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호남 문제는 3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정치적 소외, 경제적 낙후, 사회적 혐오가 그것이다. 이 3가지 현상은 상호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호남 현대사는 이 3가지 질곡과의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적 소외는 영남패권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본격적으로 산업화에 착수한 박정희 정권 당시 대한민국이 경제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은 한일협정 이후 유치한 일본 청구권 자금 중심이었고, 결과적으로 일본 관서경제권과의 연계를 통한 산업화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원조 공여국이 지정하는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원조 자금에 기본적으로 딸려오는 조건이기도 했다.

이런 조건은 영남 남해안 일대에 공업벨트를 집중 건설하는 현상과 함께 호남의 산업화 소외와 지역감정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중앙정부의 영남 출신 엘리트 공무원들이 자원 배분권을 쥐게 되었다. 이 구조에서 영남 출신 재벌들이 수혜를 입은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수도권과 영남을 잇는 경부축이 대한민국 산업화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큰 정부와 수도권 비대화는 그 결과이다.

급속한 산업화는 농업지역인 호남의 소외로 이어졌고 이는 정치적인 불만으로 이어졌다.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은 농민들 가운데서 동원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전통적인 농촌 지역인 호남의 지역 공동체를 해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호남의 농촌 출신들은 고향을 떠나 수도권과 영남의 공단에서 노동자로 일하거나 도시빈민으로 편입됐다.

이들이 낯선 타향에서 사회 하층계급으로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이는 사회적 소외감과 불만의 원인이 됐고 정치적 저항의식으로 발전했다. 이런 저항의식은 5.18을 거치면서 반대한민국이라는 체제 거부 의식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나눠줄 파이가 적은 상황에서 당근과 채찍이라는 정권 유지 수단 가운데 채찍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었다. 불만을 억누를 물리력을 확보한 육사 출신 군부 엘리트가 정권의 핵심이 된 배경이 이것이다. 이것은 70~80년대 민주화운동이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라는 내용을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이런 배경에서 1980년 5월의 비극이 잉태됐다. 호남이 겪은 산업화의 소외와 농촌 공동체의 붕괴가 정치적 불만과 김대중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고 이것이 5.18의 원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1980년의 패배와 좌절은 그대로 소멸되지 않고 1987년의 민주화 투쟁과 87체제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87체제의 성립 이후에는 정치군인이 정권 창출과 유지의 핵심이 될 수 없었다. 민주화의 결과 물리력을 동원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영남패권은 선거의 필승 무기가 필요했다. 그게 호남 고립과 소외 전략이다. 그 결과는 미디어의 호남 혐오 부추김과 김영삼의 3당 합당 등으로 나타났다.

호남은 고립과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좌파 특히 87체제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통령 직선제’의 주역 NL주사파와 손을 잡았다. 호남의 민주주의 투쟁에서 반(反)대한민국 좌파 성향이 짙어지게 된 계기였다. 대한민국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투쟁이었던 5.18이 마치 반미친북 투쟁인 것처럼 왜곡된 것도 그 영향이 컸다.

5.18의 피와 민주화라는 호남의 상징자산이 87체제의 오너라고 할 수 있는 주사파의 위상과 결합해 좌파 패권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호남은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데 정치적 목표를 두는 좌파의 숙주이자 좌파들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가두리 양식장이 됐다.

호남의 민주화투쟁은 열린 사회, 인권의식의 고양, 권위주의의 청산, 전문가 집단의 역할 확대 등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호남의 정치적 에이전트인 민주당의 반대한민국 친북종중 성격이 강화됐고 그 결정판이 문재인 정권이었다. 호남은 문재인 정권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이었고, 이는 호남의 정치적 고립으로 이어졌다.

호남의 민주화 투쟁은 영남패권 극복이라는 명분을 갖고 있었다. 영남패권 즉 박정희 시스템은 큰 정부와 중앙정부의 자원 배분권 독점, 정경유착, 관치금융 등이 특징이다. 이 시스템은 성과도 컸지만 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작은 정부와 민간 주도의 경제,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의 극복이 필요했다. 전두환과 김영삼도 그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호남은 정권을 잡은 후 영남패권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그대로 이용했고 오히려 그 시스템을 확대 강화했다. 역대 민주당 정권은 보수 정부보다 더 큰 정부 지향이었다. 관치금융과 정경유착, 수도권 비대화도 개선된 것이 없다.

