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전투기 SU-27이 비행하고 있는 모습. 지난 14일(현지시각) 오전 크림반도 인근에서 미국 정찰 드론과 충돌한 러시아 전투기와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14일(현지시각) 러시아의 전투기 2대가 흑해 상공에서 미국의 정찰 드론과 충돌해 더 이상 비행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펜타곤이 이날 밝혔다. 미·러 양군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군사적 대치를 벌인 첫 사례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날 전했다.

특히 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전하거나 이들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사건을 피하려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미·러가 분쟁지대 주변 지척에서 각자 군사 작전을 벌이고 있단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평가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300억달러(한화 39조 이상) 이상의 지원을 퍼붓고 있지만 러시아와의 갈등은 피하길 원한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이날의 사건이 잠재적인 '의도치 않은 갈등 확대'를 피하면서 전쟁을 지원하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준다고 월스리트저널은 지적했다.

미 국방부가 밝힌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화요일 오전 러시아의 SU-27기 두대와 루마니아에서 이륙한 미국의 MQ-9 감시 드론이 서로를 가까이에 두고 국제공역에서 약 30분 가량 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전 7시 경 수초만에 러시아 전투기 1대가 감시 드론을 갑작스럽게 앞서 나가 연료를 뿌린 후 떠났다. 그후 다른 전투기 역시 연료를 뿌리려 했지만, 대신 드론과 충돌했다. 이로 인해 MQ-9에서 일부 파편이 떨어져 나갔고 드론 조종사는 해상으로 불시착하게끔 조종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존 커비 국가안보회의 전략 커뮤니케이션 조정관은 "흑해 상공에서 미군 드론이 격추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한 상황이다. 미국 측의 충격이 작지 않을 것임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드론의 잔해를 아직까지 수거하지 않았으며, 국방부 관계자는 수거 작업에 대해 논하길 거부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밝혔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이 흑해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길이 막힌 상황이기 때문일 수 있단 지적이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튀르키예가 타국 전함의 흑해 진입을 막고 있기 때문에 미군은 전함 단 한척도 흑해에 전개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 펜타곤 관계자는 이 사건을 "유치하다"고 평가하면서도 러시아 조종사의 돌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충돌 과정이 드론에 달린 비디오에 녹화돼 있어 기밀문서에서 제외시키는 절차를 밟은 후 대중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흑해 지역에서 미군 작전을 담당하는 미 유럽사령부도 "이번 사건은 불안전성과 비전문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러 조종사의) 능숙함 결여도 보여준다"는 입장을 냈다.

미 국무부는 주미 러시아대사 아나톨리 안토노프를 초치해 "안전하지 않고 비전문적인 방해"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했고, 주러 미국대사 역시 러시아 외무장관에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이 사건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백악관이 전했다.

반면 러시아는 드론 사고가 미국의 도발(provocation)로 생각하고 있다고 안토노프 주미대사가 말했다고 러시아 국영뉴스가 전했다. 안토노프 주미대사는 또 미국 측이 이 사고에 대한 우려를 전하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제기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미국과 대립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면서, 미국과의 대화가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안토노프 주미대사는 "양국이 의도치 않은 충돌 혹은 의도치 않은 사고에 직면할 수 있는 곳에서 위기 상황을 만들길 원치 않는다"고 CNN과의 인터뷰에서 말했으며, 미국도 이 사고에 대한 우려를 전하면서도 양측이 "서로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그러면서도 미군의 설명을 반박하는 모양새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정찰 드론이 응답기를 끈 채로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 반도 상공을 날며 자국 전투기를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 국방부는 자국 전투기가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전투기들이 드론과 접촉했단 의혹을 부인했으며, 미국 드론이 예리한 기동의 결과 통제되지 않는 비행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충돌은 크림반도 남동쪽 해상 50마일(약 80.46km)에서 일어났고 드론은 그 지점에서 남동쪽으로 10마일(약 16km) 떨어진 지점에 착륙했다. 미국은 이를 근거로 MQ-9기가 크림반도 상공이 아닌 국제공역을 날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정찰 드론 MQ-9기. [사진=연합뉴스]

 

MQ-9기는 정보·감시·정찰에 특화된 고급 드론으로, 무장 및 비무장 모델이 모두 존재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밝혔다. 대개 2명의 조종사가 원격 조종하는데, 비행거리는 1200마일(약 1931km), 비행고도는 5만 피트(1만5240m)에 달한다. 이 드론은 다양한 고급 센서를 탑재하고 있고, 고급 센서·지상 통제·위성 시스템을 갖춘 4대의 드론 편대는 약 7800만달러(한화 약 1017억50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이 이번 사건을 더 크게 부풀리지 않으면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는 만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언제든 다시 이러한 우발적 사고가 날 수 있단 가능성이 이번에 확인됐단 점만은 분명하단 평가다. 미국과의 확전을 원치 않는 러시아, 중국 견제를 위해 안보의 축을 태평양으로 옮기고 있는 미국, 양국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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