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현지시간) OPEC+(오펙 플러스) 소속 주요 산유국들이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추가 감산을 예고함에 따라 유가는 하루만에 6% 급등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가 지난해 10월, 하루 원유 생산량을 단계적으로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한 데 이은 두 번째 감산 조치이다.

지난 2일(현지시간) OPEC+(오펙 플러스) 소속 주요 산유국들이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추가 감산을 예고했다. [사진=KBS 캡처]
지난 2일(현지시간) OPEC+(오펙 플러스) 소속 주요 산유국들이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추가 감산을 예고했다. [사진=KBS 캡처]

이번 자발적 감소분을 포함해 하루 316만 배럴이 감소할 경우, 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정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바이든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우리 경제에도 꽤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 민족주의적 에너지 정책 추진...바이든 대통령은 굴욕 당해

특히 부동산 시장에 강력한 악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국내 기준금리 상단이 4%까지 올라설 가능성이 점쳐지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은 부동산 수요 감소로 이어지다 보니, 부동산 가격이 조정받을 여지가 농후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규제 완화 정책으로 반짝 회복세를 보이던 부동산 2차 하락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OPEC+의 깜짝 감산 조치 이후 유가는 하루 만에 상승폭을 줄였지만, 시장에서는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지 시각 4일 뉴욕 상업거래소에서 다음달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은 0.36% 오른 1배럴에 80달러 71센트로 거래를 마쳤다.

이번 OPEC+의 깜짝 감산 결정은 사우디아라비아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사우디는 이번에 감산하는 하루 116만 배럴의 절반에 달하는 50만 배럴을 줄이며 감산에 앞장섰다.

이번 OPEC+의 깜짝 감산 결정은 사우디아라비아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KBS 캡처]
이번 OPEC+의 깜짝 감산 결정은 사우디아라비아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KBS 캡처]

빈 살만 왕세자는 폐쇄된 사우디를 개방해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고 관광과 엔터테인먼트 허브 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행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유가 전략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감산 결정과 관련해 “빈 살만 왕세자가 자신의 왕국을 첨단으로 개조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을 제쳐두고 민족주의적 에너지 정책을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사우디 정부 관리들은 네옴시티 등을 포함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고유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약 45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가진 데다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사우디이지만, 유가가 배럴 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지게 되면 막대한 개발 계획이 위태로워질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감산 결정에 대한 비판을 자제...빈 살만의 친 중국 행보를 의식한 듯

이같은 빌 살만 왕세자의 ‘사우디 퍼스트’ 정책은 미국의 입장과는 정확하게 배치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찾아가 빈 살만에게 원유 증산을 요청했지만 사우디는 바이든의 요청을 노골적으로 묵살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찾아가 빈 살만에게 원유 증산을 요청했다. [사진=연합뉴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찾아가 빈 살만에게 원유 증산을 요청했다. [사진=연합뉴스]

과거 미국의 안보 파트너였던 사우디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가하는 것을 두고 미국과 반목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 유가상한제를 통해 러시아의 돈줄을 막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우디를 포함한 OPEC+는 원유 감산을 통해 유가를 끌어올리며 미국에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미국은 사우디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비판의 수위를 조절해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의 대(對)사우디 정책이 바뀐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과거 사우디가 원유 감산 결정을 했을 때 보복을 시사한 것과는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OPEC+의 깜짝 감산 조치가 발표된 이후 3일(현지시간)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브리핑에서 "우리는 시장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현 시점에서 (OPEC+의) 감산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를 분명히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했던 것처럼 미국 소비자들을 위해 유가를 낮추고 수요 공급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커비 조정관의 브리핑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사우디아리비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커비 조정관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사우디아라비아가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미국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모든 행동에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전략적 파트너라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OPEC+의 감축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적 역할을 했지만, 온건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같은 발언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OPEC+의 감산 결정 때 "근시안적"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를 규탄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당시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를 재평가하면서 체계적으로 대응하겠다"며 '보복'을 시사했다.

OPEC+의 추가 감산 조치가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로 이루어짐에 따라, 미국과 사우디의 긴장은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OPEC+의 추가 감산 조치가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로 이루어짐에 따라, 미국과 사우디의 긴장은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사우디와 중국은 ‘위안화 결제’ 합의, ‘페트로 달러 체제’에 도전장 던져

따라서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친중국 행보를 고려해 비판 수위를 조절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는 등 중동에서의 입지를 넓히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상하이협력기구(SCO) 참여를 발표하는 등 양국은 접점을 늘리고 있다.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OPEC+의 감산 결정에도 중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이 중동 국가들과 위안화 결제 비중을 늘려가며 원유 구매 비용을 달러로만 지불하는 ‘페트로 달러’ 체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중국 정유회사인 룽성석유화학의 지분 10%를 사들이며 위안화 결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중국해양석유총공사가 아랍에미리트(UAE)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며 위안화로 결제했다.

러시아 외환시장에서 위안화 거래량 1위로 부상...브라질도 ‘위안화 결제’ 도입

중동뿐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브릭스 국가를 중심으로 위안화 결제가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전해지고 있다. OPEC+의 감산과 동시에 위안화 결제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특히 위안화는 러시아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제치고 거래량 1위로 급부상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째로 접어들면서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가 확대된 데 따른 여파로 분석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만 해도 러시아 외환시장에서 위안화의 거래량은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또한 남미 최대 경제 대국인 브라질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위안화를 결제 통화로 선택했다는 사실도 최근 알려졌다. 브라질 수출투자진흥공사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양국이 헤알화와 위안화를 주고받으며 대규모 무역 및 금융 거래를 직접 수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양국간 거래에서 브라질 업체들은 달러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대신, 중국에서 만든 '국경간 위안화 지급 시스템(CIPS)'을 이용하게 된다.

이처럼 중남미와 중동, 러시아를 중심으로 중국의 위안화로 무역 대금을 결제하는 비중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대중 견제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또한 '달러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며 반격에 나선 것이다.

시진핑 주석, 원유 등의 위안화 결제 추진 선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서 "원유와 천연가스의 위안화 결제를 추진해야 한다"며 페트로 달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금까지는 일부 사례에 그치고 있지만, 지난 1987년부터 확고하게 정착되며 어떤 나라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페트로 달러 체제에 균열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제 결제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하다. 지난 2월 기준 SWIFT 집계에 따르면 달러의 글로벌 결제 통화 비중은 41.1%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위안화 비중은 2.19%에 불과했다.

실제로 중국해양석유총공사가 아랍에미리트(UAE)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며 위안화로 결제한 분량은 선박 1척분인 6만5천톤에 그친다. 하지만 '원유 위안화 결제'를 다지는 첫거래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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