비유하자면, 농민 반란 지도자들이 공화국을 만들지 않고 역성혁명으로 새로운 왕조를 만든 셈이었다. 영남패권은 산업화라는 성과를 만들었고 이는 민주화로 나아가는 토대 역할을 했지만, 호남의 민주화는 좌경화로 이어졌다. 정치적 명분과 실력이 빈약한 주사파 세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치적 피난처를 제공하고 인적 물적 수혈을 해준 것이 호남이었다. 호남은 여기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호남 정치의 최종 귀결은 호남 예외주의 즉 호남은 대한민국과 다른 나라라는 정체성으로 드러났다. 이는 역사의 진행 법칙에 대한 거부로 봐야 한다. 필자는 2020년 총선 이후 광주 시민단체 관계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온 발언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호남은 적은 수를 결집해서 위력을 최대한 발휘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런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이었다. 이게 과연 호남과 대한민국에 바람직한 현상인가.

호남의 경제는 호남 정치의 쌍둥이다. 좌파들은 87체제의 경제민주화 논리를 기반으로 큰 정부를 지향했고, 호남은 그 연장선에서 시장과 기업은 악(惡)이고 공공이 선(善)이라는 논리에 매몰됐다. 반기업 반시장 논리가 그 핵심이다. 복합쇼핑몰 입주 반대, LG CNS의 새만금지구 스마트팜 입주 반대, 전주종합경기장 재개발 반대 등이 그 사례들이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삼성 취업 반대 사례도 유명하다.

기업과 시장을 거부하는 호남은 정치적인 방법으로 경제적 대가를 챙겨야 했다. 이것이 정치의 산업화 현상이다. 호남의 정치적 우위를 무기 삼아 공공과 민간의 자원을 약탈하는 것이다. 5.18의 피가 그 무기로 동원됐다.

아시아문화전당, 광주형일자리(광주글로벌모터스), 광주 비엔날레, 한전공대, 새만금 태양광과 풍력발전 등이 그 결과이다. 정치적 우위와 상징성을 무기로 정부와 기업의 멱살을 잡아 끌고오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태양광 사업에서 보듯이 비리와 부정부패가 끼어들 수밖에 없고 여론의 비판을 받게 되어 있다. 5.18 처벌법은 그런 비판에 대한 입막음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5.18의 정당성과 상징성을 오염시키고 있다.

시장의 거래는 계약 당사자들의 합의가 전제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정하다. 하지만 공공은 일방적인 시혜의 성격이 강하고 연고주의나 부정부패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 호남의 공직사회가 다른 지역에 비해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평가는 호남 출신 공직자들도 인정한다. 지난해 광주의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현장에서 두 번이나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한 사례가 뭘 말할까?

과거 대구의 표면적인 경제지표는 전국 최하위권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대구의 경제실력을 드러내는 것이 외제 승용차 등록률, 고급 아파트단지의 매매가 그리고 5만원권 퇴장률이라는 말이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중앙정부의 자원 배분권이 강한 나라에서 지역 출신 고위직 인사가 늘어날 때 부수되는 현상이다.

광주광역시의 등록 승용차 가운데 외산의 비율은 2015년에 2.3%에 불과했으나, 2021년 말에는 12.25%로 급격히 높아졌다. 문재인 정권 기간 내내 광주의 아파트 가격은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광주의 대구화라고 할만한 현상이다.

문제는 정치적 승리의 대가로 얻는 경제적 보상이 지속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광주가 정치적 위력을 동원해 유치한 사업들 가운데 성공적인 것이 있는가? 없다고 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정부의 지원이 계속되어야 하고 규모도 커져야 한다. 일종의 무임승차이다. 일베의 호남 혐오도 그 뿌리는 무임승차에 대한 거부감이다.

