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최진희가 김정은 앞에서 남의 노래, ‘뒤늦은 후회’를 불렀던 이유

북한은 김정은 체제 유지를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는 등 서방세계 문화, 특히 남한문화 유입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정작 북한에서 남한 문화를 가장 즐기는 사람은 김정은 위원장과 아버지 김정일 등 이른바 백두혈통과 극소수 지배층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조치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한편 지속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984년 발표된 가수 최진희의 노래 ‘사랑의 미로’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에 중국 연변을 통해 이 노래가 북한에 유입되자 김정일은 물론 대중들에게 급속히 확산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렀다. 결국 북한당국은 멜로디는 그냥두고 가사만 “백두에 오르니 장군님 모습이...”라는 내용의 선전가요로 바꾸는 조치를 취했다.

최진희가 문재인 정권 때인 2018년 3월, 내번째 평양공연을 위해 방북했을 때, 그는 자신이 무대에서 부를 두곡 중 한곡은 당연히 ‘사랑의 미로’를 선택했는데 다른 한곡은 정부 당국자로부터 뜻밖의 노래를 “반드시 불러야 한다”며 강요당했다.

이에따라 최진희씨가 평양에서 부른 노래는 요절한 ‘천재가수’ 장덕이 1985년 발표한 노래 ‘뒤늦은 후회’였다. 최진희는 자신의 다른 인기곡도 많은데 왜 남한 당국이 이 노래를 강요했는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까지도 몰랐다고 한다.

최씨가 “아 그렇구나” 라고 이유를 깨닳은 것은 공연이 끝나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남측 예술단을 격려할 때 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진희와 악수를 하면서 “뒤늦은 후회 정말 잘들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뒤늦은 후회’는 김정일이 생전 아내이자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영희와 함께 즐겨 듣고 부르던 ‘최애곡’이었다.

최진희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 평양의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은 단 한명도 빠지지 않고 길고 큰 박수를 보냈다. 조용필 이선희도 같은 가수도 무대에 섰지만 북한 주민들이 노래를 부르기 전부터 열렬한 박수를 친 것은 최진희가 유일했다.

당시 공연을 연출하기 위해 북한에 다녀왔던 남한의 방송국 관계자들은 최진희가 ‘사랑의 미로’를 부르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관객들 거의가 북한의 최고위층, 즉 상류층으로 부부동반으로 왔는데, 원래 북한의 공연문화가 젊잖은 편이기도 하지만, 북한의 지도층들이 남한 가수 노래에 열렬히 반응할 수는 없으니까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최진희가 특유의 감성적인 목소리와 창법으로 그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사랑의 미로 첫 소절을 시작하니까 관객들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참을 수가 없으니까...큰 움직임은 못하고, 어깨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사람, 괜히 자세를 고쳐않는 사람, 멍한 표정이면서도 입이 벌이지며 신음소리를 내는 사람 등등...”

‘사랑의 미로’를 끝내자 1분이 넘도록 극장이 떠나갈 정도로 큰 박수를 나왔다. 최진희는 다음 곡인 ‘뒤늦은 후회’를 부르기 전 공연소감과 평양시민들에 대한 인사를 하는 동안 세차례의 박수를 더 받았다.

2019년 방송된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암암리에 USB나 DVD를 구해서 돌려볼 정도로 남한 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공전의 인기를 누렸다. 남한의 미혼 재벌여성(손예진)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돌풍을 만나 북한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만난 북한군인(현빈)과의 사랑, 주민들과의 에피스드를 다뤘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한의 한 여학생이 남한 말을 잘하는 손예진에게 “언니는 어떻게 서울말을 그렇게 잘합니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방탄소년단 최애는 정국인데, 언니는 누굽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이 드라마가 들어오기전부터 북한의 젊은층에서는 서울말투 뿐 아니라 용어까지 따라하는 유행이 일었는데 사랑의불시착이 들어온 뒤에는 더욱 급속히 확산됐다고 한다.

북한이 지난해 8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기에 이른 가장 큰 원인중 하나가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최근 전문이 공개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소위 ‘반동문화’를 유포한 자는 최대 사형, 이용자는 최대 15년형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남한의 연쇄살인범과 같은 수준의 처벌을 규정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인류역사상 그 어떤 전제, 독재정권도 대중문화와 종교의 유입과 확산은 막을 수 없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등소평은 시장경제로의 개혁에 따른 자본주의 문화의 유입을 “ 더워서 창문을 열면 모기가 들어올 수 밖에 없듯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이 한미한동 군사훈련 보다 휴전선 일대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그토록 넌저리를 쳤던 것도 남한문화 유입 때문이었다.

정작 김정일과 김정은 자신은 주민들 몰래 남한노래를 즐기면서 반동문화 유포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21세기 백주대낮의 이같은 반문명적 행위가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일과 고영희 김정은 본인들은 아마도 ‘사랑의미로’를 “백두에 오르니 장군님...” 어쩌고 저쩌고 하는 혁명가요 버전이 아니라 “그토록 다짐을 하건만 사랑은 알 수 없어요”라고 남한말로 불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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