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까지만 해도 주택 가격 하락세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9년을 이어오던 상승장이 한순간에 급락장으로 바뀌면서, 지금은 급격한 금리 인상과 최악의 거래 절벽 앞에 폭락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 [사진=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주택 시장 연착륙을 위해, 예상보다 빠른 ‘규제 완화’ 대책을 내놓고 있다. 세금·재건축·대출·청약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규제를 풀고 있다. 지난 21일 정부가 규제지역 내 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전면 해제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30%까지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부동산 시장 연착륙 방안 등을 담은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쏟아지는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완화책, 시장 하락세 막기엔 역부족

그동안 죄인 취급해오던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완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취득세 중과 폐지·대출 규제 완화 등으로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추고 임대사업자 부활 당근을 제시했다. 정부로서는 히든카드를 꺼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만큼 주택 가격이 너무 빨리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이미 너무 늦었다”거나 “애매한 완화 정책으로는 시장에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다주택자의 주담대 금지가 풀리더라도 은행 문을 두드리는 수요가 크게 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다주택자 상당수는 대출 이자가 워낙 비싼 데다 집값이 더 빠질 것으로 보고 시장을 한발 물러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개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번 규제 완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다주택자의 문턱을 낮췄다고 하지만, 세율도 애매하게 인하했고 LTV규제 완화도 파격적이지 않다는 점이 거론된다. 주택 가격의 하락을 막고 실수요자의 주택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유인책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융위기 직후 실거래가가 30% 정도 급락한 뒤 반등한 사례가 소환되기도 한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반짝 상승한 2009년에는 기준금리가 잇따라 인하됐지만, 내년에는 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반짝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또 집값이 내렸다 해도 소득 대비 집값이 여전히 비싸다는 점도 지적된다. 서울에서 중간 소득 대비 중간 집값 비율이 지난해 말 19까지 올랐다가 지난 9월 17.64까지 내려왔고 조만간 17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소득대비 집값 비율(PIR·주택가격을 가구소득으로 나눈 값)은 3분위 소득·3분위 주택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중위소득 가구가 17년 6개월 동안 소득을 한 푼도 안 쓰고 모두 모았을 때 지역 내 중간 가격의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와 관련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월 “소득과 대비했을 때 지금 집값은 너무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서울은(가구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이) 18배에 이르러 금융위기 직전 8배보다 높고 금융위기 직후 10배보다도 지나치게 높다. 10배가 적정기준이라고 말하기엔 섣부른 면이 있지만, 지금은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라 하향 안정화가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8월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민주거안정 실현방안인 주택공급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8월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민주거안정 실현방안인 주택공급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따라서 2023년에도 집값 하락세가 지속되거나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3가지 지표를 점검해본다.

① 역전세와 전세반환소송 급증 예상...특히 30대 이하의 피해 우려

2년 전에 최고가를 찍은 전세 가격이 내년이면 만기가 되어서 돌아온다. 집주인들은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가격 하락이 심한 곳은 평균 4~5억원씩 떨어졌다. 그 정도의 현금을 가진 집주인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상황에서 역전세가 늘어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내년에 전세반환소송이 줄을 이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9월 기준으로 전세반환금 사고 금액이 65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대출금리 부담이 본격화된 시기가 4분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상반기에는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내년에는 전세반환금 사고 금액이 조 단위까지 치솟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전세금 규모를 대략 600조원이 넘는다고 할 때, 보증보험 규모는 85조에 불과하다. 전체의 15%밖에 안 된다. 특히 전체 전세 대출자 130만 명 중에 82만명이 30대 이하에 해당한다. 전세반환금 사고가 터질 경우, 30대 이하의 피해가 더 극심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② 강남, 서초도 내년부터는 하락장이 시작

그동안 빌라 위주였던 전세금 반환 문제가 내년에는 아파트로 전이될 것으로 예측된다. 빌라의 전세 가격과 아파트의 전세 가격은 금액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게다가 내년은 강남구에 대규모 입주가 시작된다. 가깝게는 2월부터 개포 프레지던스 자이에 3375세대가 입주한다. 강남 지역에서 3000세대가 입주하는 것은 2006년 도곡 렉슬 이후 처음이다. 기준 금리가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어서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어차피 이곳은 대출이 안 되기 때문에, 매매 가격보다는 전세 가격의 급락이 우려된다. 그럴 경우 주변 부동산 시장에도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현재 84㎡는 9억원 선, 59㎡는 6.6억원에 전세가격이 형성되고 있는데, 입주 시점에는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무래도 급한 물량이 더 나오기 때문이다. 입지가 좋은 개포 전세 가격이 이렇게 형성된다고 하면, 기타 주변의 전세 가격이 현재로도 4억 이상 하락했는데, 입주 시점 이후로는 더 하락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내년 초 강남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입주가 예정돼 있어, 이 지역의 전세가격 급락이 우려된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한 공인중개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내년 초 강남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입주가 예정돼 있어, 이 지역의 전세가격 급락이 우려된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한 공인중개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집주인이 하락한 전세금을 내어줄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개포 자이 입주 물량 3300세대에 전세 차익 4억원을 곱하면, 그 금액은 무려 1조 3500억원에 달한다.

8월 이후에도 래미안원베일리 2900세대 입주가 예정돼 있다. 2009년 3월 반포 자이 이후 가장 많은 물량에 해당한다. 전세자금 대출과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이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수요자는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전세 시세가 낮은 가격에 형성되면서 급매물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주변에도 역전세난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처럼 전세 가격이 하락하면 매매 가격이 3개월에서 6개월의 시차를 두고 하락한다는 점에서, 2023년에는 강남 지역의 하락장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③ 2% 금리였던 혼합형 대출자, 내년부터는 8% 금리 부담해야...‘패닉셀’ 예상돼

2018년부터 집을 사기 시작한 집주인 중에는 혼합형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5년까지는 고정금리로 이자만 내다가, 6년째부터는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상품이다. 당시에 2%로 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구매한 사람들이 내년부터는 8%금리에 해당하는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에게는 현실적인 공포가 도래하는 셈이다. 중개업계에 따르면 내년 들어 더 하락한 가격에 팔지 않기 위해 이미 손절매에 나선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준공한 지 4년 된 매머드급 단지인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에서 지난 10~11월에 거래된 3건이 손절매였다. 지난달 17억5000만원에 팔린 84㎡는 지난해 22억원에 거래된 집이다. 16억7000만원에 거래된 또다른 84㎡는 불과 4개월 전에 21억원에 매수한 집이다. 손절매 금액이 모두 4억원을 넘어서는 데다, 매수자가 모두 30대라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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