악순환 구조이다. 시장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 근거한 호남 경제는 자생력을 가질 수 없고 계속해서 정치 명분을 내세워서 국가 예산과 공공 자원을 약탈해와야 한다. 권력을 놓치는 순간 경제적 시혜도 사라진다. 그 부작용이 갈수록 확산되는 호남 혐오 현상이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호남혐오 현상은 정치 영역의 반대한민국 성향, 경제 영역의 반기업 반시장 논리에 근거한 무임승차에 대한 다른 지역의 반감에 그 뿌리가 있다.

호남의 정치논리(반대한민국 친북종중)와 경제논리(반기업, 반시장, 경제민주화 등)는 87체제의 정치적 승리자인 좌파의 영향력과 결합해 대한민국 전체에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대한민국의 호남화 현상이다. 대한민국의 가치를 옹호하는 시민이라면 여기에 대해 분노하고 반발할 수밖에 없다.

호남의 반기업 반시장 반대한민국 정서는 근대에 대한 거부로 이어진다. 계약과 법치, 개인, 과학을 싫어한다. 그 대신 적당주의와 떼법, 집단, 미신을 선호한다. 2017년 통계에서 대구광역시 인구 246만명에 한방병원 단 2개인 반면, 광주광역시 인구 145만명에 한방병원 98개로 인구 대비 대구의 83배였다. 한방병원이 근대 정신의 핵심인 과학의 원리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광주의 한방병원에서는 자동차보험 등을 악용한 가짜 환자의 사례가 빈발한다.

현재 호남이 추구하는 가치가 대한민국을 점령해가면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까? 대한민국의 약화와 해체, 몰락으로 이어진다. 호남에서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지만, 요즘은 약무호남국가생존(若無湖南國家生存), 약무호남국가발전(若無湖南國家發展)이라는 비아냥이 나올만한 상황이다.

6.25 당시 좌우 상호간 민간인 학살이 가장 극심한 지역이 호남이었다. 그 책임을 이승만과 대한민국에 물을 수 있을까? 그 책임은 북한에 물어야 한다. 하지만 호남의 지식인들은 북한보다 대한민국을 더 원망하는 성향이 강하다.

산업화로 인해 호남 농촌이 해체됐지만 그게 호남에게 안 좋은 결과였을까? 수도권 아파트단지에는 과거 공돌이 공순이라고 불렸던 호남 출신들도 많이 살고 있다. 그들이 고향을 떠나서 더 불행해졌나? 그들이 고향을 떠나게 만든 박정희가 욕을 먹어야 하나? 언제까지 피해의식에 젖어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게 힘을 보탤 것인가?

호남의 상당수 지식인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한민국보다 북한 김씨조선 체제를 더 선호한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성향의 중심이 호남이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좌파의 호남 문제 접근은 근대적 보편성에 대한 예외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호남 예외주의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호남과 대한민국의 비극으로 이어질 뿐이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호남화 현상에 대한 거부 반응이라고 본다.

호남 문제는 지역 문제로 출발했지만 이념과 체제 선택의 문제로 변화했다. 이제 호남의 정치적 소외도, 경제적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호남의 낙후는 반기업 반시장 정서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호남에 남은 것은 낡은 피해의식과 그걸 이용한 주사파 이권일 뿐이다. 호남 혐오는 반기업 반시장 반대한민국 정서에 대한 다른 지역의 반응이다. 이런 정서를 벗어던져야 호남혐오 현상에 대해 반박과 설득이 가능하다.

호남의 이념 지형은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선택이다. 호남의 이런 선택이 성공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 현재 호남과 대한민국은 공동운명체가 아니라 적대적 운명체다. 이것이 호남의 딜레마고 비극이다. 이 딜레마와 비극을 해결해야 한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근대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이다. 호남은 건국과 산업화 등 근대화 역정에서 적지 않은 지분을 갖고 있다. 특히 민주화는 근대화의 완성이라는 위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87체제 이후 호남은 반근대 반대한민국의 상징이 됐다. 이것을 바꾸지 못하면 호남도 대한민국도 불행해진다. 여기에 대해 경고음을 울리는 것이 이 시대 지식인들의 소명이라고 본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