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사진=연합뉴스]

한화 김승연 회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롱런’하고 있는 오너경영인이다.

1981년 한화 창업주인 선친 김종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29세에 한화그룹을 물려 받은 뒤, 올해로 43년째 경영을 이끌고 있다. 한국 재계 역사상 4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룹 회장을 맡아 대기업을 경영한 인물은 없었다.

한화그룹은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 발표기준, 자산규모 80조원, 계열사가 91개에 달하는 재계순위 7위의 대기업이다.

오늘날 한화그룹은 전자분야를 빼고는 하지 않는 사업이 없다. 가업(家業)인 방위산업부터 문재인 정권 때 집중한 태양광 사업, 화학 금융 건설 유통 서비스·레저 등 전 산업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1981년 김승연 회장이 경영에 뛰어 들었을 때 한화그룹은 자산규모 7000억 원, 매출 1조 원 남짓했고, 임직원 수 도 1만여명의 ‘단촐한’ 회사였다. 2022년 한화그룹 매출은 61조원으로, 김승연 회장은 지난 43년간 한화그룹의 사이즈를 60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현재 추진중인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이 이루어질 경우 한화그룹은 단숨에 포스코를 제치고 재계 6위의 기업집단으로 도약하게 된다. 5위 롯데그룹과의 자산규모 차이가 크지 않은데다, 조선과 방산부문 등의 매출이 급중하는 추세여서 몇 년내에는 롯데그룹을 제칠 가능성도 높다.

이제 대한민국 재계에서 한화그룹 앞에 있는 기업은 삼성과 SK, 현대차, LG밖에 남지않은 것이다.

김승연 회장은 2020년 10월, 한화그룹 창립 70주년 기념사를 통해 ‘100년 기업’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김 회장은 당시 임직원들에게 "한화의 지난 70년은 끊임없는 도전과 개척으로 대한민국 산업 지형을 확대해온 역사"라고 평가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하고 함께 도전하고 성장해 100년 기업을 일궈내자”고 당부했다.

하지만 최근 김승연 회장이 제시한 이같은 ‘100년기업의 꿈’을 둘러싸고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바로 대우조선해양 합병을 둘러싸고 벌어진 공정거래위원회와의 갈등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역대 정권이 재벌그룹을 통제하고 길들여온 ‘칼’이자 ‘저승사자’ 역할을 해왔다. 이런 공정위를 상대로 한화그룹이 최근 대우조선해양 합병을 둘러싸고 진실공방을 벌이는 등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당초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합병문제는 가장 까다롭게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EU까지 승인결정을 내림으로써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쉽사리 승인결정을 내려주지 않음으로써 제동이 걸렸다.

공정위는 이처럼 쉽사리 승인결정을 내리지 않는 표면적인 이유로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계, 즉 이해관계자 의견 조회 과정에서 정보 접근 차별 등의 우려를 내세우고 있다. 함정 부품 시장(상방)에서 독점적 지위를 지닌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해 방위산업 수직계열화를 이룰 경우 공정한 경쟁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일 공정위는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합병승인에 대해 "독과점 해소방안을 두고 한화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대해 한화그룹은 "공정위로부터 (시정방안을) 제안 받은 적도 없고 협의하고 있는 것도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들은 공정위의 행태와 결정에 불만이 있더라도 "공정거래위원회 결정은 존중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는 정도가 통상적인 반응이었다. 공정위와의 관계를 악화시켜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 세 아들로의 승계절차가 한창 진행중이어서 그 어느기업보다 공정위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다.

한화그룹이 이처럼 공정위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는 배경을 두고 재계에서는 문재인 정권 때 한화와 공정위간에 형성됐던 ‘특수관계’의 여파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2019년 9월, 코드인사 차원에서 진보성향이 강한 조성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에 발탁했다. 조 위원장은 ‘김상조 아바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전임자였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처럼 대기업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조 전 위원장은 2013년부터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을 맡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징계 여부를 정할 때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조성욱 위원장은 2010년 3월부터 2013년 4월까지 3년1개월 동안 한화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월 400만원씩 1억4800만원의 급여와 2300만원의 교통비를 합해 모두 1억7100만원을 수령한 사실이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확인됐다. 조 위원장은 또 한화그룹 사외이사 재직 기간 동안 김승연 회장이 계열사로부터 보너스 330억 원을 받는 사안에 찬성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후 재계 안팎에서는 한화그룹이 문재인 정권에서 3세승계에 속도를 내는 것을 두고 조성욱 위원장의 존재와 연결해서 해석하는 시각이 많아졌다. 실제로 조성욱 위원장 재직동안 문재인정권은 한화케미칼과 (주)한익스프레스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부당지원,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씨에 대한 한화S&C 주식 매각과정의 배임 의혹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바 있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해양 합병에 대한 최근 공정위의 까탈스러운 태도는 문재인 정권 당시 조성욱 위원장 시절 한화에 대한 미온적 대응에 불만이 많았던 공정위 관계자들의 감정이 뒤즞게 표출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욱 전 위원장의 후임으로 작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한기정 현 공정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 법대 후배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윤 대통령의 검찰인맥과 인연을 맺었으며, 윤 대통령이 가장 아겼던 검찰후배인 이복현 금웅감독원장과 함께 재계 및 금융권을 감독, 규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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