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올해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 공개를 돌연 연기해, 그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환경부는 12일 오전 예정된 비상경제장관회의에 올해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이 상정되지 않는다고 11일 오후 밝혔다. 지난 6일 언론에 공지된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 상정과 관련한 일정이 회의 하루 전 갑작스럽게 취소된 것은 이례적이다.

만약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이 수정되지 않고 기존 방식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현대자동차와 같은 국내 메이커들은 미국에서 IRA(인플레이션감축법)의해 ‘차별’받고, 국내에서는 중국과 동등한 보조금을 받는 ‘역차별’ 구조에 계속 시달리게 될 전망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한 전기차 주차장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 차량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한 전기차 주차장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 차량들. [사진=연합뉴스]

수입산과 국산이 동등한 혜택받는 전기차 보조금 제도 ‘개편’에 제동 걸려

당초 수입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개편안이 추진된 근본 이유로는 2가지가 꼽히고 있다. 첫째는 국산 전기차와 수입 전기차에 동등한 혜택이 제공되는 국내 보조금 체계를 수정하지 않으면, 중국산 전기차의 돌풍을 막지 못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두 번째로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추진으로 한국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함에 따라, 국내 보조금 개편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이 연기된 데 대해 “이해관계자와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환경부 측의 설명을 감안하면, 외국 전기차 수입업계의 반발이 거센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논의가 더 필요할 것 같아 (개편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라면서 어떤 이해관계자와 어떤 논의가 더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고 알려진다.

환경부, 직영서비스센터 구축한 국산차에 유리한 개편안 마련...수입업계 반발이 걸림돌

환경부는 지난달 직영서비스센터 구축 여부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보조금 개편안 초안을 업계에 공개했다. 이 안에 따르면 직영서비스센터가 없거나 정비이력·부품관리 전산시스템을 완전히 갖추지 않은 업체의 전기차는 이를 모두 갖춘 업체 전기차보다 최대 25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하게 된다. 제조사들이 더 나은 사후관리체계를 갖추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개편안에는 전기차 배터리에서 전력을 빼내 외부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비히클 투 로드'(V2L) 기술이 적용된 전기차와 최근 3년간 급속충전기를 100기 이상 설치한 제조사 전기차에 각각 보조금을 15만원 더 주는 방안도 담긴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에선 국내 제조사가 사후관리체계를 더 잘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개편안을 두고 국산 전기차와 수입 전기차 보조금을 차등해 국내 제조사를 밀어주는 방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수입 전기차 업체들은 대부분 직영서비스센터 대신 위탁·대행 서비스센터를 운영하기 때문에, 환경부 개편안에 따라 수입 전기차 보조금이 대거 삭감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외국 전기차 수입업계에선 반발 기류가 감지됐다. 개편안이 공개된 직후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보조금 체계) 개편과 실행 과정에서 업계 내 일부 업체에 의도치 않은 편향적 이익이나 불이익이 발생하거나 선택의 기회를 누려야 할 소비자 편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해줄 것을 기대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보조금 개편안이 추진된 첫 번째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대당 1400만원의 국고 보조금 받는 중국산 전기차 ‘마사다’, 국내 매출 3780% 급성장

지난 10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 브랜드 동풍소콘이 지난해 수입 상용차 시장에서 기록한 신규 등록대수는 1203대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31대와 비교해 3780% 증가한 수치에 해당한다.

지난해 수입 상용차 시장 판매 1위를 차지한 동풍소콘 마사다. [사진=EVKMC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수입 상용차 시장 판매 1위를 차지한 동풍소콘 마사다. [사진=EVKMC 홈페이지 캡처]

지난 한 해 1203대가 팔리며, 모델별 수입 상용차 신규 등록대수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전기차의 경쟁력 중 하나인 1회 충전 시 주행가능한 거리는 120km에 불과하지만, 저렴한 실구매 가격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많은 선택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동풍소콘의 성장세를 이끈 모델은 2인승·4인승 밴과 픽업, 냉동탑차 등으로 구성된 ‘마사다’로 알려진다. 마사다의 기본 판매가격은 3780만~4600만원이다. 하지만 국고 보조금 1400만원과 별도 지자체 보조금을 포함하면 1780만~2600만원 수준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동일 조건에 구매 가격이 2185만~2374만원 수준인 국산 상용차보다 훨씬 저렴해지는 것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중국산 전기차를 성장시켰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보조금 개편안이 추진된 것으로 알려진다.

환경부, 미국과의 IRA협상에 지장 줄까 보조금 정책 개편도 못해?

일각에서는 환경부의 개편안 연기가 ‘미국이 전기차 보조금 대상을 자국 내 최종 조립된 차량으로 제한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의식한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환경부 개편안으로 수입 전기차가 국산 전기차보다 보조금을 덜 받게 되면, ‘IRA는 차별적’이라며 미국 정부에 대응할 논리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IRA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대상을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로 제한해 2025년 상반기에야 미국 현지 생산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자동차 전기차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수입 전기차 보조금을 차등할 경우, IRA 문제를 조율 중인 정부가 관계 개선의 명분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지난 10일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은 호세 페르난데스 미국 국무부 경제성장·에너지·환경차관과 양자 협의를 마치고 가진 약식 공동 기자회견에서 IRA와 관련해 "앞으로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를 완화하고 호혜적인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계속해 나간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전기차 보조금을 차별할 경우, 전기차 뿐만 아니라 내연차까지 미국 시장에서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럽에서도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차별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대로 갈 경우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만 손해를 보게 될 판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IRA에 의해 보조금 지급에서 차별을 받는 반면, 국내 시장에서는 동등하게 보조금을 받는 중국차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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