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발생한 대전 현대아울렛 지하주차장의 화재 원인이 3개월만에 밝혀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최초 발화 지점인 지하주차장에서 시동을 켠 채 정차 중이던 1t 화물차의 배기구가 과열돼 주변 종이 상자에 불이 붙으면서 발생한 것으로 감정됐다.

지난 9월 26일 발생한 대전 현대아울렛 지하주차장의 화재 원인이 밝혀졌다. [사진=MBN 캡처]
지난 9월 26일 발생한 대전 현대아울렛 지하주차장의 화재 원인이 밝혀졌다. [사진=MBN 캡처]

국과수, “화물차 매연저감장치(DPF)에서 발생한 고열의 가스가 발화 원인”

26일 대전경찰청은 화재 원인과 관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감정 결과, 아울렛 지하 1층 주차장 하역장에 있던 화물차에서 나온 고온의 배기가스가 트럭 바닥에 있던 폐 종이 박스 등 가연성 물질과 접촉해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이 감정 결과에서 시동이 걸린 채 수분동안 주차돼 있던 1t 화물차의 매연저감장치(DPF)에서 발생한 고열의 가스가 배기구를 통해 배출되다 주변 폐 종이박스에 닿아 발화됐다고 추정했다. 경찰과 국과수, 소방당국이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한 화재 재연 실험에서도 이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화물차 아래쪽에 쌓여있던 폐 종이박스가 차량 배기구와 근접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7명이 질식해 사망...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현대백화점과 하청업체 대표 등 입건돼

당시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화재사고와 관련해 김형종 현대백화점 사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대전고용노동청은 지난 11월 3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김형종 현대백화점 사장과 아울렛 방재·보안시설 하청업체 대표 등 3명을 함께 입건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수 50인 이상인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한 명 이상 발생했거나,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해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하면 적용된다.

노동청은 사고 발생 이후부터 현대백화점 안전관리 담당자와 하청업체 담당자 등을 상대로 소속 근로자 안전조치 이행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를 벌여왔다.

현대아울렛 대전점 화재로 환경미화·시설관리 직원 등 7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피해가 났다. 대전경찰청은 화재 사고 이후 수사본부를 꾸려 현대아울렛 대전점 안전관리 담당자와 하청업체 관계자 등 13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해 수사했다. 하지만 당시 화재 원인과 소방시설 작동 여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현대백화점 경영책임자와 하청업체 대표 등이 입건되면서, 노동당국은 이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 후 직접 소환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노동당국 관계자는 “향후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입건 대상과 수사 범위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청은 백화점 관계자를 대상으로 화재 원인을 수사했지만, 엉뚱하게도 ‘화물차에서 나온 고온의 배기가스’로 밝혀진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차량 매연저감장치(DPF)가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결론으로 드러났다.

수사당국, 화재발생 초기 스프링클러 미작동에 수사 초첨 맞춰

수사 당국은 화재 발생 초기에 스프링쿨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관계자의 증언을 뒷받침할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MBN 캡처]
수사 당국은 화재 발생 초기에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관계자의 증언을 뒷받침할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SBS Biz 캡처]

26일 수사 당국은 화재 발생 초기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소방대원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두한 대전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은 “소방설비를 제어하는 화재 수신기에서 로그 기록상 시스템 기능이 정지돼 있어 화재 발생 당시 발화지점 근처에선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화재 수신기 자체가 꺼져 있었던 탓에 초기 진화에 필수적인 스프링클러가 바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오작동을 우려해 시스템을 일부러 꺼놓은 것인지 등 시스템을 정지시킨 주체와 시점·이유 등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선 아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대백화점 본사 관계자에 대해서도 관리 소홀 등 혐의가 드러나면 추가로 입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앞서 김윤형 현대아울렛 대전지점장을 비롯한 현대아울렛 대전점 관계자와 소방관리업체 관계자 등 13명을 입건했다.

이쯤되자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화재 발생 초기에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현대아울렛 관계자에 대한 재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화재의 직접적 원인은 매연저감장치인 DPF에 있어

하지만 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매연저감장치’인 DPF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로 4 이상의 경유 차량에 필수적인 DPF는 매연 속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거름망’이다. 먼지가 어느 정도 쌓이면 이를 태워 없애는 ‘재생’ 기능이 작동하며, 600도 가량의 고열이 발생한다. 화재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화물차 배기구 근처 종이 상자에서 불길이 치솟는 장면이 담겨 있다. 또 종이 상자 등이 배기구를 막으면서 열 배출이 제대로 안 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DPF의 먼지를 태우는 작업은 자동차가 운행 중에 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필터에 어느 정도 먼지가 찼을 때 작동한다. 이 기능이 작동할 때는 매우 고온이 발생하는 만큼 자동차 냉각팬이 최대한 돌게 되며 자동차에 따라서는 DPF 작동 램프가 켜지게 된다. 이때는 엔진을 끄면 안 된다. 엄청난 고열을 내는 DPF의 냉각이 되지 않아 장치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화재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화물차 배기구 근처 종이 상자에서 불길이 치솟는 장면이 담겨 있다. [사진=MBN 캡처]
화재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화물차 배기구 근처 종이 상자에서 불길이 치솟는 장면이 담겨 있다. [사진=MBN 캡처]

문제는 DPF에 많은 단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다. 노후 경유차에 DPF를 달 경우 중고 감가상각률이 커지고 연비, 출력이 확 떨어진다. DPF 필터에 금이 가거나 박살나거나 녹아내리는 경우에는 DPF를 살릴 수 없어 몇 백만원에서 천만원 이상을 날리는 경우도 있다. 출력 및 연비 저하는 물론, 매연 저감에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불평이 DPF를 장착한 경유차 운전자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저감장치 제작사가 망할 경우 제대로 수리가 안 되는 바람에 일부러 안 다는 사람도 많다. 자동차 검사 때문에 마지못해 DPF를 장착했다가 뚫어버리고 운행하거나, 규제가 느슨한 세종시 등으로 차고등록지를 옮기는 일이 허다했다.

미세먼지만 걸러주는 DPF, 많은 단점에도 문재인 정부는 장착 강제해 

게다가 DPF는 미세먼지만 걸러주는 기능에 그친다. 미세먼지보다 피해가 심각한 질소산화물 저감에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2003년 노무현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노후 경유차량에 DPF 장착을 진행했다. 게다가 친환경 정책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는 DPF를 장착하지 않은 5등급 경유차량은 수도권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폐차 처분하도록 조치했다.

환경규제가 약한 유로3 이하의 경유차에도 DPF를 장착하도록 정부가 강제하자, 출고시 DPF가 장착되지 않은 차량 소유주는 차량을 개조해서 DPF를 장착했다. 이런 차에는 ‘DPF를 장착’했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개조를 해서 DPF를 장착한 차량에서는 더 많은 문제점이 확인된다는 것이 자동차 정비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대전 현대아울렛 화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스프링클러 외에도 1t 화물차에 장착된 DPF의 관리 여부에 대해서도 반드시 수사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프링클러보다 DPF가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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