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이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를 뚫고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국내 배터리 3사가 긴장하고 있다. IRA 시행에 따른 강력한 대중(對中) 규제에도 중국 배터리 업체가 북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우회로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국내 배터리 업체와 중국 업체 간 점유율 경쟁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가 전기차 중국의 배터리 기업인 중국의 CATL과 손을 잡았다. [사진=YTN 캡처]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가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인 CATL과 손을 잡았다. [사진=YTN 캡처]

포드는 13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미시간주 마셜에 CATL 기술 기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공장을 지어 2026년부터 가동하고 2500명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새 공장의 생산 능력은 35GWh(기가와트시) 규모, 전기차 40만 대 분량이다. 포드의 투자 규모는 35억달러(4조5천억원)에 달한다.

포드, SK온과 CATL 병행 전략 선택한 듯

포드는 기존에 SK온과 합작 생산하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에 이어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도 확보하게 돼, 두 가지 배터리 방식 생산 기지를 갖춘 미국 최초의 기업이 된 것이다. SK온 배터리는 고급형 전기차에 장착하고, CATL의 배터리는 저가형 전기차에 장착해 시장 지배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합작의 목표는 전기차 생산비를 낮추는 것"이라며 "LFP는 가장 저렴한 배터리 기술"이라고 말했다. 앞서 포드는 전기차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올해부터 LFP배터리를 머스탱 마하-E SUV 모델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포드는 전기차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2023년부터 머스탱 마하-E SUV 모델에 LFP배터리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포드는 전기차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2023년부터 머스탱 마하-E SUV 모델에 LFP배터리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포드는 CATL이 가진 광물 배합 기술을 라이선스 비용을 주고 가져오는 대신, 100% 포드 소유 ‘미국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 중국 기술을 기반으로 한 배터리라 해도 미국에서 미국 기업이 생산할 경우 IRA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IRA를 우회하기 위해서다. IRA에 따르면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북미에서 제조·조립된 부품이 일정 비율 이상 들어간 배터리를 탑재해야 한다.

당초 IRA는 중국을 겨냥해 해외 우려 기업이 만든 배터리는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하지만 포드의 미시간 공장은 CATL이 자본을 투입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IRA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마린 자자 포드 최고고객책임자(CCO)는 “미시간 공장 생산이 시작되면 최대 7500달러 보조금 중 ‘원산지 자격 요건’을 갖춰 절반은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CATL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3분의 1을 점유하는 업체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지난해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22.3%로, 1위인 LG에너지솔루션(29.79%)을 바짝 따라붙었다.

중국 내수 시장까지 포함하면 CATL은 세계 시장 점유율 37.0%로, 1위 업체다. 중국 등 아시아와 유럽에 모두 13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미국에 공장을 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미시장 반사이익 기대했던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은 당혹

IRA 시행으로 북미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했던 국내 배터리 3사는 예상 밖의 변수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들로서는 북미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포드가 중국 배터리 업체와의 협력을 통한 우회로를 찾았다는 것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 좋은 소식은 아니다"며 "'노다지'인 줄 알았던 북미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포드와 CATL의 합작공장은 IRA 시행 취지와 완전히 어긋난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가 이를 완전히 용인할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찍히는 상황이다.

냉담한 바이든, CATL 손잡은 포드사 초청 거절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 통신은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주 주지사와 포드가 지난 13일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하는 행사에 바이든 대통령을 초청했으나 백악관이 이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IRA의 취지를 우회하는 포드사의 이같은 발표를 탐탁치 않아한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포드는 버지니아주에 CATL과의 합작공장을 설립할 계획이었지만, 주지사가 반대해 입지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진다. 공화당의 차기 대선주자 물망에 올라 있는 글렌 영킨 버지니아주 지사는 “CATL은 세계 지배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진 독재 정당인 중국 공산당의 ‘앞잡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CATL에 대해 “미국 자동차 산업 지원 정책을 훼손할 수 있는 ‘트로이 목마’”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전체적인 여론 역시 포드의 이같은 제휴 결정에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이다. 뉴욕타임스는 불과 25년 전만 해도 중국은 미국 자동차 회사들에 중국에 투자할 것을 간절히 요청했지만, 이제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기업조차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자동차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중국에 필요한 기술을 요청해야 하는 시대로 상황이 역전됐다고 평가했다.

CATL이 이같은 방식으로 미국 시장에 발을 들임에 따라, 그동안 중국 내수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오던 BYD, CALB 등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미국 진출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CATL의 이번 포드사와의 합작은 당장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미국에 첫 생산기지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삼성증권은 13일 “CATL이 재무적 성과 등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도 이번 포드 계획에 동의한 이유는 IRA에 10년이라는 기한이 있기 때문”이라며 “효력이 끝나면 미국 내 안정적인 배터리 사업 주체로 남아 지속적인 사업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배터리 3사에게 남겨진 과제는?

지난해 미국의 IRA 시행 이후 북미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오던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북미 시장 진출 전략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관측된다. 근본적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술력에서 압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IRA 시행으로 북미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했던 국내 배터리 3사는 예상 밖의 변수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그래픽=연합뉴스]
IRA 시행으로 북미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했던 국내 배터리 3사는 예상 밖의 변수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그래픽=연합뉴스]

CATL을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주로 판매하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는 무겁고 에너지 밀도도 낮지만, 저렴하고 생애 주기가 길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과 일본의 배터리 기업이 주력하고 있는 니켈코발트망간(NCM) 계열이나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계열은 전기차 배터리에서 중요한 에너지 밀도가 높아 고품질을 보장하지만 가격 경쟁력은 떨어진다.

LFP 배터리는 테슬라가 모델3 및 모델Y의 기본 버전에 사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류 배터리 시장에 진입했다. 테슬라를 시작으로 전기차 가격 경쟁이 심화되며 포드 등 다른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도 비용 절감을 위해 배터리를 LFP로 바꾸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기차의 핵심 동력원인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가장 많은 부분인 40% 이상을 차지하는 부품이다.

최근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저가형 배터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올해 들어 잇따라 원통형 배터리 생산 확대 계획을 내놨다. 원통형 배터리는 각 사가 주력했던 파우치형, 각형 배터리에 비해 원가가 낮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번 CATL의 포드사와의 합작에 대해 "아직 중국이 고품질 기술로 북미 시장에 진입한 것은 아니다. 기술력을 더 향상해서 격차를 벌려 나가야 한다"며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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