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레이트(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말에 대해 ‘심각한 외교참사’라는 더불어민주당의 비판에 “뭐가 잘못됐느냐”고 반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남북한과 동시 수교(修交)를 한 나라가 많은데 이런 나라의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서 “북한의 적은 대한민국”이라고 ‘립서비스’를 했다면 우리 정부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대통령의 언행은 신중해야 한다. 외교적으로도 그렇고 국내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은 국민, 정적(政敵)까지 아울러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 전체를 아울러야 할 대통령의 언행중 가장 삼가고 외부에 표출되서 안되는 것이 ‘분노와 적개심’이다.

‘정의로운 검사’ 출신, 이것이 자신을 대통령을 만든 정치적 자산이어서 그런지 윤석열 대통령의 언행은 거침이 없는 편이다. 김검희 여사로부터 적지않은 ‘잔소리’를 들었을텐데도 쩍벌다리에 팔자걸음, 바지의 추임새 등 옷매무시도 단정치 않아 보인다.

대통령을 원만하고 세련되게 만드는 것은 온전히 참모, 비서진의 몫이다. 그런데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참모들은 특정 인사들에 대한 대통령의 ‘호오(好惡)’의 감정을 그대로 공개하거나 증폭시켜 전달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먼저 나경원 전 의원을 주저앉히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일부 언론이 “나 전 의원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감정은 애정이 더 무겁다”는 식으로 보도하자 대통령실 참모들이 단박에 나서서 “웃기는 소리”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이어진 나 전 의원에 대한 학교폭력 수준의 ‘이지매’는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는 강도가 더 높아졌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5일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만난 뒤 기자들 앞에서 원색적으로 안 의원을 비난했다.

이 수석은 안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연대를 뜻하는 ‘윤-안 연대’ 표현을 쓴 데 대해 “정말 잘못된 표현이다. 대통령과 (당권) 후보를 동격이라 얘기하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리더십을 흔드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 안 의원이 최근 펜앤드마이크와의 인터뷰에서 ‘윤핵관’ 문제를 거론한 것에 대해 “일부 후보가 대통령실 참모들을 간신배로 모는 것은 굉장히 부당한 이야기”라며 “대통령이 간신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 하고 국정을 운영하고 계시겠느냐”고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날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실체 없는 표현으로 이득 보려는 사람은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안다”면서 대통령의 육성까지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차기 당 대표 문제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속마음이 무엇이든, 뒷짐을 지고 지켜보는 식의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당 대표 문제에 직접 참전하는 것에 따르는 리스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축제가 되어야 할 전당대회가 난장판으로 치닫고 있고, 이렇게까지 해서 김기현 의원을 당 대표로 만든다고 한들, 엉망진창이 된 리더십으로 내년 총선 승리를 이끌 수 있을지 당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서병수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건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짓”이라며 “대통령실 관계자라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전당대회에 끌어들이다니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최재형 의원도 “대통령 주변 인사들까지 누구는 대통령이 지원하지 않는다, 누구와는 함께 갈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쉽게 쏟아내는 것은 당에도 대통령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웅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교 꼴등 윤핵관이 1등 되는 법’이란 제목의 글을 올려 “1등을 죽인다. 다음 1등을 죽인다. 다다음 1등을 죽인다” “시험을 치지 말고 담임보고 1등 정해달라고 해”라고 비꼬기도 했다.

조선후기 사색당파, 붕당정치 절정기의 임금 정조는 정적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매일 밤 잠을 설칠 정도였다. 정조가 노론(老論)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들, ‘정조어찰’에는 이런 내용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정조는 편지에서 자신에 맞서는 조정대신들에 대해 온갖 험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모든 편지의 가장 마지막에는 “이 편지를 보는 즉시 불태워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절대군주의 이런 당부는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새겨야 할 정치적 덕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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