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가 소속 공무원들에 보낸 산불진압 관련 문자. 오직 여직원만 귀가하라는 내용이 들어가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지난 2일 발생한 대전 산불 관련해 인터넷에서는 또다른 불길이 번지고 있다. 산불 진압을 위해 동원된 대전시 공무원들에게 발송된 문자 중 '여직원만 귀가하라'거나 '남직원만 새벽 6시까지 산불 비상 근무에 참여하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산불 진화에 남직원·여직원이 어딨냐. 오직 '직원'만 있을 뿐"이라며 대전시의 남녀차별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3일 새벽부터 인터넷에는 '산불현장에 비상대기중인 여직원 및 집결중인 여직원은 귀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란 내용의 단체문자가 대전시 공무원들에게 발송됐단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3일 업무안내 문자 중엔 "내일 산불비상 근무-본청의 남자 직원 동편 주차장, 06시까지 버스에 탑승 바람"이란 내용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무원 갤러리 '블라인드'에서도 "같은 직원이지만 '남'직원만 찾는다"며 "숙직도 남자만 하고, 산불근무도 남자만 한다. '걸스 캔 두 애니띵(Girls can do anything, '여성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페미니즘 구호)' 어디갔냐" "어디 뉴스 같은 데에 제보 좀 해달라. 윗대가리들 정신차리게" 등의 하소연이 올라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소식이 확산되면서 네티즌들은 '이게 말이 되냐'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즉 산불 진화에 '직원'만 있을 뿐이지, 남녀 공무원 구분이 어딨냐는 것이다. 

2일 밤에 소속 공무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짐작되는 대전시의 추가 문자.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이 문자를 발송한 대전시 관계자는 모 언론에 "남녀 구분없이 산불현장이 급격한 경사와 함께 위험한 지역이라, 신체적으로 체력 소모 등 위험을 줄이기 위해 고려했다"면서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하는 작업이고 필요한 인원도 전직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현장에 투입 가능한 인원들을 뽑다보니 상식적으로 결정된 일"이라 해명했지만, 해명이 오히려 불난 여론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네티즌들은 "대전시가 대놓고 남녀차별하는데 여성부는 뭐하냐"며 "여성 공무원은 아예 필요없는 존재임을 대놓고 드러냈는데 왜 얌전히 있냐"고 비판 겸 조롱하고 있다. 또 "대전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여성 공무원은 현장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인데 도움 안되는 여직원을 왜 뽑은 것이냐"며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납득이 되지 않는 해명"이란 평가도 나오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페미니즘'이 한국인의 정신세계로 부지불식간에 스며든 결과 이러한 성별 임무구분이 자연스럽게 인식되기 시작했다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여성도 남성이 하는 일을 못할 것 없다는 구호를 내세웠던 페미니즘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게 된 결과가 오히려 '여성은 노동 업무를 못한다'란 인식이 퍼진 게 모순이란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데엔 소위 '스윗 세대'로 불리는 4050 공무원 상급자들이 문제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가 아닌 '연약한 존재' '보호해야 할 존재'로 보는 기성세대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네티즌은 "여성들만 욕할 게 아니라 '스윗'한 4050 윗세대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면서 "2030은 명심해야 한다. 그들의 정적은 '4050 아재들'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으로 '젠더갈등'이 첨예화된 한국사회의 단면을 다시 한번 확인 가능하단 평가가 나온다. 젠더갈등을 겪은 한국 남성들은 자신들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을 받은 적이 없었는가를 적극 반추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여성이 불평등한 사회에 살았다면 남성도 불평등한 사회에 살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남성들은 단지 생물학적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보다 더 과중한 신체적 업무를 짊어지거나 추가 업무에 동원되는 것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 남성들은 사회의 균형추가 여성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보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12월 1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농협 야간 당직 근무 관련해 남직원만 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 남성 네티즌들은 "남성만 야간당직을 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등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 여성이 '성역할에서의 해방'을 선언하자 남성들 또한 '남성의 의무에서 해방'을 외쳐야 한단 인식에 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여직원만 귀가하라'는 문자가 서울시에서 발송한 것이란 잘못된 소문이 인터넷 상에 퍼지기도 했으나, 대전시에서 발송한 것으로 최종 확인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최신 글을 접하지 않은 일부 네티즌들은 여전히 서울시의 문자로 오인하고 있어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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