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국제정치를 공부한 사람치고 조지 케넌 George F. Kennan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1946년 주소련 미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8천단어 길이의 ‘긴 전문 Long Telegram’을 국무부에 보냈고 이는 향후 미국이 취한 봉쇄정책의 근간이 된다. 봉쇄정책은 미국이 냉전의 틀을 구축하는데 중요한 근거다. 그는 1947년에 작성한 ‘소비에트 행동의 원천들Sources of Soviet Conduct’에서 소련정권은 태생적으로 팽창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 국익에 전략적인 중요성이 있는 분야에서는 마땅히 봉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이미 1948년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옛날에 조지 케넌은 모스크바와 키예프 사이의 갈등을 예상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독립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워싱턴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상세한 제안을 제시했다. 일찍이 대소련 봉쇄를 주창했던 조지 케넌은 40년이 지난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문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세기 말 90세의 나이에 NATO의 동진이 모스크바를 자극하고 새로운 냉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지 케넌은 2005년 101세의 나이로 작고했는데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했을 때부터 그 문제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사실은 조지 케넌의 전기를 쓴 역사가 Frank Costiglia가 “포른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을 보면 나와있다. 

조지 케넌과 그의 긴 전문.
조지 케넌과 그의 긴 전문.

조지 케넌은 1933년 29세의 나이로 주소련 미국대사 보좌관으로 모스크바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러시아 사정에 정통했다. 모스크바 부임전에 러시아어를 익혔고 소비에트 수도에 머무르면서도 러시아 신문과 공식 문서 뿐만 아니라 문학, 연극, 영화에도 몰두했다. 소련에서 보낸 몇 년동안 그는 러시아 문화, 사고 방식에 통달했다. 그런 만큼 조지 케넌은 러시아의변방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948년에 낸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목표“라는 문서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조지 케넌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지배를 싫어하고 그들의 해외민족주의 조직이 활발하고 시끄럽다“는 것을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크라이나가 독립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빠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경우 미국이 우크라이나 분리주의를 조장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조지 케넌은 우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을 인종적으로 쉽게 구별할 수 없다면서 그들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를 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독립 우크라이나의 형성은 오대호 주변의 비옥하고 산업적으로 발전한 지역이 미국에서 강제로 분리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냉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도 케넌은 아주 신중했다. 그는 미국인이 러시아인의 감정을 무시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가 예측한대로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되더라도 러시아는 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적 요소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장기적인 미국의 정책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수용하는데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미국이 냉전에 승리하는 경우 독립 우크라이나의 창설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조지 케넌은 또 우크라이나가 자체적으로 독립을 달성하더라고 미국이 개입하면 안된다고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독립이 러시아측으로서는 가시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1948년부터 우크라이나 위기를 예견했던 조지 케넌은 냉전 종식이후인 1990년대 NATO의 동진도 경계했다. 1997년까지 케넌은 NATO가 체코 공화국, 헝가리, 폴란드의 회원 자격을 승인하기로 한 워싱턴의 결정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와의 군사, 해군 협력 심화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NATO의 확장으로 동서간에 새로 형성된 분단선은 우크라이나에 편을 서도록 종용하는 꼴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나토를 확장하는 것은 냉전이후 미국이 취한 정책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이며 그러한 결정은 러시아를 자극해 그들이 미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외교를 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 냉전외교의 건축가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케넌의 경고는 시카고 대학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견해와도 동일하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그가 살아있더라면 아마도 러시아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미국이 동유럽에서 군사력을 증강하는데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는 대신 국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을지도 모른다. 

주유고슬라비아 대사 시절의 조지 케넌(오른쪽)과 티토.
주유고슬라비아 대사 시절의 조지 케넌(오른쪽)과 티토.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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