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이중플레이' "DJ 쌀과 비료 잘 전달되나 보자던데, 상호주의면 통일 못한다"
스웨덴 총리 '6.15 답방' 질문에 "DJ 아직도 내가 서울 나갈거라 생각하나" 뒷말
인권문제 제기엔 "우리 내부 파보려는 것, 시간 끌라"…강석주 "핵으로 인권 덮겠다"
태영호 "北 고립위기마다 南北회담으로 美 압력 이완전술, 2018년 재현돼"
김정일의 '전쟁 지면 지구 깨버린다' 어록 전하며 "北 핵포기 의사 추호도 없다"
南北종단철도 관련 "北은 건설 가능한 척…韓·露 동해안 부대 이전비용 다 대야"

북한 김씨 3대 세습정권이 미국 등 자유진영 국가를 배제하기 위해 표방해온 '우리민족끼리' 노선에, 한국에 대한 '상호주의'는 없다는 실태 고발이 나와 주목된다. 대북 퍼주기 논란을 초래한 '햇볕정책' 창시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북한 정권에는 '이용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정황도 제기됐다.

2016년 8월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최근 발간한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지난 2001년 5월2일 요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가 1박2일 일정으로 김정일 정권 치하 북한을 방문한 일화를 들어 이런 취지로 서술했다.

페르손 총리가 방북 이틀째 김정일과의 오찬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느냐'고 묻자, 김정일은 "지난해 김 대통령과 6.15북남(남북)공동선언을 이뤄냈는데 지금 남조선은 그때와 달라진 것 같다"며 "김 대통령이 나에게는 '우리민족끼리'라는 정신에 입각해 통일문제를 같이 해결하자고 했는데 최근 남조선은 우리와의 대화에서 자꾸 '상호주의'를 들고 나온다"고 불평했다.

김정일은 "상호주의란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할 때 적용한 방식이다. 상호주의를 들고 나오는 것은 남조선이 우리를 흡수하겠다는 뜻"이라고 규정한 뒤 "우리에게 쌀과 비료를 주면서 어디로 잘 전달되는지 보자고 하는데 그럴 필요가 뭐 있느냐. 상호주의는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금 사용처 투명화 요구를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맞지 않다'며 일축한 것이다. 

김정일은 나아가 "북과 남은 통일로 가는 노상에 있는 특수한 관계다. 북남교류 협력을 국가간 관계처럼 적용하면 우리는 통일할 수 없다"면서 "김 대통령에게 6.15북남공동선언 정신에 충실해 달라"고까지 했다.

"김 대통령에게 상호주의를 포기하고 6.15 정신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꼭 전달하겠다"고 답변했던 페르손 총리. 태영호 전 공사는 실제로 그가 그렇게 김대중 정부에 전달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이후 한국은 남북대화 과정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많이 거둬들였다"고 적었다.

북한을 떠나기 전 페르손 총리는 '언제 서울을 답방하겠느냐'고도 물었는데, 김정일은 "북남관계가 좀 더 진전되면 답방하려고 한다"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김정일은 회담 후 강석주 당시 북한 외무성 제1부상에게 "페르손이 오늘 나에게 서울 답방문제를 꺼낸 것은 김 대통령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인 듯하다"면서, "김 대통령은 아직도 내가 서울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참 어리석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를 두고 태 전 공사는 "김정일의 이중플레이가 이런 식"이라며 "한국에 온 후 나는 많은 사람들이 '김정일이 남북회담에서 주한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지 않아도 했다'면서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에 대해 매우 놀랐다"고 지적했다.

북한인권문제가 김씨 정권에게 있어서는 핵 문제에 버금가는 '역린'이었다는 징후도 거론됐다.

페르손 총리는 외국인 중에서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면전에서 인권 문제를 공식 제기한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라고 태 전 공사는 밝혔다.

오찬에서 페르손 총리는 예정에 없던 북한인권 문제를 의제로 꺼내 "핵문제가 설사 해결된다고 해도 인권문제가 남아 있는 한 북한은 국제사회에 편입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인권 분야에서 국제공동체와 협력하는 것이 장기적인 견지에서 오히려 득이 될 것"이라고 김정일에게 충고했다.

이에 김정일은 "인권 대화를 못할 것도 없다"면서 환영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우리와 서방은 인권의 사회정치적인 개념부터가 다르다"고 빠져나갔다.

회담 후 김정일은 강석주에게 인권 대화 지연전략을 연구할 것을 요구하면서 "유럽이 인권 대화를 하자는 것은 결국 우리 내부를 파보겠다는 것인데 절대 허용할 수 없다"며 "국제공동체를 얼려 넘기는 방향으로 접근해 보라"고 명령했다. "인권은 국권"이라고 심각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강석주는 이런 명령을 수용해 "몇년 간 시간을 끌어보겠다"면서 "만일 미국과 유럽이 연합해 인권공세로 나온다면 핵실험과 같은 초강경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가 핵 위기를 고조시키면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선 핵, 후 인권' 방식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핵으로 인권을 덮어버리는 것"이라는 구상을 김정일에 건의했다.

실제로 2001년 11월까지 북한은 스웨덴 인권법률가 방북을 허용해 '인권 대화'를 하는 등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이끄는 협상단이 방북한 이후 2차 북핵 위기가 발발했고 2003년 1월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인권 문제에 10년 넘도록 문을 걸어 잠갔다.

한편 태 전 공사의 저서에서는 남북 대화에 응하는 김씨 정권의 의도, 남북 철도 건설 등 경협의 실현가능성을 가늠해 볼만한 서술도 눈에 띈다.

미국은 1991년 2월 걸프전에서 승리한 이후 붕괴 중인 소비에트연방(소련) 15개 연방 공화국에 분산 배치된 전술핵을 러시아에 모아 폐기하는 작업이 순조롭게 추진되자, 김일성이 고집해 온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을 추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상황에 대해 태 전 공사는 "김정일로서는 북한의 핵 의혹을 파헤치려는 미국을 잠시나마 달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 중요했다"며 "김정일은 남북회담을 이용해 미국의 압력을 이완시키는 전술을 썼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북한이 고립과 위기에 빠질 때마다 어김없이 꺼내드는 카드가 남북 회담이었다"고 짚으며,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공동발표문 합의가 이뤄진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선언 협상 때와 유사한 상황이 2018년에 다시 재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태 전 공사는 1991년 남북 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핵 개발 의혹을 거두지 않았고, '결국 미국이 정확했다'고 술회했다. 또 "김씨 부자(김일성 김정일)는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의사가 추호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훗날 '노동신문'을 통해 알려진 김정일의 (김일성에 대한) '전쟁에 지면 지구를 깨버리겠다'는 발언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최근 4.27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청와대·정부·여당이 화두에 올린 남북 신경제지도 구상의 일환인 유라시아 대륙-남북 철도 건설에 대해서도 "한반도 종단철도가 건설돼 철도 현대화가 진행되면 대대적인 동해안 방어부대 이전이 불가피"하다며 "지금도 북한은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이 가능한 것처럼 한국과 러시아에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면서도 "한국이나 러시아가 북한 동해안에 무수히 산재한 부대 이전 비용까지 부담하면 된다"고 비용 문제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을 상기시켰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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