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세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행해온 블라디미르 푸틴(70) 러시아 대통령을 둘러싼 ‘신변 이상설’이 증폭되고 있다. 그동안 서방언론들은 푸틴 대통령을 겨냥해 건강이상설, 대역설 등을 제기해왔으나 최근 논란은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주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16일 화상회의 주재하는 푸틴 대통령. 더타임스는 미리 촬영된 영상일 의혹을 언급했다. [사진=연합뉴스]
16일 화상회의 주재하는 푸틴 대통령. 더타임스는 미리 촬영된 영상일 의혹을 언급했다. [사진=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공식행사는 지난 9일(현지시간) 키르키스스탄에서 열린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행사였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이 자리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도네츠크주를 크림반도와 혼동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계기로 건강이상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이 연례행사 참석을 줄줄이 취소함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황 악화에 따른 신변 이상설이 증폭되고 있다.

푸틴 신변 이상설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3가지 흐름이다. 서방언론들도 엇갈린 보도를 하고 있다.

① 푸틴의 16일 화상회의 주재 둘러싼 진위 논란: 더타임스와 로이터통신이 엇갈린 정황증거 보도

러시아측과 서방언론이 가장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이슈는 지난 16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의 화상회의 주재이다. 영국의 더타임스와 로이터통신이 서로 엇갈린 정황증거를 보도하고 있는 양상이다.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16일 전날에 이어 이틀째 내각 화상 회의를 주재했다며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로써 대통령 부재설을 일축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더타임스는 대통령 부재시를 위해 미리 찍어둔 동영상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크렘린궁은 17일 러시아군이 예상외로 졸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이 최근 군사령관들을 불러 모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작전 방향에 관해 의견을 수렴하는 영상을 공개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크렘린궁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전날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 10여 명의 군사령관들을 소집해 회의를 주재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작전 방향과 관련해 지휘관들의 의견을 청취할 것"이라며 "즉각적으로 필요한 작전과 중기적인 작전에 관해 제안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게라시모프 총창모장과 대화 중인 푸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과 대화 중인 푸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16일 푸틴이 화상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사전에 촬영된 영상이라는 더타임스의 보도를 반박하는 데 러시아측이 전력투구하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로이터통신은 푸틴이 정치적으로 최대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10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서 퇴각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남부 요충지인 헤르손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면서 “잇따른 전장의 패배에 대해 푸틴 대통령의 지지층에서조차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크렘린궁이 ‘푸틴이 군사령관들과의 회의를 주재하는 영상’을 로이터통신에게 준 것은 푸틴 부재설을 잠재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16일 지휘 본부에서 군사령관들과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인도 총리실도 푸틴 건재설을 뒷받침하는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인도 총리실은 “푸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통화를 하고 에너지를 비롯한 여러 방면에서 협력할 방안을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과 모디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의견을 나눈 뒤 에너지와 농업, 투자 등 분야에서 협력을 지속하고 확대하는 데 공감했다고 인도 총리실은 전했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전날인 15일에도 TV 연설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설 방안을 제시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경제 협력 범위를 넓히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더타임스가 푸틴이 16일 화상회의를 주재한 영상이 사전 촬영본이라고 보도한 것은 ‘부재설’ 혹은 ‘건강 이상설’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크렘린궁은 푸틴이 16일에만 화상회의 주재, 모디 인도 총리와의 전화통화 회담, 10여명의 군사령관들과의 우크라이나전쟁 회의 주재 등과 같은 강행군을 했다는 입장이다. 크렘린궁 대변인 주장대로라면 16일 온 종일 군사령과들과 회의를 하면서 틈을 내서 화상회의 주재, 모디 총리와의 전화통화 등을 한 것이다.

② 공식행사 줄줄이 취소, 수그러들지 않는 ‘건강 이상설’...31일 TV연설이 분수령

크렘린궁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건강 이상설’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푸틴 대통령이 연례공식 행사 참석을 무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라면 당연히 참석하던 연례행사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취소를 검토 중이다.

크렘린궁이 푸틴 동영상을 공개하고 있지만, 러시아 국민들이 직접 푸틴을 볼 기회는 없다.

연말에 으레 열리던 연례 기자회견과 '국민과의 대화' 행사는 이미 취소됐다. 헌법에 규정된 의회 시정연설도 취소될 전망이다. 근육질 푸틴의 이미지에 기여해온 연말 아이스하키 행사도 취소했다. 푸틴은 2012년부터 거의 해마다 붉은광장 특설 아이스링크에서 아이스하키 경기에 직접 출전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출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작년 아이스하키 운동복 입은 푸틴. [사진=연합뉴스]
아이스하키 운동복을 입은 푸틴 대통령의 작년 모습. [사진=연합뉴스]

푸틴의 행사 참석 취소는 패색이 짙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민감한 질문이 나올 것을 우려한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부재’로 인한 국민적 불안감 증폭과 ‘푸틴 이상설’ 확산 등의 부작용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러시아 정치 전문가인 예카테리나 슐만은 더타임스에 "전부 뭔가 의심스럽다. 이런 행사는 (정권의) 안정성 유지 면에서 필요하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불안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 이상설은 오는 31일(현지시간)을 기점으로 일단 그 향배가 결정될 전망이다. 푸틴은 1년의 마지막 날인 31일이면 TV연설을 했다. 이 연설까지 취소하는 경우 푸틴의 건강 이상설이 급격히 확산할 수 있다고 더타임스는 분석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반정부매체 '더프로젝트'는 푸틴 대통령이 최근 4년간 암 전문의의 진료를 35차레나 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특히 의료진 가운데는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푸틴이 31일 TV연설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한다면 더타임스 보도는 선정적 음모론으로 평가될 가능성도 있다.

③ 베네수엘라행 ‘노아의 방주’ 준비 중?...크렘린궁 극비정보를 이스라엘 거주자가 파악?

푸틴의 건강 이상설과 맞물려 ‘망명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푸틴으로서는 치욕적인 시나리오이다. 푸틴 대통령이 치욕적인 전쟁 패배와 실각 가능성에 대비해 남미행 '노아의 방주'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그것이다.

푸틴의 연설비서관 출신인 아바스 갈리야모프 정치평론가는 “푸틴 대통령이 전쟁에서 대패하는 경우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로 탈출하는 계획을 마련 중이다”고 주장했다. 탈출 계획의 작전명은 '노아의 방주'라는 설명이다. 갈리야모프는 자신의 주장이 크렘린궁 측 소식통의 정보에 근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갈리야모프는 푸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 최고경영자(CEO)인 이고르 세친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터워 이같은 탈출 계획을 꾸밀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반면에 갈리야모프가 이스라엘 거주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노아의 방주’와 같은 크렘린궁의 극비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푸틴 신변 이상설이 갈수록 무성해지는 것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색이 짙어질 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의 압박이 강화된 데 따른 푸틴의 고립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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