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법에 맞서 검찰수사권 범위를 확대한 시행령이 지난 7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10일 시행됐다. 검찰 수사권을 제한하려는 법과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가 검찰 수사권을 복원한 ‘검수원복’ 시행령이 동시에 시행된 것이다.

수사권 조정 (PG). [일러스트=연합뉴스]
수사권 조정 (PG). [일러스트=연합뉴스]

지난 5월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은 지난 10일 수사를 시작한 사건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이미 개시한 사건의 수사 진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성과=‘2대 범죄(부패·경제) ’ 이외의 일부 선거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도 가능해져

개정법은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를 기존 6대 범죄(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부패·경제)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로 축소했다.

법무부는 범죄 대응 공백으로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며 야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지난달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개정했다.

당초 검수완박법은 검사의 수사 범위를 2대 범죄 ‘중’으로 제한했지만, 국회 통과 전 2대 범죄 ‘등’이라는 문구로 수정됨에 따라, 수사 범위가 확장될 여지가 생겼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주도로 시행된 ‘검수원복 시행령’에 따르면, 검찰이 일부 공직자와 선거 범죄에도 손을 댈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개정된 규정에서는 검찰의 수사권이 ‘원상 복구’까지는 아니어도 원래보다 확대되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공직자 범죄였던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 매수’ 등 선거범죄는 부패점죄로 묶였다. 또 기술 유출을 다루는 방위산업 범죄나 마약류 유통, 조폭이나 보이스피싱 범죄는 경제범죄로 분류된 것이다.

한 장관은 지난달 11일 검수원복 시행령과 관련해 “얼마든지 넓힐 수 있는데, 국회의 취지를 고려해서 2개 위주로 가고, 그 외 진짜로 필요한 부분만 최소한으로 붙이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한 바 있다.

검찰의 보완수사 범위가 넓어지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무력화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찰 송치 사건 가운데 ‘직접 관련성’ 있는 범죄만 검사가 수사할 수 있던 규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규정과 관련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규정과 관련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검수완박법 통과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법무부와 검찰이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찰 수사 범위를 확대하자, 이를 ‘시행령 쿠데타’로 정의하며 반발했다. 경찰도 입법예고 기간 법무부에 제출한 검토의견을 통해 “법에서 삭제된 범죄를 시행령으로 다시 포함하는 것은 상위법과 충돌한다”며 “게장 시행령이 검찰청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법무부는 ‘법 내용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어, 시행령을 통해 이를 보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 개정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도 청구한 상태이다. 따라서 ‘검수완박법’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올 때까지는 경찰과 검찰, 법원과 국민까지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계 1=인지 사건을 직접 수사한 검사의 기소는 여전히 금지돼

이처럼 시행령으로 어느 정도 검찰의 수사권이 다시 확보됐지만, 시행령 개정으로 막지 못한 변화도 있다. 인지 사건을 직접 수사한 검사들은 해당 사건을 기소할 수 없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검찰청은 수사·기소 검사 분리 시행에 발맞춰 '검사 수사 개시 범죄의 공소제기 등에 관한 지침'을 제정해 '직접 수사 참여 검사'의 범위를 명확히 했다. 대검은 지난 8일 이와 같은 운영지침을 마련해 일선 검찰청에 하달했다.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는 자신이 수사 개시한 범죄에 대하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경찰이 수사를 마치고 송치한 사건을 보완 수사한 경우에는 해당 검사가 기소까지 할 수 있지만, 검찰이 인지한 사건의 직접 수사에 참여한 검사들은 기소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대검은 이에 따라 개정 검찰청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기소가 금지되는 '수사 참여 검사'의 범위를 명확히 했다. 구체적으로 ▲ 피혐의자의 출석 조사 ▲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 ▲ 긴급체포 ▲ 체포·구속영장 청구 ▲ 압수·수색·검증영장 청구 등 5가지 유형의 수사 행위에 참여한 경우 '직접 수사 개시'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수사 과정에 발을 한 번이라도 담근 검사는 사실상 기소를 못하는 셈이다.

대신 각급 검찰청의 장은 운영 상황과 인력 사정 등을 고려해 기소를 담당하는 검사를 지정하게 된다.

당초 '검수완박' 입법 과정에서는 수사에 참여한 검사가 기소뿐만 아니라 재판에도 참여할 수 없게 하자는 논의가 나왔으나, 논란 끝에 수사 검사가 법정 공소 유지는 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개정 검찰청법이 실제 수사 현장의 어려움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사건은 여러 검사가 수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고, 전 부원이 달라붙어도 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 대검찰청.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초구 대검찰청. [연합뉴스 자료사진]

무엇보다도 수사에 참여할 인력을 '기소 역할'로 빼는 것도 문제지만, 수사에 참여하지 않은 검사가 수사의 결론인 공소장에 책임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거세다. 게다가 검사가 2∼3명뿐인 지방 소규모 지청에서는 검사 혼자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제기된다.

한계 2=독소조항인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도 그대로 시행

사회적 관심이 큰 공익사건이나 사회적 약자 보호가 필요한 사건의 철저한 수사를 저해할 우려가 있어 개정법상 독소조항으로 지적된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도 그대로 시행된다.

환경 범죄처럼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거나, 피해자가 아동·장애인과 같이 고소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경우 시민단체나 공익적 대리인이 고발하는데, 경찰이 사건을 자체 종결해버리면 이의를 신청할 길이 막히게 된다.

진통 끝에 새 법과 시행령이 시행되지만, 정치권에선 한동안 검찰의 수사범위를 두고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법무부의 ‘검수원복’ 시행령이 나온 뒤부터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시행령으로 무력화했다”는 비판을 쏟아내면서, 검수원복 시행령의 효력을 없애는 입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럴 경우 검수완박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처럼 국민의힘과 법무부, 검찰 등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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