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입건했다는 소식에 논란이 일고 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최 서장이 현장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며 덜덜 떨던 모습을 떠올리며 과실치사 협의 입건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수 여론은 최 서장이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했다고 판단,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최성범 서울용산소방서장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성범 서울용산소방서장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수본, 부실 대응한 용산경찰서장과 성실 대응한 용산소방서장을 묶어서 입건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친민주당 성향의 일부 매체에서 ‘서울소방본부와 용산소방서의 부실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 ‘경찰 감싸기’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직후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을 비롯해 경찰 수뇌부의 대응이 늦었던 것과 달리, 소방청 및 서울소방본부 등의 발빠른 대응이 주목됐기 때문이다.

특수본은 7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정보계장,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등 6명을 피의자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이 전 서장과 류 전 과장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됐다.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정보계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에 직권남용, 증거인멸 혐의가 추가됐다. 박 청장과 최 서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다.

특수본은 최 서장이 현장에 출동하는 과정에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설명했다. 참사 당시 용산소방서가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구조활동을 펼쳐야 하지만 종로소방서 소속 구급차가 더 먼저 도착하는 등 현장 처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의 주장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용산소방서 구급차, 출혈환자 이송하느라 종로소방서보다 늦게 도착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향신문을 통해 공개한 용산소방서의 ‘2022 핼러윈데이 소방안전대책’ 문건에 따르면 용산소방서는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현장 안전사고에 신속하게 대처하고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응급처치 및 병원이송을 원활히 하기 위해 이태원119안전센터에 구급차 및 승차대원 등 소방력을 대기하도록 했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한 직후 현장에 처음 도착한 구급차는 종로소방서 소속 종로119안전센터의 구급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원119안전센터 구급차는 종로소방서 구급차보다 31분 늦은 오후 11시13분에서야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참사 당일 이태원119안전센터에 있었던 구급차는 이태원역 인근에서 발생한 머리 출혈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오후 10시7분 센터를 떠나 참사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것이다. 용산소방서 측은 먼저 접수된 신고를 처리한 뒤 참사 현장에 투입돼 최선을 다해 구조활동을 펼쳤다는 입장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용산서장, 표창을 줘도 모자랄 판에 피의자 신분 입건은 말이 안돼”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관련 소식이 빠르게 퍼지며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많은 이들은 참사 당시 브리핑을 하던 최 서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표창을 줘도 모자랄 판에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놀다 늦은 것도 아니고 머리 출혈 환자를 이송하다 늦은 건데 과실치사라니 황당하다” “최 서장에게 뒤집어씌우기 하는 거냐”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최 서장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밤부터 다음 날까지 아침까지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펼치며 피해 상황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네 차례 진행했다. 브리핑 당시 최 서장의 목소리는 비교적 침착했지만 마이크를 쥔 손이 덜덜 떨렸고, 이 모습이 방송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후 온라인 곳곳에는 ‘브리핑을 하면서 손 덜덜 떠는 용산소방서장’이라는 제목의 움짤(움직이는 사진)이 확산됐다.

법조계, “용산소방서장 적절한 대처 사실 밝혀지면 쉽게 혐의 벗을 것”

이태원 참사 당시, 소방당국의 발빠른 대응과 판단력에 대해서는 각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소방당국은 사건 당일인 29일 10시 18분 서울종합방재센터가 서울경찰청에 인력과 차량 통제가 필요하다며 지원 요청을 한 것을 시작으로 참사 당일 15차례에 걸쳐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분만에 서울경찰청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 등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 등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05분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엄청난 역량의 차이인 셈이다. 서울경찰청장이 사고 발생 1시간 21분 뒤인 오후 11시 36분에 보고를 받았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다음날 새벽 0시 14분에 보고를 받았다는 점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최 소방서장이 적절한 대처를 하였다는 것이 밝혀지면, 이번 입건에서 확인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쉽게 벗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실제로 처벌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전 용산경찰서장은 참사 당일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참사 현장을 두고, 차를 타고 가서 1시간 가량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등 전형적인 직무유기를 한 정황이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소방이 경찰의 공동대응 요청 무시” 보도

그런데 8일 경향신문은 ‘경찰이 참사 전 2차례나 서울소방재난본부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무시당했다’는 취재 내용을 보도했다. 소방이 경찰로부터 받은 공동대응 요청을 무시하고 신고자에게는 “경찰관을 찾아가라”라고 말한 세부 내용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압사 위험이 수차례 신고됐으나, 소방의 대응이 부식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로 관측된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사고 발생 전인 오후 8시 33분에 신고자가 경찰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쓰러지고 그런다”고 알렸고, 이에 경찰이 소방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소방은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이 많이 다쳤냐”고 물었고, 신고자가 “다친 사람은 없다”고 말하자 소방은 “그럼 무엇이 필요하냐”고 되물었다. 이에 신고자가 인파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소방은 “경찰관이 보이냐. 그러면 경찰관 통해서 다시 안내를 받으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오후 9시 넘어 경찰은 첫 번째와 비슷한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소방은 다시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어 부상자가 있는지, 구급차가 필요한지를 물었다. 이에 신고자가 “질서 유지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소방은 “경찰이 필요한 거면 112에 다시 연락하라”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소방은 재난 발생 이후 대응 의무 가져...재난 발생 이전 경찰과의 공동 대응은 업무 영역 아냐

경찰·소방·지방자치단체의 참사 부실 대응을 수사 중인 경찰청 특수본은 소방이 경찰의 공동대응 요청을 묵살한 경위를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로 소방서장 등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방이 경찰에 공조를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건데 그 반대는 호의의 영역”이라며 “국가기관이니까 국민 생명 수호를 위해 인력이 충분했다면 들어줄 수도 있었던 것이지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기관 존립의 근거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은 물을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경향신문이 8일 보도한 ‘2번의 공조 요청’은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소방당국은 재난이 벌어지기 전에 재난에 대비해야 할 의무는 없고, 재난이 발생한 뒤에 수습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이루어진 경찰의 공조 요청을 무시했다고 해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 평가이다.

그보다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서울종합방재센터가 15차례나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및 용산경찰서에 요청한 공동 대응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경찰의 대응을 더 큰 문제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향신문과 민주당의 지엽적인 문제 제기는 ‘더 큰 문제’를 덮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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