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도, 文대통령도 모두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갑작스런 회담
南北 어느 쪽에서 먼저 제안했는지 알려지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26일 오후 극비리에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날 회담은 준비부터 성사까지 12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이 먼저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는지 김정은이 먼저 제안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만큼 남북한 모두에게 상황은 급박하고 절박했다.

2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서한을 통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던 미북 회담의 취소를 알렸다. 그동안 미북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왔던 한국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상 ‘해고당한 것’같은 난처한 상황에 몰렸다.

지난 3월 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등에게 백악관 기자들 앞에서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했다는 사실과 트럼프 대통령이 5월까지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한 사실을 직접 설명하도록 했다. 한국에 정식으로 중개인 역할을 맡긴 셈이다.

그러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요구하는 북한과 ‘리비아식’으로 표현되는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을 주장하는 미국의 갈등은 한국의 ‘중개자’ 역할에도 불구하고 점점 심화됐다. 북한은 미국인 억류자 3명을 석방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은 했으나 김계관 제1부상과 최선희 등을 통해 미국을 향한 강도 높은 비난·협박을 쏟아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22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미북회담 개최를 설득했다. 그러나 미북회담 취소 직전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은 ‘외교적 재앙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기자들과의 문답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 김정은의 두 번째 만남에 대해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지금 말해도 좋다”고 공개적으로 질문했다. 문 대통령과 한국 JTBC 기자의 마지막 한국어 문답은 아예 영어 통역을 듣지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에 들은 말일 거 같으니 (문 대통령의 말을) 통역으로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뒤 웃었고 사실상 기자회견은 끝이 났다. 한미정상의 독대는 단 20분 정도 지속됐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청와대는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앞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미북 정상회담은) 99.9% 열린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미북 회담의 결렬을 직접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보낸 서한에서 “매우 슬프게도 당신(김정은)은 공개적으로 적대적인 태도와 분노를 표출했다”며 “미북 정상회담을 지금 개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회담하겠다”고 한 지 정확히 2주일 만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문재인 정부의 '주가'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봄이 온다’며 확신에 찬 어조로 국민들에게 설명했던 남북관계의 진전과 미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그리고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은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편지 한 장으로 ‘헛소리’가 됐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25일 “옥류관 평양냉면에 취해서 물고기를 다 잡은 양 호들갑 떨던 문재인 정부의 나이브(순진)한 현실을 지적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김정은을 대신해 미국을 설득했던 문재인 정부의 소위 ‘중재자론’이 일정 부분 파산을 맞게 됐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상까지 들먹이며 구름 위를 걷던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중재외교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라는 것을 정확하게 깨닫기 바란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은 북미정상회담이 돌연 취소된데 대해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의 전면 교체를 요구했다.

한편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통보가 전해지자 즉시 자세를 낮췄다. 며칠 전 회담 취소 가능성을 거론했던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25일 다시 담화를 내고 "(트럼프가)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 상봉을 위해 노력한 데 내심 높이 평가해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또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고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 "지금 북한과 대화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6월 12일 (예정대로)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며 미북 회담 가능성을 시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은 26일 정상회담에서 미북 회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4일 미북 회담 취소 선언을 한 뒤 정상간 직접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25일 새벽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들과의 긴급회의 후 “문제 해결을 위한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며 “(미북)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우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미국 정부 내 외교안보 의사결정의 중요 위치에 있는 인사들의 성향과 내부 권력구도에 대해 설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조선일보는 26일 보도했다.

다음날 오전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결과 발표에서도 미북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된 내용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윤영찬 수석은 “양측 합의에 따라 회담 결과는 27일 오전 10시 문 대통령이 직접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미북정상회담과 관련 주요 일지(현지시간 기준)

▲ 2월 25일 =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차 방남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문재인 대통령과의 접견에서 '북미대화'에 긍정적인 입장 표명.

▲ 3월 8일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서훈 국정원장,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 접견…김 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 전달. 이후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5월 중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발표.

▲ 3월 25∼28일 = 김 위원장, 첫 중국 방문. 베이징(北京)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회담.

▲ 3월 31일∼ 4월 1일 =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방북해 김 위원장과 면담. 북미정상회담 앞두고 비핵화 등 사전 조율.

▲ 4월 9일 = 트럼프 대통령, 각료회의에서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과 "5월 또는 6월 초 만날 것"이라며 개최 시점 공개적으로 첫 표명.

▲ 4월 27일 = 문 대통령·김 위원장,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

▲ 5월 7∼8일 = 김 위원장, 2차 중국 방문해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서 시 주석과 회동.

▲ 5월 9일 = 폼페이오 장관 2차 방북. 김 위원장과 만나 비핵화 등 추가 논의.

▲ 5월 10일 = 북한에 억류됐다가 석방된 미국인 3명,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귀국. 트럼프 대통령,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석방자들 맞이.

▲ 5월 10일 = 트럼프 대통령, 북미정상회담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기로 했다고 트위터 통해 발표.

▲ 5월 12일 = 북한, 23∼25일 사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행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

▲ 5월 16일 = 북한, 한미 공군의 연례적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를 문제 삼아 당일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고위급 회담을 '무기 연기'한다고 통보.

▲ 5월 16일 =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담화에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대북 발언 비난하며 일방적인 핵 포기만 강요하려고 하면 북미정상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 발표.

▲ 5월 17일 =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측의 현 정권과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

▲ 5월 22일 = 문재인 대통령·트럼프 대통령, 워싱턴DC에서 한미정상회담.

▲ 5월 22일 =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폭스뉴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리비아 모델' 언급하며 북한이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착수하지 않으면 미국의 양보는 없을 것이라고 밝혀.

▲ 5월 24일 =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담화 통해 '미국이 계속 무도하게 나오면 북미정상회담 재고려 문제를 지도부에 제기하겠다고 밝혀.

▲ 5월 24일 =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 5월 24일 = 백악관, 6·12 북미정상회담 취소 전격 발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