 정규직 근로자 수만 3만 4260명이다.

신입사원 초봉도 5000만원~6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산직의 경우 고졸 이상이면 학력차별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청년층에서는 기아차가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다. 2021년 생산직 138명을 뽑았는데, 4만94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3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인 것이다.

벌금 500만원을 내고 무수한 기아차 직원들이 자녀에게 고용세습을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수지맞는 장사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처럼 수지맞는 장사가 지속되려면 기아차 직원의 자녀라는 특권층 신분을 갖지 못한 대다수 청년들의 불이익과 희생이 지속돼야 하는 것이다.

금속노조와 기아지부 “최소한 1년 이상 고용세습 조항 유지하겠다”는 태도 보여

금속노조에 따르면, 금속노조는 지난 1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산하 노조가 사측과 체결한 단협 중 산재 유가족 채용 이외의 장기근속자·정년 퇴직자 가족 우선 채용 조항을 수정하는 방침을 의결했다. 기아는 올해 임금협상만 진행할 예정이므로, 단협이 예정된 내년에 고용세습 조항을 수정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결국 기아가 올해에는 단협이 아니라 임협만 할 예정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고용세습 조항을 자연스럽게 최소한 1년 이상 유지하겠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금속노조 기아 지부는 “단체협약 일정에 맞춰 수정할 계획이었는데 정부가 무리하게 사법절차를 밟고 있다”는 취지로 반발을 하고 있다. 단협에 고용세습 조항을 유지하려는 것은 범죄행위임을 지적받고도 유지하겠다는 태도이다.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이 인사청탁만 해도 형사처벌을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대이지만,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지부는 그야말로 치외법권 지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고용세습 근절하려면 공정채용법 국회 통과돼야...민주당 협조는 미지수

고용세습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공정채용법'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협조하지 않고 있어 입법 전망이 불투명하다.

윤석열 정부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인 노동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민의힘 '노동개혁 특별위원회'가 다음주 공식 출범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노동개혁 특별위원회는 윤재옥 원내대표가 취임 이후 구성한 '1호 특위'로, 위원장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한국노총 출신 노동전문가 임이자 의원이 맡는다. 사진은 윤 원내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인 노동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민의힘 '노동개혁 특별위원회'가 다음주 공식 출범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노동개혁 특별위원회는 윤재옥 원내대표가 취임 이후 구성한 '1호 특위'로, 위원장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한국노총 출신 노동전문가 임이자 의원이 맡는다. 사진은 윤 원내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현실적으로 공정채용법은 기아 노조를 겨냥한 입법이 돼버렸다. 고용세습 조항이 문제가 된 다른 기업들은 자율개선을 했거나 시정명령을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아만이 여론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의 고용세습 단협 시정명령을 거부하는 뻔뻔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용세습이라는 범죄행위를 근절시키려는 윤 대통령의 정책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민주당이 국회 입법 과정에서 협조해줄지는 미지수인 것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